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연계 임무지향 R&D 속도···12개 분야 '기술 주권' 확보한다
美 '반도체 지원법' 등 자국 우선
中은 '과학 굴기'로 8대산업 키워
정부도 임무 중심 기술 개발 방점
기획 단계부터 기업의 목소리 반영
5~10년 내 성과 창출·산업화 목표
전문가 "유연한 연구수행 위해선
예타 패스트트랙 도입도 고려해야"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기술보호주의가 득세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통해 기술 주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와 안보 자립을 위해서는 원천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다. 정부가 지난해 ‘12대 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적극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로 핵심 전략 과학기술 자산을 확보해야 하는 탓이다. 이에 정부는 ‘임무지향 R&D’로 기술개발 속도를 높여 현재 선도국 대비 80%선인 기술 수준을 8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6일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의 ‘미중 기술패권경쟁 대응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심화에 따라 기계·화학·소재·전자 등 원천기술이 부족하고 기술무역 적자 규모가 큰 분야에서 피해가 커질 전망이다. 보고서는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아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대응전략이 필요하다”며 “선진국의 기술패권주의 확산으로 미래 신산업 창출 기회를 박탈당한 가능성이 있어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 R&D 전략 강화가 필수”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각국의 경제·안보 자립에 과학기술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R&D와 인력 육성에 527억 달러(약 68조 원)를 투자하고 인공지능(AI)과 양자 기술에도 5년 간 1700억 달러(약 22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다. 중국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기치로 8대 산업, 7대 전략기술을 육성 중이다. 연초 양회에서 중국 정부가 편성한 과학기술 예산은 3280억 위안(약 59조 원)에 달한다.
이에 한국 정부도 지난해 10월 국가 경제·외교·안보에 필수적인 ‘12대 전략기술’을 선정하고 글로벌 기술패권경쟁에 대응한 전략기술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2대 전략기술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모빌리티, 원자력,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AI, 통신, 로봇, 양자 등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등은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아직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미래 핵심 기술로 전망되는 분야에서는 공격적인 투자로 선도국 대비 기술 격차를 좁혀 자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단순한 국가 예산 투입만으로는 선진국에 뒤쳐지는 원천기술 확보에 한계가 분명하다. 확보한 원천기술로 산업화까지 이뤄내기 위해서는 민간 투자 유도가 필수다. 실제 2027년까지 진행되는 정부의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민간 주도 혁신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다.
이를 위해서는 R&D의 기획 단계부터 산업계 의견을 반영한 실용화 연계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R&D 투자 활성화를 위해 세제를 개선해 '수요 지향 과학기술 혁신 정책'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각 전략기술 분야별 기술 발전 수준이 다른 만큼 인력 확보에서도 최적화 전략이 필요하다. 일례로 이미 산업화 단계에 접어든 이차전지는 당장 산업수요에 대응할 석·박사를 양성하고,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은 양자 분야에서는 박사급 핵심인재 양성에 집중하는 식으로 유연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 배분 방식 변화 또한 중요 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요소로 임무지향 R&D를 꼽고 있다. 이는 구체적인 임무와 기한을 설정해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뜻한다. 과거 반도체 산업 육성과 평판 디스플레이 개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 등이 임무지향 R&D의 대표적 성과다. 정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 각각의 달성 목표를 설정하고 5~10년 내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임무지향 R&D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분야간의 유기적 연계가 필수다. 예산 편성부터 사업 주도까지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것이다. 일례로 양자·AI·6G 기술이라면 과기정통부가 전권을 갖고 빠르게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속도감을 높이고 부처간 ‘밥그릇 싸움’을 줄여야 한다. 정병선 KISTEP 원장은 “투자재원 마련과 예산집행 자율성을 확대시키고 파편화된 사업은 임무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며 “유연한 연구수행을 위해 사업단·컨소시엄 등을 구성하고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패스트트랙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민혁 기자 behereno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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