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피로감 ‘일타강사’가 단박에 정리했다

김은형 2023. 7. 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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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실패, 실패, 실패.

2023년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흑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쇠락해가는 마블스튜디오를 대신해 영광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던 <플래시>가 말 그대로 ‘처절하게’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달 중순 전세계 개봉한 <플래시>는 2주차부터 70%가 넘는, 디시(DC)스튜디오 작품 사상 최고의 드롭율(전주 대비 관객 감소 지표)를 기록하면서 디시뿐 아니라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에도 2억달러가 넘는 역대급 손실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마블의 가장 큰 실패로 기록된 2월 개봉작 <앤트맨과 와스프:퀀텀 매니아>보다 한술 더 뜬 것이다. 마블의 5월 개봉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가오갤3)은 수익을 거뒀지만 이 역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시리즈 완결편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최종 수입은 8억달러대였던 전편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가오갤3>처럼 <플래시>도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다. 슈퍼히어로의 성장담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무난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난에 가까운 실패가 된 데는 ‘슈퍼히어로 피로감’ ‘멀티버스 피로감’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오갤>시리즈의 제임스 건 감독은 지난 4월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슈퍼히어로 피로감 같은 것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슈퍼히어로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기보다는 감정을 고양시키는 스토리의 빈곤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야기의 원인 중 두드러지는 게 멀티버스 세계관이다. 마블은 <어벤져스:엔드 게임>(2019)이후 ‘멀티버스 사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 이후 영화 제목처럼 정리되지 않는 멀티버스 세계관 혼돈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송경원 영화평론가는 “<엔드게임> 이후 멀티버스 무대는 이야기에 상상력과 가능성을 부여하기는커녕 혼란만 가중시켰다”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경우 등장인물과 정보량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여기에 어떤 필연성이나 인과관계를 아직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플래시>가 멀티버스를 다루는 방식은 <대혼돈의 멀티버스>나 <퀀텀매니아>보다 낫다는 평가지만 너무 늦게 도착한 멀티버스라는데 이견을 찾기 힘들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특징인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현실적 액션, 컴퓨터그래픽(CG)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볼거리도 식상함을 주는 요소다. <플래시>에서는 영화 초반 플래시가 병원 고층에서 떨어지는 신생아들을 저글링하듯 잡아내는 컴퓨터그래픽 장면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지만 전형적인 영웅 액션담인 <인디아나 존스:운명의 다이얼>이 시리즈 가운데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견되는 데는 노구의 인디아나 존스를 액션영웅으로 내세우며 시지를 과하게 사용한 액션장면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12일 개봉하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 코닝 파트 원>은 이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문제점들에 족집게 해답을 주겠다고 작정한 ‘일타강사’ 같다. 지난해 <탑건:매버릭>에서 직접 전투기 조종에 나선 걸 강조해 홍보효과를 톡톡히 본 톰 크루즈는 이번 영화에서 <매버릭>뿐 아니라 시리즈 전작들보다 강도 높은 액션을 직접 구현한다. 모터바이크를 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모든 스턴트 장면을 직접 촬영했고 촬영동영상 공개 등을 통해 홍보 포인트로 활용했다. 단지 홍보 차원이 아니라 스크린에 담긴 액션은 아슬아슬함이나 위험함 못지않게 실제 일그러지고 숨 가쁜 톰 크루즈의 얼굴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지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액션의 육체성을 만져질 듯한 질감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액션의 강도보다 대단한 건 액션의 설계다. 무너진 다리 아래로 한칸 한칸 추락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이단 헌트(톰 크루즈)와 그레이스(헤일리 앳웰)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전성기 때 <인디아나 존스>의 기발하고 심장 쫄깃한 액션 설계를 21세기 방식으로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 구조 역시 복잡하지 않다.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공지능(AI) ‘엔티티’를 가지려는 세력들간의 싸움에서 이단 헌트가 누구에게도 이 시스템의 열쇠를 주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로 전작들을 안봐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내년에 개봉하는 2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한 단계를 확실히 마무리해 찜찜함도 남기지 않는다.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전문가 평가) 98%로 개봉 뒤 관객평가는 이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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