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상 돌아왔다 … 日서 중고 롤렉스·위스키 싹쓸이

일본 후쿠오카 이와타야 백화점의 꼼데가르송 매장. 휴가철에 접어들면서 이곳 매장은 오전을 넘기가 무섭게 티셔츠류가 품절된다. '슈퍼 엔저'에 이곳을 찾은 한국인들이 '오픈런'을 통해 물건을 싹쓸이해 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꼼데가르송 여름용 티셔츠는 성인용 한 벌이 일본에선 7000엔(약 6만4000원) 수준이지만, 한국에선 13만~15만원대에 팔린다.

싹쓸이를 주도하는 큰손은 바로 슈퍼 엔저에 돌아온 보따리상들이다. 2015년 원·엔 환율이 800원대를 찍으며 창궐했다가 엔화가 안정세를 찾으면서 사라진 이후 무려 8년여 만이다.

6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요즘 일본 보따리상들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관페리를 비롯한 배편으로 오갔던 과거와 달리 항공편을 이용해 짧고 굵게 쇼핑을 한다. 엔데믹에 접어들며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왕복 항공편 가격이 20만원대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보따리상이 주로 이용하는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같은 메이저 항공사를 제외한 저비용항공사(LCC)다. 특히 캐시백 혜택이 많은 제주항공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보따리상의 주 교통편인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1~6월) 일본 수송객 수가 174만837명으로, 대한항공(105만5260명)과 아시아나(108만5637명)보다 무려 70만명 이상 많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쇼핑 품목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15년 엔저 시대에는 아이폰을 비롯한 전자제품류나 레고와 같은 마니아층 제품이 보따리상의 주 타깃이었다면 코로나19를 거친 뒤인 2023년 판 뉴노멀 보따리상들은 명품류와 주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꼼데가르송이나 메종키츠네 브랜드다. 이들 브랜드는 한국과 일본 현지의 가격 차가 1.5배 이상 난다. 한국 백화점 가격이 15만원~20만원 대인 반면, 일본에서는 7000엔~8000엔 정도면 티셔츠를 구매할수 있다. 엔저 효과까지 감안하면 이익 마진이 50%대에 육박한다. 보따리상들은 여기에 게스트 카드 할인(5%)과 면세 할인(10%) 등 총 15% 추가 할인을 받는다.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롤렉스도 이들이 노리는 품목이다. 대리인을 통해 정품 시계를 정상적 루트로 구매하는 팀도 있지만 이들이 노리는 건 중고품이다.

도톤보리 지역의 고메효나 브랜드오프, 라핀 등 중고 시계를 믿고 거래하는 매장들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주로 '배달꾼'이라 불리는 대리인을 통해 들여오는데, 대부분 세관을 무사 통과하지만 적발되더라도 8%대 세금만 물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위스키도 인기 품목이다. 일본은 국내와 다른 주류세를 적용한다. 한국은 주류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를 부과하는 반면 일본은 주류의 양이나 알코올 양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채택한다. 한국에서는 술값이 비쌀수록 세금이 높아지지만 일본은 가격에 상관없이 주종이 같은 술은 양에 따라 주세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엔저까지 더해지면 같은 품목을 10만원대 이상 할인된 가격에 득템할 수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8년 전만 해도 인천국제공항 라운지에는 컵라면을 싹쓸이하는 일본 보따리상들이 줄을 이었다"며 "요즘은 이런 분위기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라운지 이용 고객의 대부분이 일본행일 정도"라고 말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