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대법원에서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안혜민 기자 2023. 7. 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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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보는 미국 연방 대법원 다양성

✏️ 마부뉴스 네 줄 요약

· 미국 연방 대법원이 대입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Affirmative Action(AA)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 트럼프 정권을 거치면서 미 연방 대법원이 보수화되었고 그 영향으로 임신중절권, 총기규제, 소수인종 우대 정책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 보수적인 판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사라지면 대학교 내 구성원의 다양성이 부족해질 뿐 아니라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줘 임금 격차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최근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 2명 모두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으로 채워져 우리나라에서도 대법원 다양성 부족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부뉴스는 1주일 간의 꿀 같은 휴가를 마치고 하반기에도 열심히 달리기 위해 재정비를 마쳤어요. 마부뉴스가 여름휴가를 다녀온 사이에 국내외에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더라고요. 날씨만 보더라도 장마와 무더위가 연달아 오면서 여름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고, 영유아 관리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출생 미신고 아동 이슈도 있었죠. 서울에선 퀴어퍼레이드가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고, 수능 킬러문항 이슈도 여전히 진행 중이더라고요.

수많은 이야깃거리 중에 마부뉴스가 선택한 주제는 미국 소식입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지난주 목요일, 그러니까 6월 29일에 미국 최고 법원인 미 연방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미국 대입에서는 소수인종을 우대해 온 정책, 이름하여 적극적 우대 조치라는 정책이 있는데 대법원에서 이 제도가 헌법에 맞지 않다는 판결을 내렸거든요. 차별을 막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위헌이라고 선택한 미 대법원을 두고 시끌시끌합니다. 그래서 오늘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다양성이 사라진 대법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국에서 적극적 우대정책이 뒤집혔다


우선 적극적 우대정책, 영어로 하면 Affirmative Action(AA)이라고 불리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레터를 시작해 볼게요. AA가 등장한 건 1960년대입니다. 당시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차별이 미국 내에 있었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했던 게 1963년이니까요. 흑인뿐 아니라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많은 소수인종들이 편견 속에서 자라왔고, 사회에 나가서도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단순한 우대 정책만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상쇄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소수인종에게 대학 입시 과정에서 특혜를 주는 정책이 탄생했죠. 이때 만들어진 게 바로 적극적 우대정책, AA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소수인종을 우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하였고, 그 노력으로 적극적 우대 정책이 미국에 만들어졌습니다.

적극적 우대정책 자체가 소수인종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이니만큼 '역차별' 논란은 과거부터 있어왔어요. 관련해서 소송도 당연히 이어져왔고요. 때마다 대법관의 성향들은 달라지고, 그 달라진 성향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한 번 대법원의 정치 성향을 수치화해서 아래 그래프로 나타내봤어요. 여기서 사용한 수치는 MQ 스코어(Martin-Quinn Score)인데, 대법원의 판례를 분석해 대법관의 진보, 보수 이데올로기 성향을 점수화한 자료입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 성향이 강하고, 왼쪽(-)으로 갈수록 진보 성향이 강하다고 보면 됩니다.


1978년 적극적 우대정책이 역차별이라며 소송을 건 앨런 바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UC 데이비스 의대에 지원했지만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당시 데이비스 의대에선 100명 중 16명은 소수인종에게 할당해 주는 특별 전형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특별 전형의 합격자 평균 점수는 2.88점으로 일반 전형 합격자 평점 3.94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평균 3.46의 성적을 갖고 있던 바키 입장에선 이 특별 전형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했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1978년 당시의 대법원의 정치 성향을 MQ 스코어로 살펴보면 0.156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을 색깔로 나타내서 위의 그래프에 띠 형태로 넣어봤어요. 파란색이 진할수록 진보적 성향을 나타내고, 빨간색이 진할수록 보수적 성향을 나타냅니다. 1978년 연방 대법원의 수치는 중도보수로 볼 수 있을 텐데, 당시 대법원은 소수인종의 자리를 쿼터 운영하는 건 위헌이지만, 적극적 우대 조치 자체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2003년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어요. 이번엔 미시간 대학교를 대상으로 걸었던 소송인데, 중도보수 성향의 당시 대법원도 적극적 우대 정책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죠. 물론 압도적으로 합헌 결과가 나온 건 아닙니다. 대부분 5:4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존립해 온 거였거든요. 2016년에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2023년. 올해 미 연방 대법원의 선택은 위헌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라는 단체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 소원에 대해 각각 6대 3, 6대 2로 위헌 판결을 내렸어요.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최근 연방 대법원의 흐름은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MQ스코어의 데이터는 2021년까지만 나와있어서 현재 대법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하지만 판결 내용을 보면 과거 AA의 위헌 여부를 판결했던 때보다는 더 오른쪽에 있을 겁니다.
 

미 연방 대법원의 보수화

사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적극적 우대조치가 위헌으로 나오는 판결은 시간문제라고 봐왔어요. 과거에도 5:4 정도로 간당간당하게 위헌을 빗나가기도 했고, 지난 트럼프 정부부터 우경화된 대법원의 흐름상 위헌이 나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본 거죠. 트럼프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가장 많은 대법관을 임명했고 그 영향으로 미 대법원은 보수화되었습니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입니다. 본인이 물러난다고 선언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죠. 그런데 트럼프 정부 기간 동안에만 2명의 대법관이 사망했고, 1명이 은퇴했어요. 전체 대법관 9명 중 3명, 3분의 1을 새로 앉힐 기회가 생긴 거죠.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자리에 전임자들보다 보수 성향이 상당히 짙은 대법관들을 앉혔습니다. 기존의 보수 대법관들도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판결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트럼프는 그들의 자리를 젊고 더 보수적인 대법관으로 교체했죠. 현재 미 연방 대법관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보수가 앞서 있는 상황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현재 미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을 볼 수 있는 그래프입니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MQ스코어를 통해 대법관들의 이데올로기 성향을 나타내봤어요.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에 임명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데이터가 없어서 그래프에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잭슨 대법관은 상당히 진보색이 짙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적극적 우대조치 판결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토머스 대법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죠.

대학 입시에서 인종 다양성을 보장했던 적극적 우대조치는 이제 사라졌어요. 그런 판결을 내린 건 정치 다양성이 사라진 연방 대법원이었고요. 정치적으로 편향된 대법원은 과거의 전향적 판결들을 다 뒤집어엎고 있습니다. 예전 마부뉴스에서도 다뤘던 임신중절권이 뒤집어졌고, 총기 규제, 범죄 용의자의 인권, 정교분리 등의 관해서도 모두 보수적 판결이 나오고 있죠. 일부 안건에선 보수 대법관들도 이념이나 정파를 벗어나 개인 신념에 따라 판결을 내렸지만, 굵직한 이슈에선 기존 정파의 방향대로 판결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연방 대법원의 다양성 부족은 예전부터 지적되던 부분이긴 합니다. 지금은 정치적 다양성이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뿐 아니라 출신의 다양성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거든요. 대법관 대다수가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이고 전문 분야도 비 형사법으로 치우쳐져 있죠.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인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일찍이 이 부분을 지적해오고 있었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법관들이 있어야 동일한 사건을 두고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서로 배우고 보완할 수 있는데, 다양성이 사라지면 경직되기 마련이잖아요. 게다가 대법관 직 자체가 종신형인 만큼 다양성의 부족함은 앞으로도 주욱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고요.

소수인종 우대 제도가 사라진 이후엔?

소수인종 우대 제도가 사라진 후의 미국 대학은 어떻게 바뀔까요? 그걸 미리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캘리포니아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선 일찍이 주 단위에서 적극적 우대조치 제도를 금지했거든요. 1996년 통과된 '주민제안 209' 법안은 주 정부의 기관이 고용, 하청, 교육을 할 때 인종과 성별을 기준으로 차별 대우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 법안은 주민 55%의 찬성을 받아 통과됐어요. 이 법안이 통과된 캘리포니아에선 적극적 우대조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96년 적극적 우대조치가 금지되자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대학교인 UC버클리와 UCLA에서는 흑인과 히스패닉 비율이 즉시 줄어들었습니다. 그 영향은 아직도 남아있죠. 1996년 이전엔 7% 수준이었던 UC버클리의 흑인 입학생의 비율은 현재까지도 3%대 중반이거든요. 2022년 가을학기 기준으로 UC버클리의 흑인 입학생 비율은 3.6%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모든 캠퍼스 학생들 중 소수인종(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히스패닉)의 비율을 나타낸 겁니다. 참고로 UC버클리와 UCLA에서 UC가 University of California를 의미하는데요. 캘리포니아 대학교 중 버클리 캠퍼스, LA 캠퍼스 등 이렇게 나눠지는 거죠.

1995년 UC 캠퍼스에 등록한 학생 중 20%가 소수인종이었어요. 하지만 1996년 주민제안 209의 영향으로 부침을 겪었죠. 그래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그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학내 다양성 유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노력한 지 11년 만에야 20%의 비율을 회복했죠. 특히 UCLA는 2004년부터는 500만 달러 이상 투자하면서 인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UCLA에선 적극적 우대조치 없이 인종 다양성을 달성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문을 지난해에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죠.

문제는 다양성 확보의 실패가 단순히 교육 문턱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준다는 겁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령 대학원 진학이라던지, 졸업 후 직업 선택 기회의 접근성까지 영향을 주는 거죠. 2022년에 나온 논문을 보면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입생 데이터와 캘리포니아 연간 연금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우대 조치 철폐 이후에 히스패닉계 학생의 임금이 학업 성적이 비슷한 비 소수인종 그룹에 비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즉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소수인종 우대 제도가 사라진 이후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거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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