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부진·국세수입 감소에…1분기 국내 여유자금 13.9兆 ‘뚝’

가계 여유자금 12조1000억원 늘어
“금리상승·부동산 한파에 대출 줄어든 영향”
기업·정부는 ‘굴린 돈’ 큰 폭 감소
정부, 한은 대출금 31兆 ‘역대 최대’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 정부의 여유자금이 14조원 가까이 줄었다. 대출금리 상승, 부동산 시장 한파로 가계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 부진과 국세수입 감소의 여파로 기업과 정부의 자금사정이 나빠진 영향이 컸다. 정부의 한국은행 차입금도 31조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3년 1분기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국내 부문의 순자금운용은 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15조1000억원)보다 13조9000억원 줄었다.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의 여유자금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는 의미다.

순자금운용은 예금, 채권, 보험, 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 조달)을 뺀 금액으로, 경제 주체의 여유자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금액이 마이너스(-)일 경우 순자금조달로 표현한다.

가계의 여유자금은 증가했지만, 기업과 정부가 굴린 돈이 빌린 돈보다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전체 순자금운용 규모가 축소됐다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올 1분기 국내 부문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2020년 2분기 이후 11분기 만에 가장 적었다.

부문별로 보면 우리나라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은 76조9000억원으로 1년 전(64조8000억원)보다 12조1000억원 늘었다.

대출금리 상승, 부동산 시장 둔화로 가계가 은행 등에서 빌린 돈이 줄어든 가운데 가계소득은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여유자금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올 1분기 399만1000원으로 1년 전(386만원)보다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분양물량은 9만8000호에서 3만5000호로 줄었고,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3.94%에서 5.22%로 상승했다.

기업의 여유자금은 감소 흐름을 이어갔다. 일반기업으로 대변되는 비금융법인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42조3000억원으로 1년 전(35조3000억원)보다 확대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수출 부진에 따른 영업이익 축소 등으로 기업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순조달 규모가 커졌다”고 했다.

일반정부도 연초 경기 둔화,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국세수입이 줄면서 순조달 규모가 23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전년 동기(10조7000억원) 대비 12조4000억원 확대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세수입은 지난해 1분기 111조1000억원에서 올 1분기 87조1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정부의 경우 1분기 자금조달 규모 74조7000억원 중 한국은행 대출금이 31조원을 차지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문혜정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자금순환팀장은 “정부가 1분기 국채 발행을 덜 한 대신 한국은행 대출금을 더 많이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총금융자산은 2경4270조1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539조6000원 늘었다.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의 비중은 1.1%포인트(p) 하상승한 21.5% 반면, 대출금 비중은 0.4%p 내린 18.1%로 집계됐다.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21배로 전분기(2.14배)보다 상승했다. 가계의 금융자산 잔액은 5051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