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킬러문항 배제가 목표는 아니다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3. 7.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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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교육 개혁
공정 입시·창의인재 양성 이룰
교육 마스터플랜 고민하고
사회구조·노동문제 같이 풀어야

'킬러문항 배제·사교육 카르텔 해체.' 옳은 방향이다. 메시지도 단순명료, 침투력도 좋다. 변별력 확보를 명분으로 학생들을 골탕 먹이는 고약한 문제들은 없어지는 게 맞는다. 교육부 관료와 수능 출제위원, 사교육업계 간의 검은 커넥션이 있다면 샅샅이 밝혀내 엄벌하는 게 마땅하다.

방향은 잘 잡았는데 첫걸음이 불안하다. 수능을 5개월 남겨놓고 출제 방향을 수술한다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혼란이다. 불안에 휩싸인 그들이 기댈 곳은 결국 학원이다. 정부는 이미 3월부터 예고한 바가 이행되지 않자 다시 발표한 것이지 급조한 대책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춰… 기본 개념과 원리에 충실하고…"식의 출제 기준 발표는 매해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된 내용이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올 수능은 달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일찌감치 예고했다는 것도 겨우 몇 달 전이다. 고등교육법 34조5항은 수능의 기본 방향과 출제 형식을 4년 전에 예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예측 가능성이 붕괴하면 혼란이 뒤덮고, 사교육은 불안감을 자양분 삼아 더 덩치를 키운다. 이 역시 수십 년간 되풀이돼 온 패턴이다. 킬러문항 배제 발표가 사교육을 줄일 것이란 호언장담이 그리 믿음직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킬러문항 배제=난도 낮은 수능'으로 이해한 수험생이나 반수생들의 의대 지원이 줄을 이을 조짐도 보인다. 풍선효과다.

수능까지 남은 기간만이라도 적정 난도와 변별력이라는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는 두 마리 토끼를 어찌 잡을 것인지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하고, 수능 출제에서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길 바란다.

교육당국이 명심할 것은 킬러문항 배제는 교육개혁 장도의 종착역이 아니라 첫걸음이란 것이다. 비틀거리긴 했지만 첫발을 내디딘 만큼, 계획을 잘 세워 남은 길을 가야 할 때다.

중기적으로는 수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지금의 입시·평가는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창의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 챗GPT가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는 시대다. 지식을 외우고 문제풀이 스킬을 익혀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골라내는 수능식 평가는 시효를 다했다.

수능은 절대평가화하거나, 자격고사 정도로 위상을 낮추는 게 좋겠다. 대입은 각 대학들의 자율에 맡기는 게 맞는다고 본다. 공정성 시비, 부정 입학 사례가 어김없이 터져나올 것이다. 부정이 드러나면 엄벌하며 보완책을 찾으면 된다.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IB(국제바칼로레아)식 논술형 평가의 대입 연계 확대도 검토해볼 문제다.

학벌주의를 줄여나가고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풀기 힘든 킬러 문제다. 저출산, 노동개혁 등 만만찮은 난제가 수두룩하지만 교육 문제는 이 모든 이슈들의 끝판왕이고 종합판이다. 정권마다 임시방편 땜질만 거듭해온 입시제도 개편은 교육 문제 해결의 일편에 불과할뿐더러 손을 댈 때마다 상황만 더 악화시켜왔을 뿐이다. 지겹도록 들어온 '백년대계'를 세울 안목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럴듯한 대학을 나와야만 번듯한 일자리를 갖게 되고,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더 좋은 대학에 가려는 수요는 여전할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꾸고 학벌만능주의 인식도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지 않을 교육에 대한 그랜드 플랜 준비를 시작할 때다. 이번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원한다.

[이호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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