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랑 놀이 3시간’, 어른까지 동심에 젖어든다
[서울&]
1983년 탄생 뒤 ‘언제나 그 모습’ 둘리
겉은 공룡, 속은 ‘엉뚱한 우리 아이’
또치·고길동, 우리 곁의 흔한 캐릭터
그래서 뮤지엄 가면 ‘때 탄 맘’ 맑아져
둘리랑 놀다보니 3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숲도, 길도, 둘리뮤지엄 실내도 옥상도 온통 둘리와 그 친구들로 재밌고 신나고 우습고 신비로운 세상이다. 아이들이 아이들처럼 놀고 어른들은 마음이 씻겨지는 곳, 둘리뮤지엄에서 보낸 여름 어느 날 오후 이야기.
숲속의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유령버스를 타다
숲 밖으로 얼굴을 내민 공룡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1128번 시내버스를 타고 둘리뮤지엄·대우이안극동아파트 정류장에 내려 바라본 숲에 초록색 거대한 공룡과 거대한 공룡 얼굴에 올라타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작은 공룡 조형물이 보였다.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웃음으로 반기는 엄마 공룡과 아기 공룡. 아기 공룡은 만화 주인공 ‘둘리’다.
길을 건너면 마법사 옷을 입은 둘리와 둘리 만화에 나오는 또 다른 인물인 희동이가 광대 차림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그 뒤 하늘에는 둘리 만화의 주인공들인 둘리, 또치, 희동이, 고길동이 탄 해적선이 하늘을 날 듯 뱃머리를 치켜들었다. 둘리뮤지엄 건물 옥상에 설치한 해적선이다. 고길동의 몸짓과 표정을 보면 해적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 우주 대모험을 펼칠 기세다.
오후 2시 정각에 입장, 바로 뒤를 이어 두 아이와 엄마가 들어왔다.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에 나오는 인물을 소개하는 화면을 작동시키며 보고 있는 사이 아이들과 엄마는 유령버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나며 유령버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아이가 울면서 나온다. 엄마는 무서운 거 아니라며 웃으며 아이를 달랜다. 우는 아이 언니도 엄마 옆에서 동생을 보며 미소 짓는다. 둘리뮤지엄은 먼 훗날 오늘의 이야기를 하며 배꼽을 잡고 웃을 추억을 저 가족에게 선물한 것일 테다.
유령버스 안내하시는 분의 안내를 따라 유령버스에 올라탔다. <얼음별행 유령버스 4D>. 약 8분 정도 상영하는 만화영화다. 얼음별을 찾아 떠나는 우주 대모험이다. 우주를 나는 동안 좌석이 흔들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에 눈이 번쩍번쩍한다. 우주 괴물이 뒤를 쫓아온다. 조금 전 울던 아이가 어느 대목에서 울음을 터뜨렸는지 알 것 같았다.
둘리와 함께 놀다 만난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
둘리와 친구들이 나오는 만화경으로 들어가면 무한으로 확장되는 환상의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부터 둘리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대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기공룡 둘리> 원작 만화에 나오는 ‘고길동 표류기’ ‘저승행차’ ‘미라의 부활’ ‘알 수 없는 나라’ ‘유령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출한 전시실이 이어진다. 아나콘다에게 잡힌 고길동에 이어 바로 이어지는 설치물은 타잔이 된 고길동이다. ‘저승행차’에 나오는 염라대왕 심판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 중 도깨비 얼굴을 보고 웃는다. 관 속의 미라, 보물찾기,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둘리 일행, 으스스한 분위기지만 웃음이 먼저 나온다. 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알 수 없는 나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둘리와 친구들이 비행기 추락으로 불시착한 ‘까라빠고’섬의 원주민에게 붙잡힌 장면이다. 이야기는 2층 전시실로 이어진다.
‘아기공룡 둘리’를 탄생시켜 세상을 즐겁게 만든 주인공, 만화작가 김수정씨는 6살부터 만화책을 보고 따라 그렸다고 한다. 커서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만화를 그리는 일을 놓지 않았다. 1975년 <폭우>라는 제목의 만화로 신인만화공모에 당선되면서 만화가가 됐다. 그리고 1983년, 그를 세상에 널리 알려준 <아기공룡 둘리>가 탄생하게 된다.
그 당시 만화는 심의를 거쳐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성인군자처럼 표현되기를 바랐던 풍토가 짙었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주인공 삼아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이라 동물을 의인화해서 아이들 마음을 그려보고자 했다. 소, 개, 고양이와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것 말고 좀 더 특별한 캐릭터를 고민하다가 찾은 게 공룡이었다. 1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만난 공룡, 어린이가 주인공이어야 하니 공룡도 아기공룡이어야 했다. 귀여우면서도 엉뚱하고 그러면서 친근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도레미’도 후보 중 하나였다. 아기공룡 두 마리로 만화를 기획했던 처음에는 ‘하나’와 ‘둘이’라고 했었다. 실제로 만화에서 ‘하나 언니’라는 말이 딱 한 번 쓰였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아기공룡을 한 마리로 정했다. 이름은 둘이? ‘둘이’보다는 조금 더 아이 같고 엉뚱하고 천진하면서 순수하고 진솔한 이름, ‘둘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치, 도우너, 고길동도 다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래야만 했다. 우리 곁에 사는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길동씨, 어디 가세요?
그가 만화가를 꿈꾸며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터를 잡은 곳이 쌍문동이었다. 집 앞에 냇물이 흘렀다. 둘리가 빙하 타고 한강을 통해 들어온 마을을 쌍문동으로 설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화에 나오는 고길동의 집도 그가 살던 셋집이었다. 둘리를 통해 아이들이 꿈꾸게 하고 싶었다. 그 자신의 꿈을 둘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즐겁게 웃고 싶었다.
김수정씨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책상 위 공책과 연습장에 깨알 같은 글씨와 그림이 가득하다. 실제로 그가 쓰고 그린 것이란다.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에 사용된 그림 원본 옆에는 1995년 발행된 아기공룡 둘리 우표도 전시됐다. 학용품, 먹을 것, 장난감 등 2009년 기준으로 70여 개 업체, 1500여 품목이 둘리 캐릭터 상품으로 출시됐다고 한다.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부터 1993년까지 <보물섬>에 연재됐다. 1994년에 단행본이 출간됐고, 1996년에는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이 만화영화로 제작돼 극장에서 상영됐다. <한국방송>(KBS)에서도 둘리 만화가 방송됐다. 1999년에는 둘리 만화영화가 수출됐다.
<아기공룡 둘리>의 ‘난쟁이가 된 둘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민 3층 실내놀이 공간에서 자지러지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엄마 아빠의 소탈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3층 실외에는 옥상정원과 미로정원이 있다. 작은 나무를 심어 구불거리는 길을 만들고 둘리와 친구들 조형물을 숨겨 놓은 곳이 미로정원이다. 미로정원의 끝에는 길에서 보았던 해적선이 있다. 옥상정원에는 둘리와 친구들 조형물이 있다. 노래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논다. 실눈 뜨고 벌린 손가락 사이로 곁눈질하는 술래 둘리 뒤로 천진난만한 표정의 친구들이 보인다. 술래에게 들킬까 숨었다가 잠든 희동이 발치에 노란색 작은 꽃이 피었다.
3층 옥상까지 돌아본 뒤 지하 영화상영관에서 상영하는 둘리 영화를 보고 둘리뮤지엄을 나선 시간은 오후 5시, 3시간이 금세 사라졌다. 귀엽고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둘리와 친구들을 따라 여행하다보니 마음이 씻겼나보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세상이 맑고 밝고 즐거워 보인다. 올 때 탔던 1128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편 정류장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양복을 입고 눈동자를 굴리며 시계를 보는 고길동씨의 조형물이었다. 자연스레 웃음이 났다. 손을 흔들며 알은체하며 말을 걸고 싶었다. “고길동씨 어디 가세요?”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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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정보
관람 시간: 1회차 오전 10시~오후 1시. 2회차 오후 2~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1월1일. 설날·추석 연휴 기간 관람요금: 주중 4천원. 주말·공휴일 5천원. (15명 이상 단체, 도봉구민(신분증 지참)은 주중 3천원. 주말과 공휴일 4천원) 사전예약제 운영: 둘리뮤지엄 홈페이지에서 예약 문의전화: 02-99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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