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프랑스 공영방송 재원…국민이 잃은 것은? [특파원 리포트]

안다영 2023. 7. 6. 15: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는 지난해 중단됐습니다. 주민세에 묶어 함께 거두어 왔는데, 지난해 주민세가 폐지되면서 수신료 제도도 중단된 겁니다.

프랑스 정부는 대신 내년까지 부가가치세 중 약 37억 유로, 우리 돈 약 5조 원을 해마다 공영방송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명목은 달라졌지만, 프랑스 국민이 돈을 내는 것은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다만, 2025년부터는 어떤 재원으로 공영방송을 지원할지는 안갯속입니다. 공영방송의 재원과 조직, 미래에 대한 논의는 아직 큰 진전이 없습니다.

프랑스 의회 내에서도 수신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지만, 대안 마련 없이 즉흥적으로 추진된 데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탐사보도나 교육, 문화 콘텐츠를 주로 생산하는 곳은 민영방송이 아니라 공영방송이라며,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수신료 제도 중단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가? 논의 초기 단계부터, 공개적으로 수신료 제도 중단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저널리즘 역사학자인 알렉시스 레브리에 랭스 국립대 교수를 만나 프랑스 공영방송의 현주소를 물었습니다.


Q.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

A. 주민세 폐지로 인한 수신료 중단 외에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도 있었다. 특히 극우정당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프랑스에는 극우 성향의 민영방송이 있는데 이 민영방송 그룹을 소유한 뱅상 볼로레(Vincent bolloré)는 지난 대선 기간 극우 성향의 에릭 제무르( Éric Zemmour) 후보를 지지했다. 이 후보는 이민자 문제, 이슬람을 비롯한 종교 문제를 주제로 삼았고, 공영방송에 대해서도 악의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이들은 공영방송이 언론을 지배하며 위협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게 효과가 있었다. 볼로레 미디어 그룹이 나머지 매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많은 국민이 국가적 위기가 공영방송에서 비롯된 거라고 믿게 됐다.

Q. 국민 부담 줄어든 듯 보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A. 여론은 처음부터 공영방송과 역설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국민 누구도 수신료를 납부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신료 제도가 중단되고 국민은 더 이상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 또한 있다.

지난 대선 기간 목격할 수 있었듯이, 공영방송은 여전히 시청률이 높고 평판이 좋으며, 점점 우경화되어 가는 민간 매체의 대안이라는 걸 모두가 확인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에서 공영방송의 인기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특히 공영방송 라디오 채널인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많이 청취하는 방송이며, '프랑스 앵테르'의 아침 프로그램은 매우 인기가 높다.

Q. 재원이 불안정하면 공영방송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A. 내년까지는 부가가치세를 수신료를 대체할 재원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2025년부터는 공영방송의 재원 조달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어떤 방식이 될지 알 수 없다.

수신료는 국민과 공영방송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수단이다. 프랑스는 수신료 체제가 종료되면서 이 연결 고리가 사라졌고, 이로 인해 현재 프랑스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 수신료가 폐지된 전 세계 많은 국가들 상황을 보면 공영방송은 독립성을 잃었고, 예산 또한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수신료를 폐지하는 대신 전액 보상을 실시하는 대안을 강구한다고 말한다. 프랑스 경우도 똑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추가적인 압박이 일어나고, 공영방송에 투입되는 예산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영국과 독일처럼 이에 저항하고 있는 국가들 내에서도 여야 정치인, 때로는 민간 언론이 공영방송 유지를 위해 지출되는 세금을 비판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Q. 수신료 중단 후 공영방송의 변화? 편성 압력

A. 프랑스에서는 (권력에 비판적이거나, 정치를 풍자하는) 평론가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출연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오랜 전통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실제 지난 대선 당시, 좌파 성향의 평론가들이 라디오 방송에 많이 출연했는데, 이 프로그램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례 없는 수준의 청취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최근 공영방송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압력을 목격할 수 있었고, 이것은 매우 염려되는 부분이다.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압력은 이들 프로그램에서 평론가들을 하차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어 공영방송 경영진은 이 일일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일요일에만 축소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을 폐지하며, 경영진이 밝힌 이유가 전혀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에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공영방송 경영진이 정치적 담론에 복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게 사실이라기보다 일종의 (공영방송의) 자기 검열이라고 생각한다. (※ 프로그램 폐지를 막아달라는 청취자 청원에 일주일도 안 돼 8만 명 이상 서명)

또 다른 인기 있는 공영방송 라디오 채널인 '프랑스 문화(France Culture)'와 '프랑스 음악(France Music)'은 야심 찬 문화 채널인데 앞으로 더이상 뉴스는 하지 않고, '프랑스 문화' 채널에서는 일부 뉴스를 폐지할 예정이다.

Q. 프랑스 공영방송의 미래는?

A. 프랑스 정부는 수신료 폐지 이후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위협받지 않도록 수신료를 대체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한다. 지금 그 단계인데, (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방송 콘텐츠에 대한 압박, 재원이 감소되면서 콘텐츠가 사라지고, 기자가 사라지고, 평론가가 사라지게 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예산이 더 줄어들면 프로그램의 질도 떨어질 것이다. 정보의 질이 좋지 않으면 일반적인 수순은 민영화로 가는 것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영방송 프로그램이 변화하고 품질과 독립성을 잃게 될 위험이 있다. 수신료가 폐지된 모든 곳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고, 안타깝게도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Q. 넷플릭스 같은 OTT 등장, 공영방송 위기

A. 공영방송은 세금을 내면 누구나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공공재이다. 반면 유료로 시청할 수 있는 민영방송이 있는데, 최근 유료 매체가 점점 늘고 있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따라서 수신료를 더 이상 내지 않으면 그 대신 구독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공영방송을 즐겨 찾던 대다수 사람은 구독료를 낼 방법이 없어 정보를 얻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얻게 될 위험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 등이 벌이고 있는 '정보 전쟁'을 예로 들 수 있다. 공영방송은 군사적 이해관계를 가진 광고주나 기업인의 압력에서 벗어나 이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체제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는 일부 국가가 벌이는 '(잘못된) 정보 전쟁'에 저항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공영방송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적 특권을 가진 계층은(여러 경로를 통해) 항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반면, 대중은 외부 국가가 통제하는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공영방송 수신료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한국 국민들이 독립적인 공영방송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민주적인 삶을 지지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의 재정이 위협받는다면 민주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훼손될 수 있다.

알렉시스 레브리에(Alexis Lévrier)는 저널리즘 역사학자다. 현재 프랑스 랭스 국립 대학 교수로, 파리 정치 연구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 언론 역사 등을 주로 연구해왔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