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 그리고 22살의 김재희

정문영 기자 2023. 7. 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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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3년 차 김재희. 사진 제공=박태성 골프전문 사진기자
[서울경제]

올 시즌 목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이 떨어지기까지는 1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승이죠. 누가 뭐래도 우승이죠, 그냥 우승이죠.” 망설임 없이 속사포 래퍼를 연상케 하는 빠른 대답을 내놓은 주인공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3년 차 김재희다.

아빠 옆 체육소녀에서 우승 꿈꾸는 정규투어 선수로

초등학교 6학년, 13살의 김재희는 ‘체육소녀’였다. 학교에서 배드민턴, 수영, 달리기 등 운동을 하면 항상 친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간 골프연습장에서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김재희의 스윙을 본 레슨 프로는 선수로 키워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김재희의 골프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재희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몸 쓰는 걸 좋아해서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면서 “그런데 우연히 아빠를 따라간 골프연습장에서 프로골퍼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고등학교 1학년 때 김재희는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됐다. 이어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히며 성장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2019년 KLPGA 정규투어 진출이 걸린 시드 순위전에서 70위에 그쳐 드림(2부) 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승승장구하며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진 것이다.

김재희는 “지금 생각해 보면 드림 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며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또 보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림 투어 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드림 투어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2020년 드림 투어 시즌 개막전 우승을 시작으로 5차전과 13차전에서도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시즌 상금 1억 원을 돌파하며 상금왕까지 차지했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2021시즌 KLPGA 정규 투어 출전권을 당당히 거머쥐었다.

김재희. 사진 제공=KLPGA

2023시즌 키워드는 ‘우승, 톱 10, 안정적’

아직 우승이 없는 김재희는 올 시즌 키워드로 우승을 첫손에 꼽은 뒤 ‘톱 10’과 ‘안정적’이란 말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지난 시즌 김재희는 29개 대회에 출전해 톱 10에 한 차례 이름을 올렸다. KLPGA 5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공동 3위가 유일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안 좋다가 한 번 큰 대회에서 잘 친 거였는데 올해는 안정적으로 상위권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김재희는 170㎝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버 샷 평균 250야드의 장타가 강점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페어웨이 안착률 97위(63.8%)의 정확성이 아쉬웠다. 그가 지난해 부진의 원인으로 꼽은 것도 드라이버의 정확도다.

그는 “지난해 드라이버 샷이 왼쪽으로 감기는 볼이 몇 번씩 나왔었다. 그날 스코어가 좋아도 티샷 OB가 한두 번씩 나와 스코어를 줄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래서 겨울 전지훈련에서 드라이버 정확도를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아마 OB 부분에서 많이 보완됐을 것이다. 그것 만해도 한 라운드에서 적어도 2타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즌 초반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실망할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 안 가지고 멀리 바라보면서 ‘우승’을 꼭 이뤄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2023시즌 키워드만큼 김재희에게 중요한 단어가 있다. 바로 홀인원이다. 김재희는 지난해 1억 2000만 원 상당의 고급 승용차가 부상으로 걸린 대회 파3 홀(186야드)에서 투어 데뷔 후 첫 홀인원을 기록했다. 당시 껑충껑충 뛰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혀 골프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튜브에 게재된 홀인원 당시의 영상은 현재 조회수 162만 회를 넘겼다. 그런데 이 홀인원이 실수로 뒤땅을 쳐서 나왔다고 밝혀 더 화제가 됐다.

김재희는 “지난해 부상으로 받은 차는 현재 아버지가 타고 계신다. 만약 올해도 차가 부상으로 걸린 홀이 있다면 거기서 꼭 홀인원 해보고 싶다”고 했다. 차 말고 홀인원 하면 받고 싶은 부상이 또 무엇이냐고 물으니 “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 집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저만의 집을 얻게 된다면 집 인테리어 직접하고 예쁘게 다 꾸미고 싶어요.” 여기에 작은 소망도 덧붙였다. 그는 “혹시나 친구들이 집들이 선물을 해준다면 장식품이나 스피커를 선물로 받고 싶다”며 웃었다.

“이장님, 대회장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김재희는 KLPGA 투어에서 팬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선수로 유명하다. 실제로 대회장에서 만난 김재희는 첫 홀 티샷을 위해 이동하던 중 팬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였다. 또 자신과 이름이 같은 꼬마 팬을 만나 반갑다며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KLPGA 투어 생활을 하면서 성취한 것 중 가장 뿌듯한 점도 “팬들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성적을 내면 많은 팬들이 좋아해 줘서 정말 기쁘다. 그래서 더 안정적인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김재희는 “아마 팬들과 소통을 자주 해서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팬 카페에 글도 직접 남기고 팬들이 갤러리로 오면 인사뿐만 아니라 ‘오시는데 많이 힘드셨죠?’ ‘빨리 오셨네요?’라며 살갑게 잘하는 편”이라며 미소 지었다.

기억에 남는 팬 중에는 ‘마을 이장님’도 있다. 팬 카페 회장을 맡고 있는 팬의 닉네임이 ‘마을 이장님’이다. 김재희는 “드림 투어를 뛸 때부터 매번 대회장에 오셔서 응원을 해주신 감사한 분이다. 또 울산에서 오시는 부부 팬도 계시고 많은 갤러리 중 홍일점을 맡고 계신 언니 팬도 있다”고 했다. 또 혹시나 언급하지 못한 팬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을까 “잠시만요, 잠시만요”라며 기억에 남는 팬들을 생각해 내려는 그의 모습에서 팬들을 아끼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김재희. 사진 제공=KLPGA

의연한 선배와 무서운 후배들

김재희의 롤모델은 ‘골프 여제’ 박인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메이저 대회 7승을 포함해 통산 21승을 거뒀다.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으며 5대 메이저 중 4개 대회에서 우승해 아시아 선수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김재희는 “함께 경기해 본 경험은 없다. 감히 선배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딱 봤을 때 대인배라는 느낌이 든 선배였다”면서 “경기를 하다보면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가 있는데, 항상 의연한 모습으로 플레이하는 박인비 선배의 모습을 닮고 싶다”고 밝혔다.

가장 아끼는 후배는 KLPGA 투어 데뷔 2년 차 이예원이다. 김재희는 “예원이가 올해 개막전에서 우승하자마자 바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뿐만 아니라 김재희는 지난해 모교인 인천금융고등학교에 주니어 골프 육성 장학기금 1000만 원을 메인 스폰서와 함께 전달했을 정도로 후배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그런 그에게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뼈 때리는 조언이 날아왔다. “얘들아 무섭다. 그만 치고 올라와라(웃음). 구력이 쌓이면 점점 알게 될 거다. 나도 몰랐단다. 프로 세계는 치열하단다.”

시즌 중엔 휴식에, 시즌 후엔 놀기에 진심

인스타그램 팔로워 2만 명을 돌파한 김재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성적이 좋은 대회에서 사진을 올리면 팬들이 많이 팔로우해 주신다. 그래서 성적이 좋을 때마다 사진을 올리는 편”이라면서 “제 SNS에 사진이 많이 올라오면 그 대회 때 제가 잘 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재희의 SNS를 들여다보면 동료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특히 메인 스폰서인 메디힐 골프단 소속 선수들과 함께한 사진이 많다. 올해 3월 열린 디오션 비치콘도·발리스틱컵 골프구단 대항전에서는 안지현과 함께 출전해 돈독한 우정을 뽐내기도 했다. 그는 “메인 스폰서인 메디힐 골프단 선수들과 정말 사이가 좋다”면서 “팀 선수들과 함께 나중에 시즌이 끝나면 하와이 가서 스노클링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하와이 바다가 펼쳐지는 듯 김재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화제를 바꿔 쉴 땐 뭐하냐고 물었다. “시즌 중에는 진짜 방에서 쉬기만 해요. 나가서 놀고 싶기는 한데 나가서 노는 것도 체력이 많이 소비돼요.” 여느 20대 초반의 대학생처럼 김재희는 “놀 때도 진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즌 끝나고 많이 나가서 놀아요. 노래방 가서 몇 시간씩 노래 부르고, 보드게임 카페 가서 소리도 지르고, 그냥 카페 가서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어요. 진짜 열심히 놀아요.”

김재희. 사진 제공=박태성 골프전문 사진기자

22세 김재희의 위시리스트

김재희는 하고 싶은 것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가보고 싶은 곳도 많다. 그런데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는 ‘며칠이 지나도 스윙감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그는 “골프라는 운동이 며칠만 손을 놓아도 감이 바뀌는 스포츠다. 그래서 마음대로 편안하게 쉴 수가 없다. 만약 감이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를 단다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감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이 달리자 김재희의 위시리스트가 펼쳐졌다. 먼저 한때 체육소녀였던 그답게 서핑과 스키가 등장했고 이어 드럼, 유튜브까지 나왔다. “실내 서핑은 해봤는데 해외에 나가서 바다 서핑을 해보고 싶어요. 다치지만 않는다면 초등학교 때 자주 탔던 스키도 다시 타보고 싶고요. 그리고 한 번도 직접 해본 적은 없는 드럼 연주를 배워보고 싶은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취미를 물었을 때 드럼 연주라고 하면 뭔가 멋있어 보일 것 같지 않나요.” 이어 “지금은 골프 때문에 힘들지만 나중에 골프를 안 한다면 유튜브 채널도 운영해 보고 싶다”며 “브이로그랑 골프 레슨, 그리고 다른 스포츠 체험해 보는 콘텐츠로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돌이 빠질 수 없다. 김재희는 함께 라운드하고 싶은 ‘꿈의 포섬’ 멤버로 방탄소년단(BTS) 진, 블랙핑크 로제, 그리고 아이유를 꼽았다. 그는 “아이돌을 좋아한다. 시즌 중이어서 못 가지만 콘서트도 가보고 싶다”면서 “BTS 멤버 진을 가장 좋아하는데 꼭 우승해서 언젠가 BTS가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여자 프로배구도 보러 가보고 싶다는 김재희는 “GS칼텍스 소속 강소휘 선수가 저랑 정말 닮았다고 주변에서 얘기를 많이 들어서 꼭 직접 경기장에 가서 경기도 보고 만나 뵙고 싶다”고 설명했다.

골프를 떨쳐버리고 신나게 위시리스트를 나열하던 김재희였지만 결국 끝에는 골프로 돌아왔다. “그래도 골프선수로서 저를 더 알리고 싶어요. 김재희라는 이름을 얘기하면 다들 알 만한 그런 선수, 그리고 골프선수하면 김재희가 떠오르는 그런 선수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몇 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런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정문영 기자 my.j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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