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집요한 정상회담 요구...7·4 남북공동성명 협의 과정 공개

최두희 2023. 7. 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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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분단 이후 첫 남북 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과 관련한 남북회담 자료가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남북 간 비밀접촉 과정도 담겼는데 무엇보다 당시 북측이 우리에게 집요하게 정상회담을 요구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최두희 기자입니다.

[기자]

1972년 7월 4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당국이 공동성명을 타결한 역사적인 순간.

[대한뉴스 (1972년 7월 8일) :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7개 항의 공동성명이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됐습니다.]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하기까지의 비밀접촉 등이 담긴 회담 사료가 공개됐습니다.

당시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 주석의 동생이자 북한 정권의 2인자였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만났는데,

북측은 우리를 향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김일성 주석과 박정희 대통령 간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이후락 부장은 회담이 잘못될 경우 실망이 클 것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북측이 당시 적극적으로 정상회담을 요구한 배경엔 주한미군 철수라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박원곤 /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북한이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게 되면 거기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그런 측면에서 정상회담이라는 가장 높은 수준의 관계를 모색한 것을 제안했다고….]

비밀접촉을 위해 서로가 당시 '적국'으로 오간 만큼 남북한은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각서를 써 주기도 했습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이후락 부장과 김일성 주석의 면담 내용 등은 이번에 공개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힘겨운 과정을 거쳐 7·4 공동성명이 나온 순간은 화려했지만, 합의사항을 추진하기 위해 가동됐던 남북 간 공식 대화 기구인 남북조절위원회는 이후 부침을 겪다가 파행됐습니다.

이후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 끝에 북한의 핵 개발 고도화로 극도로 경색된 상황입니다.

YTN 최두희입니다.

YTN 최두희 (dh0226@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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