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킬러(Killer)를 다루는 방법
킬러(Killer). 최근 매체에 자주 보이는 단어에 주목한다. 현실에선 낯설어야 하지만, 입시계에선 익숙한 존재인 듯하다. 내가 일하는 가상 세계와 게임 분야는 킬러를 탐험가, 성취가, 사교가와 함께, 서로 다른 동기와 선호에 의해 공동체와 시스템을 움직이는 플레이어로 오래전부터 중시해 왔다. 이 분류는 1970년대부터 활약한 선구적 게임 디자이너 리처드 바틀이 제안했는데, 그는 한 세계의 개성과 비전은 이 중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바틀은 전체 시스템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세력 간 상성을 활용하면, 설계자가 의도한 이상적 균형 유지가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한 사람은 모든 성향의 보유자로, 상황에 따라 속성의 강약을 조정할 수 있고 각각은 유기적, 유동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킬러는 일방적 힘으로 타인을 제압해, 상대가 느끼는 고통과 무력감을 즐긴다. 따라서 학생들이 특정 문항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도록 급한 정책 변화가 선택됐는데, 불만도 반론도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현 제도가 학생들에게, 내가 맞히는 것 이상으로 남이 틀리기를 바라게 한다는 점에서, 킬러 되기를 권장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킬러 본성은 모든 인간 내면에 지분이 있어서, 근거지 하나를 없앤다고 제거할 수가 없다. 또 경쟁심을 원천 삼아 성장하는 킬러는 학습 과정에 긴장과 활력을 공급하는 선기능도 있고, 무엇보다 이들의 초기 성향은 성실한 성취가와 닮은꼴이다. 목표에 대한 집념이 적정선을 넘은 성취 행동이 입시 생태계의 킬러로 변하는 경우를, 우린 많이 알고 있다.
킬러가 제일 좋아하는 상대는 정해진 한 방향을 따라가는 성취가이다. 킬러는 변별력 있는 자원을 보유한 성취가를 무찌를 때 실익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먹잇감 격인 성취가 증가는 킬러 증가를 동반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교가를 공격하면, 감정적 타격을 입히긴 쉽지만, 높은 레벨 킬러가 탐낼 만한 전리품은 성취가만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킬러를 움찔하게 하는 의외의 천적은 탐험가다. 그는 새 방향을 모색하고, 낯선 도구를 발명한다. 또 제 호기심대로 움직이는 까닭에 킬러의 고전적 경로 공격으로 인한 상실도 적다. 이기지 못한 건 분명한데, 진 것 같지 않은 존재들. 타인의 고통을 먹고사는 킬러에게 탐험가는 골칫덩이다. 그러니 킬러를 제어하는 최선의 전략은 탐험가를 지키고 육성하는 일일 것이다.
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을 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절대적인 선악은 없다. 킬러는 무자비하고, 천적인 탐험가는 매력적이지만, 그저 하나의 특성일 뿐이다. 황금비율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학교 교육을 통해 가장 강하게 전달하고 싶은 경험과 느낌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묘수는 없다. 책임 있는 이들을 포함해 공동체 사람들 모두, 끝없이 중심이 바뀌는 동적 시스템에서 균형 잡기란 고정 값도, 절댓값도 아니고, 완성도 없는, 멈춤 없는 움직임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권보연 인터랙티브 스토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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