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신조 사건, 내부 좌경맹동분자가 한 것” 남측에 해명

조재연 기자 2023. 7. 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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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좌경기회주의, 우경기회주의, 좌경맹동주의, 우경분자가 있습니다. 청와대 사건은 좌경맹동주의자가 한 것입니다."

통일부가 6일 공개한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의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1678쪽)엔 이 같은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비밀접촉 상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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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 남북회담문서 1678쪽 공개
1971~1979년 비밀접촉 등 담겨
이후락 “간첩관련 할 말 많다”
北김영주 “다 처벌했다” 발뺌
南 “통일, 책임지고 풀어가자”
北 “합시다, 그럽시다” 화답
북측 접견한 박정희 전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5월 31일 서울을 방문한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을 접견하고 있다. 통일부는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2권(1678쪽)을 6일 공개했다. 통일부 제공
이후락-김일성 악수  김일성(오른쪽) 북한 주석이 1972년 5월 3일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좌경기회주의, 우경기회주의, 좌경맹동주의, 우경분자가 있습니다. 청와대 사건은 좌경맹동주의자가 한 것입니다.”

통일부가 6일 공개한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의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1678쪽)엔 이 같은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비밀접촉 상황이 담겼다. 당시 1972년 5월 2일 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간첩 문제를 제기하는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향해 “내가 할 이야기가 더 많다”고 맞받자, 김 부장은 “청와대 사건 말이냐”면서 “군부에 있는 맹동분자들이 조직했고, 우리는 후에 알고 다 처벌했다”고 발뺌했다.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이 부장이 “앞으로는 그런 맹동분자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자 김 부장은 “앞으로는 절대 없다”고 다짐했다.

당시 회담에선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이 부장이 “나는 통일문제는 이념을 초월하여 생각하고 있다”며 “북쪽은 김 부장이 책임지고, 남쪽은 내가 책임지고 남북문제를 차근차근 풀어 가자”고 제안하자 김 부장은 “합시다. 그럽시다”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6·25전쟁의 성격, 주한미군 철수, 대일본 정책 등을 놓고서는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부장이 “일본 군국주의가 초보적인 남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부장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다시 침략을 받을 우둔한 민족이 아니라고 본다”고 맞받았다. 박정희 정권의 비상사태 선포에 관해 김 부장이 “일본과 미국이 추켜서 쳐들어올 것으로 알았다”고 하자 이 부장은 “추킨다고 추켜지느냐”며 “박 대통령 정부는 미국과 일본이 추킨다고 그렇게 할 정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번에 공개된 남북회담문서에는 이 부장의 평양 방문 뒤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해 이 부장과 회담하고, 이어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 동시에 발표되는 과정도 담겼다. 남북 직통전화의 가설과 운용절차에 관해 합의가 이뤄지며 직통전화도 공식화됐다. 이후 남북조절위원회를 정식으로 구성해 세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북측의 일방적 선언으로 1973년 8월 28일 중단됐다. 남북조절위를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할 것에 동의한다면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끝에 부위원장 회의가 10차례 이어졌지만, 박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남침용 땅굴 발견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끝에 이마저 중단됐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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