예산 구만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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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이 옛 구만포구 유적지에 유래비를 건립한다고 6일 밝혔다.
이강열 예산군 문화재팀장은 "지금도 구만리 옛집에는 어른 키 높이의 선이 여러 개 겹쳐져 있다.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 구만포 시절에 여름 장마로 침수됐던 피해 흔적"이라며 "마을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유래비를 세우게 됐다. 이 지역을 향토유적으로 지정해 마을의 근현대사를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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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 요청, 유래비 건립·향토유적 지정 추진
충남 예산군이 옛 구만포구 유적지에 유래비를 건립한다고 6일 밝혔다. 구만포구는 조선시대 내포의 교통문화중심지로, 19세기 발간한 <대동지지>에 충청도 주요 포구로 표기됐으나 그 뒤 육상교통이 활성화하면서 쇠락하다 방조제 건설로 사라졌다.
구만포구 유래비 건립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2004년에 구만리 주민들과 〈구만리지〉를 펴낸 이홍용(89·충남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씨는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옛 풍경을 아는 이들이 점점 세상을 떠나니 안타까웠다. (그들이 기억하는 옛 풍경을) 역사로 남겨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라며 유래비 건립에 참여한 이유를 말했다. 그는 유래비문에 ‘구만포는 삽교천과 한내천이 만나는 내포지역 내륙 물류 유통의 중심지로, 아산만에서 벼 구만섬을 배로 운송했다고 해 포구 이름이 구만포’라고 썼다. 유래비는 서해선 고속철도 아래의 옛 구만포구 자리에 세워진다. 이곳에는 아직도 배를 정박하던 ‘뱃턱’(뱃나루) 흔적이 남아 있다.
구만포구는 신암면을 오가는 나룻배는 물론 만조 때는 수심이 깊어져 연안을 항해하는 큰 배들이 새우젓·밴댕이젓·갈치 등 젓갈류와 생선류를 싣고 와 곡식과 바꾸는 물물교환을 하느라 늘 왁자지껄했다고 한다. 물류가 흔하니 술집이 몰려 유흥가도 형성됐다. 〈구만리지〉에 따르면, 주민들은 젓갈 배의 짐을 부리고 갯고랑에서 농게, 조개, 뱀장어만 잡아도 먹고 살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구만포구는 1970년대까지 서해와 아산만 물산 적환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했으나 1979년 삽교천 방조제 건설로 간척 농지가 돼 사라졌다.
앞서 이곳은 청나라 상인들의 충청지역 상업 거점이었다. 또 1868년 독일계 유대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양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고 덕산에 왔을 때 배를 댔던 곳이기도 하다.
이강열 예산군 문화재팀장은 “지금도 구만리 옛집에는 어른 키 높이의 선이 여러 개 겹쳐져 있다.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 구만포 시절에 여름 장마로 침수됐던 피해 흔적”이라며 “마을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유래비를 세우게 됐다. 이 지역을 향토유적으로 지정해 마을의 근현대사를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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