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14) 성균관대 민기남 “단 1%라도 도움 될 자신 있다”
#낮은 신장을 무마했던 ‘열정’
농구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민기남은 초등학교 4학년 당시 인헌초에서 여름방학에 진행한 농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농구를 좋아하는 만큼 기본적인 규칙과 기술 등 지식이 많았고 당시 인헌초 코치 눈에 띄었다. 일주일 프로그램이었지만, 민기남은 방학이 끝날 때까지 인헌초 농구부 학생들과 운동을 했다.
재능을 알아본 코치는 방학 막바지 민기남의 부모님을 만나 설득에 성공하며 곧바로 전학 절차를 밟았다. 본격적인 선수 생활에 부침이 있었지만, 농구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큰 고비는 없었다. 신장이 큰 선수도, 교체 선수도 부족했던 전력이지만, 예선 통과 및 후반 역전승 등 짜릿한 추억을 쌓았다.
연계학교인 광신중으로 진학한 민기남. 중학교 입학 당시 그의 신장은 145cm였다. 낮고 왜소한 탓에 많은 출전은 어려웠지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모든 훈련에 성실하게, 열심히 임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진 못할 것 같다고.
하상윤 코치(現 용인 삼성생명 코치)가 강조했던 두 가지가 수비와 슛이었는데 특히 수비에 신경을 많이 썼고 기본기도 빼놓지 않았다. “3년 내내 수비를 강조하셨어요. 2학년 올라가서부턴 체력 훈련을 줄이는 대신에 패스, 드리블, 피벗 등 더욱 기본기에 집중하셨죠. 이 부분은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도움이 되고 있어요.”
2학년 땐 서울 SK나이츠&나이키 빅맨캠프에 선발돼 제이슨 라이트 코치의 스킬 트레이닝 DVD를 상품으로 받기도 했다. 광신중 최단신 선수였음에도 열정 하나만으로 상을 받은 것이다.
끈기를 인정받으며 앞만 보고 전진한 민기남. 사실 2학년 당시 3학년 선수가 모두 농구를 그만뒀고 1, 2학년으로만 이루어진 팀이었기에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패배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이 됐고 그가 3학년이 됐을 때도 기세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초반엔 고비가 있었다. 2016 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예선에서 약체로 평가됐던 군산중 상대로 1점 차 패배(78-79)를 당했다. 충격적인 패배였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 경기를 만약 잡았다면 ‘그래도 다행이다’하면서 잊었을 텐데 패배함으로써 놓친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음 경기부터 하나하나 우리 분위기를 찾아갔고 수비 프레스도 잘 맞아들어갔습니다.”
이후 준결승전에서 전주남중을 상대하게 됐다. 당시 광신중에서 최장신이었던 이두호(단국대)가 193cm 남짓이었는데 전주남중에는 200cm의 이두원(KT)이 있었다. 모두가 전주남중의 승리를 예상한 경기. 그러나 이 경기에서 민기남은 소위 ‘인생 경기’를 펼치게 된다.
광신중 에이스였던 김재현(고려대)의 개인 반칙 개수가 불어나면서 민기남은 ‘내가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3점슛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팀은 16점 차 승리(96-80)를 거두면서 민기남은 3점슛 6개 포함 28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다. 비록 결승에서 홍대부중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지만, 광신중은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돼서도 그에게 붙은 꼬리표는 ‘피지컬’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165cm였던 민기남은 중학교 1학년 때처럼 출전 시간이 길진 않았다. 학년을 거듭할수록 불안감이 커졌고 팀 구성도 센터 포지션이 불안정했기에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란 없었다. 신장도 조금씩 성장세를 보였고 승리를 위해 수비도 더더욱 악착같이 했다. 제49회 추계전국남녀중고농구 남고부 부산중앙고와의 예선전에서 민기남은 끈질긴 수비뿐만 아니라 20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 2스틸을 올리며 팀의 107-78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성균관대 입학 후 2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첫 번째. 관중이 들어선 대학농구의 열기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회 취소와 연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농구를 하면서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었던 그가 2학년 때 손가락 개방성 골절로 1차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연속된 실망감에 심적으로 지친 상황. 그때 김상준 감독은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을 건넸고 힘을 받은 민기남은 깁스를 풀고 난 뒤 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3차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민기남은 경희대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벤치에 앉아서 투입되면 어떤 선수를 상대할지 생각하는데 (김)동준이 형(현대모비스)을 막을 확률이 높았어요. 뛰고 있는 형들한테 동준이 형이 어디 쪽으로 가는지 계속 말해줬는데 제 말이 잘 안 들리니까 형들이 모르더라고요. 그때 감독님이 바로 저를 투입하셨어요. 제가 첫 수비에 성공하고 공을 못 잡게 하니까 벤치 분위기가 올라왔어요. 그런 사소한 플레이 하나로 분위기를 올리는 게 목표였습니다.”
3학년 땐 득점에 있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특히 포인트가드로서 리딩 부분을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 포지션 프로 선수들의 영상을 끊임없이 찾아보며 연구했다.
졸업을 앞둔 올 시즌은 성균관대가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짓는 데 이바지했고 건국대전(4월 5일)에선 24점 3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100%(4/4)를 기록하며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쯤 민기남은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프로에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제 바람은 프로 타이틀을 따고 계약 기간만 채우고 나오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아요. 농구를 계속하고 싶고 어느 팀에 가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의 각오 속에서 확신이 묻어나기도 했다. “매 경기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는 걸 실천으로 보여왔습니다. 어느 팀에 가든 벤치에 있더라도 팀의 분위기를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어떤 역할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도 있고요. 단 1%라도 팀에 도움이 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롤모델로 허훈(상무)과 정성우(KT)를 꼽았다. 두 선수처럼 포인트가드 자리에서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싶은 민기남. 과연 그의 진심이 프로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_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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