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의 무지(無智) 무득(無得)]숭본식말(崇本息末)

2023. 7. 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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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첫번째 이야기.

5월 말, 교육부는 전국 대학에 모집단위 광역화, 융합교육 확대, 학생 선택권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을 안내했다.

당연히(?) 대학은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 의견을 들으며 긴급 교무위원회 등을 수차례 열어 그야말로 전력을 다 해 계획을 세우고 교육부에 계획서를 제출한다.

전국의 대학이 말 그대로 비가 온 뒤 죽순처럼 인공지능 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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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요즈음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첫번째 이야기. 5월 말, 교육부는 전국 대학에 모집단위 광역화, 융합교육 확대, 학생 선택권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을 안내했다. 당연히(?) 대학은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 의견을 들으며 긴급 교무위원회 등을 수차례 열어 그야말로 전력을 다 해 계획을 세우고 교육부에 계획서를 제출한다. 세상이 변하니 대학도 변해야만 한다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다.

교육부가 파악한 문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오늘날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전과, 복수전공 등 다양한 학사제도가 있지만) 자신이 입학한 학과에 편성된 커리큘럼에서 20개 내외 전공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현 상황은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배양하기에 부족하므로, 학과별 교과과정을 개편해 청년들의 미래를 열어주자는 정책적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과별로 '학문적 특성을 잘 살려서' 소위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교과과정'을 만들어주면 될 터이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닌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으니 새삼 열거하지 않겠다. 다만, 필자가 갖고 있는 걱정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목적'을 두고, 실천 방안으로서 위에 말한 세 가지 '방편'을 제시했음은 스스로 명확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은 '목적'은 제쳐두고 오로지 '방편'만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두번째 이야기는 이보다 지속성이 있다. 전국의 대학이 말 그대로 비가 온 뒤 죽순처럼 인공지능 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학이 인공지능을 전공한 신임교수를 찾아다니느라 아우성이다. 기존에 있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관련학과들은 모두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다른 것은 모두 제쳐놓고 대학은 인공지능만 가르치고 학생들은 인공지능만 배우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오래 전부터 많은 학자들과 기업인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의 대학들은 '근본(뿌리, 컴퓨터)'은 버리고 오로지 '말엽(가지, 인공지능)'만 숭상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기나 하면서 이렇게 온 힘을 다해서 달리고 있는 것일까?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라는 널리 알려진 고전이 있다. 이 책에 주(注)를 붙인 학자들이 많이 있는 데, 중국의 삼국시대 위나라 왕필(王弼)이라는 젊은 학자가 붙인 주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왕필은 지금의 도덕경 38장(덕경의 1장)에 대한 내용을 숭본식말(崇本息末)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이 말은 왕필의 주 중에는 숭본이거기말(崇本以擧其末)이라고 써 있다.

근본을 숭상함으로써 그 말단(결과, 성과)이 번창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말엽적인 부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근본에 대한 통찰을 통해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성취들을 번성시켜야 할 일이다. 우리가 흔히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됐다는 말은 숭본식말과는 달리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을 중시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또한, 반야심경에도 전도몽상(顚倒夢想), 즉 본말이 뒤집힌 몽상이라는 표현이 있다.

문제의 본질을 잊고 '본말이 전도'된 채 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목적지도 모르는 채 액셀을 한껏 밟고 있는 자동차 운전자 모습과도 같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 연료가 바닥나고 있는데 누군가는 “더 빨리”를 외치고 있다. 어느 날 낯 선 곳에 머무르고 있을 우리의 미래가 두렵다.

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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