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여기 온 사실 알려지면”···50년 전 평양 비밀회담 공개
‘김일성 동생’ 실세 김영주 만나
남북 고위급 당국자 역대 첫 접촉
통일부, 2권 분량 회담문서 공개
김일성과 면담 내용은 계속 ‘봉인’
“내가 여기 와서 김 부장과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남의 극우 분자로부터 테러를 받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위협을 무릅쓰고 또 이데올로기를 제쳐놓고 통일문제, 민족문제를 이야기하러 왔습니다.”(1972년 5월2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앞두고 남북 고위급 당국자가 역대 처음 만나 통일문제를 논의한 회의록이 6일 공개됐다. 통일부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1971년 11월~1979년 2월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1678쪽)을 공개했다.
이 부장은 실무 접촉을 거쳐 1972년 5월2일 평양에서 비밀리에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만났다. 김 부장은 당시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내각 수상의 동생으로 핵심 실세였다. 분단 이후 남북 고위급 인사들의 첫 회담에서 양측 모두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부장은 “우리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많이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이 부장은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이 순간이 매우 역사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이 “결국 우리의 불행은 의사소통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나”라고 하자 김 부장은 “이 부장 선생이 여기 오신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며 화답했다.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은 남북이 달랐다. “4분의 1세기의 분단을 대화로 풀어나가자”고 강조한 이 부장은 단계적 교류 확대를 주장했다. 이 부장은 “서로의 체제를 이해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인도적 회담을 촉진시켜 인적 교류, 물적 교류, 통신 교류 등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북측은 김일성 수상과 박정희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세웠다. 김 부장은 같은 달 3일 열린 2차 회담에서 “가족 찾기, 물적 교류 이런 것들이 정치협상만 되면 저절로 풀려가리라 생각한다”며 “통일문제, 우리 급에서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치협상은 우리 당 총비동지(김 수상)과 박 대통령 간에 정치협상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부장은 “처음부터 김 수상과 박 대통령이 회담을 하면 잘못될 경우 실망이 크게 된다”며 “통일에 앞서서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이해이고 교류로 이해를 증진하고 이해의 증진 위에 그때 가서 박 대통령과 김 수상의 회담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박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양측은 같은 달 29~30일 서울에서 재차 만났다. 이번에는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을 찾아 이 부장을 만났다. 양측은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했고 그해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그해 10월 남북조절위 회의가 시작됐지만 북한의 거부로 1975년 중단됐다.
이 부장의 1972년 평양 방문 당시 김 수상과 두 차례 면담 내용, 박 부수상의 서울 방문시 박 대통령과의 한차례 면담 내용은 이날 공개된 회담 문서에 담기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정보공개법에 따라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남북회담문서 공개심의위원회 절차를 거쳐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3년 뒤 공개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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