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커리어는 외국인선수 하기 나름이었다

김종수 2023. 7. 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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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토리⑧] 외국인선수로 울고 웃던 2인 출전 시절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의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KBL은 종목의 특성상 더욱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데, 그로인해 어떤 외국인선수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성적에서의 등락이 확연하게 차이나기 일쑤다.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일단 외국인선수는 잘해야 한다. 기량을 보고 데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팀내 핵심급 토종선수 이상의 활약을 기본적으로 바란다.


특히 외국인선수 2명이 동시에 코트에 서던 시절은 ‘외국인선수 운이 명장을 만든다’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프로 원년 원주 나래(현 DB)가 대표적이다. 나래는 산업은행, 한국은행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됐던 팀으로 KBL 원년 시즌 유력한 꼴찌 후보였다. 하지만 잘 뽑은 외국인 듀오 칼레이 해리스(53‧183㎝)와 제이슨 윌리포드(50‧194.4cm)를 앞세워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나래의 토종선수로는 장윤섭, 정인교, 강병수, 이인규, 이승학, 김상준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산업은행 에이스 출신 3점슈터 정인교 정도 외에는 타팀의 벤치멤버 정도에 불과했다. 해리스는 폭발적인 공격력이 압권이었고 윌리포드는 내외곽을 넘나들며 안정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국내기준 전천후 빅맨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가 실행되고있던 초창기에는 외국인선수를 뽑는데 있어서 이른바 ‘운’이 많이 작용했다는 부분이다. 지금이야 전력분석팀은 물론 농구를 직업으로 하지않는 매니아 팬중에서도 외국인선수에 박식한 이들이 많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최소한의 기본적인 정보만 듣고 가거나 아님 현장에서 잠깐 연습경기를 보는게 전부였다.


당시 나래를 이끌었던 최명룡 전 감독은 ‘농구人터뷰’와의 인터뷰를 통해 "1라운드에 뽑은 해리스같은 경우는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문제는 2라운드였는데 지명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고 이에 현장에 있던 대학코치에게 남아있는 선수중 쓸만한 재목을 물어봤고 윌리포드를 추천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감독은 나름 신경을 쓴편이다. 별다른 정보도 없이 그냥 경기만 보고 뽑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최감독과 윌리포드의 궁합은 좋았다. 힘좋고 영리했던 윌리포드는 미국에서는 슈팅가드를 봤지만 국내에서는 센터로 맹활약했다. 폴란드 백인 여성인 윌리포드 어머니는 “윌리포드가 말을 듣지않으면 때려서라도 교육을 시켜달라”고 말할 정도로 최감독에게 깊은 신뢰를 보냈고 그로인해 최감독과 윌리포드는 아버지와 아들같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단이 트레이드 시켜버리는 바람에 삐뚤어져서(?) 그렇지 나래시절에는 악동 이미지도 없었다. 물론 외국인선수의 비중이 큰 만큼 안하무인인 케이스도 적지않았다. 윌리포드로 재미를 봤던 최감독이지만 이후에는 외국인선수들로 인해 적지않은 마음 고생을 해야만 했다. 

 


원년 해리스는 외국인코치와도 수시로 싸움이 붙었을 정도로 코트 안에서는 물론 바깥에서도 다혈질 성향이 심각했다. 윌리포드 트레이드 이후 함께했던 데릭 존슨(51‧205.4cm), 토니 해리스(2007년 사망·188.7cm)는 동시에 골치덩어리였다. 해리스는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경기중에도 수시로 짜증과 성질을 부렸으며 존슨같은 경우 횟수는 잦지않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않는 상황이 생겼다싶으면 경기를 하다가도 그냥 벤치로 들어가버렸다.


그런 상황은 비단 나래뿐만이 아니었다. 기아(현 울산현대모비스)는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인해 사실상 외국인선수가 한명만 뛰는 상황에 직면했고 그로인해 허재가 미친 활약을 펼쳤음에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적지않게 골머리를 앓아야했던 최인선 전감독은 “원년 우승시 조연 역할을 묵묵히 해준 로버트 윌커슨이 얼마나 좋은 선수였는지를 새삼 느꼈다. 외국인선수는 기본적으로 인성이 먼저다”는 속내를 이후 털어놓기도 했다.
 

외국인선수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지도자 커리어 자체가 바뀐 감독도 적지않다. 창원 LG 초대감독이었던 이충희는 타팀에 비해 토종 선수들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첫해 정규리그 2위라는 호성적을 냈다. 여기에는 나홀로 대부분의 득점을 책임졌던 버나드 블런트(51·188㎝)의 힘이 컸다.


이감독은 블런트에게 자유롭게 공격을 맡기고 국내 선수들은 수비에 집중하면서 받아먹는 슛에 집중하게 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한계가 드러났지만 적어도 정규리그에서는 나름 잘 통했다. 하지만 블런트 효과로 KBL에 순조롭게 연착륙했던 이감독은 얼마 지나지않아 뒤통수를 얻어맞고 만다. 블런트는 시즌중 아무도 모르게 짐을 싸서 야반도주해버렸고 그로인해 LG와 이감독은 동반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외국인선수 그것도 에이스급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블런트같이 도망을 쳐버리면 팀으로서는 답이 없어진다. 팀 오펜스의 대부분이 해당 선수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던 상태인지라 어떤 명장이 와도 수습이 어렵다. 대구 동양 또한 기둥 센터로 팀의 중심을 잡아주던 그렉 콜버트의 야반도주 이후 32연패라는 치욕을 당한바있다.


그러한 사건이 반복되면서 많은 지도자와 관계자들은 외국인선수는 기량못지않게 성격, 인성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인식하게 됐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선수 사건사고도 끝없이 이어지고있지만 선발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던 KGC와 SK가 2옵션 외국인선수인 대릴 먼로(37‧197cm), 리온 윌리엄스(36‧197cm)와 계속해서 동행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이러한 이유도 크다.

 


한때 LG의 공격농구를 주도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김태환 전 감독은 조성원과 조우현의 '국가대표급 쌍포'에 에릭 이버츠(49‧198cm)라는 백인 외국인선수를 앞세워 재미를 봤다. 이버츠같은 경우 흑인 외국인선수들에 비해 운동능력은 떨어졌지만 정확한 슛과 높은 BQ를 통한 안정적인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김감독은 이후 SK에서도 특유의 공격농구를 이어가고자했으나 중심에 있던 게이브 미나케(45‧195.5cm)의 부상으로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53‧197cm)를 주축으로 코리아텐더 돌풍을 일으키며 젊은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던 이상윤 전감독은 그러한 명성을 바탕으로 SK 암흑기를 끝낼 적임자로 기대를 받으며 팀을 옮긴 바 있다.


이감독이 가장 믿던 무기는 외국인선수 1라운드 지명권 2장이었다. 당시 이감독은 황성인을 LG에 주고 전형수를 받아오면서 외국인선수 1라운드 지명권까지 받아왔다. 당시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제도는 전시즌 팀성적이 반영되었던지라 SK는 1라운드 6순위 안에서 둘을 뽑을 수 있었다.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런 가운데 변수가 생겼다. 단장 회의를 통해 갑자기 외국인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감독은 열심히 발품을 판끝에 크리스 랭(44‧211cm), 레너드 화이트(52‧192.8cm)라는 경쟁력있는 외국인선수 조합을 완성할 수 있었다. 둘의 조합은 훌륭했다. 시즌초 한때 1위까지 내달렸다.


하지만 갑자기 화이트가 아랫배가 아프다고 호소했고 검진을 했지만 주치의는 물론 국내 유명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으며 갈등이 시작됐다. 결국 부랴부랴 대체 외국인선수를 구했지만 연달아 실패가 나며 SK는 하위권으로 처지고 만다. 2인출장 시절 외국인선수의 영향력을 새삼 알 수 있는 일화들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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