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옐런 방중에 엇갈린 기대…상황 관리 vs 압박 해제
미중 관계개선 돌파구, 사실상 가능성 희박…대화재개 큰 의미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6∼9일 중국 방문을 두고 미중 양국의 기대가 크게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국 배제 첨단기술 공급망 재편인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과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제한 등 전략 경쟁 문제부터 미국의 대(對)중국 고율 관세, 환율, 기후변화 대처, 개발도상국 부채 문제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은 서로 상대의 시선을 외면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미국을 최대한 압박할 기색이다. 옐런 장관 방중 직전에 반도체 등의 핵심 원료인 갈륨·게르마늄 수출통제 카드를 꺼내 들고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형국이다.
이에 옐런 장관의 방중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에 이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상황 관리' 차원에서 결정했다는 관측이 많다. 미중 갈등·대립 고조 속에서 자칫 오판에 따른 충돌을 막는 데 역점을 뒀다는 것이다.
미국이 서방 각국과 조율한 디리스킹으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 등의 발전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대국 굴기' 의지의 중국이 정면으로 맞서면서 국제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美 디리스킹에 中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기싸움'
중국 상무부는 옐런 장관의 방중을 사흘 앞둔 지난 3일 반도체 핵심 원료인 갈륨·게르마늄 등에 대해 수출 제한을 선언했다. 미국 등 서방의 디리스킹에 더는 당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미 상무부는 5일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맞받았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이로써 디리스킹과 핵심 원료 수출 제한 문제는 옐런 장관 방중 기간에 미·중 핵심 논의 사안이 될 듯하다.
미국은 5세대 이동통신(5G)용은 물론 인공지능(AI)·슈퍼컴퓨터용 첨단 반도체·반도체 생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이젠 미국 기업·자본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은 작년 10월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니콘 등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수출 통제에 동참하도록 조치했다. 미국은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도 주도하고 있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지난 5월 21일 미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이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한다며 주요 중국 기업들의 관련 제품 구매를 중지시킨 데 이어 이번에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라는 공세적 조치를 내놓았다.
중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미국이 첨단기술 중국 배제 전략인 디리스킹 정책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을 강행하겠다는 태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인 셈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는 6일 '중국의 수출통제는 미국·일본·네덜란드에 대한 정확한 반격인가'라는 제목의 공동 사설을 통해 중국에 대해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나선 미국·일본·네덜란드에 중국산 갈륨·게르마늄을 수출하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웨이젠궈 전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은 5일 관영 차이나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각국이 계속해서 압력을 가한다면 중국은 더 많은 조처를 해야 한다면서,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조치는 "강력한 펀치"이자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 상무부 발표로 미뤄볼 때 미국 역시 '강공' 의지가 분명하다. 미 행정부는 불필요한 대응을 삼가면서도, 보복 카드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미국은 자국 첨단기술 보호를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중국 업체의 접근 차단을 준비하는가 하면 텐센트·알리바바 등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의 미국 내 사업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옐런 장관 방중으로 디리스킹과 관련해 미중이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옐런 장관은 방중 기간 리창 국무원 총리·허리펑 부총리·류쿤 재정부장(장관) 등 중국 경제라인 핵심 인사들과 연쇄 회동하면서 디리스킹과 갈륨·게르마늄 논쟁으로 팽팽히 맞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가에선 세계 갈륨·게르마늄 수요의 80% 이상을 공급하는 중국이 수출 제한을 지속하면 단기적인 수급난은 있겠지만, 여타 국가들의 추가 생산을 자극해 중장기적으로 공급 안정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희토류·리튬 수급난과 마찬가지로 이번 일로 중국에 희귀 광물·원료의 생산·공급을 맘대로 조절하는 '경제적 강압' 국가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고율 관세·환율 논의…기후변화·개도국 부채 탕감 접점 가능성
대중국 고율 관세와 미중 간 상반된 환율 정책, 그리고 기후변화와 개발도상국 부채 경감 문제들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대중 무역 보복 차원에서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대중 고율 관세는 중국의 대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악화시킨 '부메랑'이라는 점에서 양국 간 논의에 시선이 쏠린다.
미국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 인상에, 중국은 침체한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금리 인하에 방점을 두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심상치 않은 위안화의 달러 대비 가치 하락 현상이 불거져 이와 관련한 논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역 정책과 관련해선 미중 간에 큰 다툼이 예상된다.
앞서 지난 5월 26일 미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를 계기로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공방을 벌인 바 있다.
당시 타이 대표는 중국의 "경제·무역 정책에 대한 국가 주도의 비(非)시장적 접근이 초래한 중대한 불균형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왕 부장은 대중국 고율 관세가 문제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부채 경감·탕감 문제에선 미중 간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개도국에 대한 최대 채권국 중 하나인 중국은 최근 몇 달 새 부채 경감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측은 중국의 태도 변화로 개도국 채무 조정 문제가 진전을 보인다고 밝혔다.
리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새로운 글로벌 금융 협약을 위한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계속해서 실질적인 조처를 해 힘닿는 데까지 다른 개도국에 여러 형태의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기후변화 대처 노력에 중국 역시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이와 관련한 공조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02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2030년에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에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이른바 '쌍탄'(雙炭) 목표를 제시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은 화력발전과 석탄 연료 사용을 줄인 바 있다.
물론 중국이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기간 당초 약속과는 달리 석탄 화력발전소를 대거 건설해 전력을 생산해왔으나,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의지는 분명해 미중 간에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미중 관계 개선 돌파구 가능성 희박…그래도 대화 지속될듯
블룸버그통신은 6일 미중 간에 이견이 너무 커 옐런 장관의 방중을 통해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은 그러면서 대화 재개에 의미를 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소재 아시아무역센터의 설립자이자 전무인 데버라 엘름스는 옐런 장관의 이번 방중 결과에 기대치가 낮지만, 미중 관계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방중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상하이 푸단대의 우신보 국제문제연구소장은 "옐런 장관의 방중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분위기를 개선하고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더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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