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성명 의미 못 살린 남북의 첫 공식 대화…정치 현안에 부침 겪다 파행
北 '군비 축소' 주장에 南 '신뢰' 언급하며 의견차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7·4 남북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추진하기 위해 가동됐던 남북 간 공식, 상시 대화기구인 남북조절위원회는 남북 간 이견을 확인한 채 세 차례 본회의를 끝으로 중단됐다.
6일 통일부가 공개한 '제3차 남북회담문서'에는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진행된 남북조절위원회 1~3차 본회의 내용이 담겼다.
남북조절위원회는 정식 발족에 앞서 공동위원장 회의를 세 차례 개최해 제반 절차 문제를 협의했고 1972년 11월4일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어 1972년 11월30일부터 12월2일, 1973년 3월14일부터 3월16일, 1973년 6월12일부터 6월14일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 가 며 세 차례 본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남북조절위원회는 회의를 진행할수록 양측의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통일 3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대해 남측은 비정치·비군사적인 분야에서부터 불신을 제거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며 정치·군사문제에 점진적으로 접근하자는 입장이었으나 북측은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회담문서를 보면 남측 위원장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1차 본회의에서부터 북측이 군비 축소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7·4 공동성명이 나온지 5개월 만에 벌써 서로 믿고 총을 버릴 정도로 신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
북측 위원장인 박성철 제2부수상은 이에 재차 "총을 왜 버립니까?"라며 "(군비를) 더 증강 하지 않아도 100명 200명 오는 것은 다 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70만, 80만을 무엇 때문에 가지고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라며 군비 축소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남북은 계속해서 '군비 축소'를 두고 양측이 입장차를 확인했으나 북측 대표가 먼저 "노력을 해보자"면서 "우리끼리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인민들이야 말씨름만 하고 그만둔다 하면 되겠습니까?"라며 화제를 돌린다.
남북은 우여곡절끝에 1차 본회의에서 △간사회의 구성 △공동사무국 설치 △조절위원회 운영세칙을 작성 등에 합의한다. 끝으로 박 위원장이 "윗분들이 서로 비공식적으로라도 한 번 만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한 번 말씀해보도록 하자"라고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다만 이 위원장은 "좀 더 분위기를 익혀서 만나뵙는 것이 좋겠다"며 "두 분이 상호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분위기를 우리가 빨리 조성하는데 노력해야 된다"면서 다음을 기약했고, 북측 역시 "네 옳습니다"라고 화답하며 분위기를 이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2차 본회의에서도 북측은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을 그만둘 것 △남북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줄이며 군비를 대폭 감소할 것 △외국으로부터의 일절 무기와 작군장비 및 군수물자의 반입을 중지할 것 △미군을 포함한 일절 외국 군대를 철거시킬 것 △남과 북 사이에 서로 무력행위를 하지 않을 데 대하여 담보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 등 '군사적 문제'의 우선 해결을 주장한다.
이에 남측 대표는 "(북측이 제시한) 이러한 여건을 촉진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신뢰의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이것을 누누히 강조한 바 있다"면서 "신뢰의 바탕이 없는 속에서 군비를 축소한다, 더군다나 6·25전쟁이라는 엄청난 민족상잔의 비극을 가진 우리에게 지금 당장 군비를 축소한다, 평화협정을 가진다는 것은 누가 이말을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입장을 표명한다.
하지만 북측 대표는 다시 "칼을 갈면서 한쪽으로 '친합시다'라고 하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남조선 측에만 군비를 줄여라, 우리는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런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같은 숫자의 같은 힘을 가지고 있자는 것"이라고 주장을 이어간다.
남측 대표는 이에 군비 감축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좀 더 신뢰를 두텁게 한 다음에 논의를 하자"라고 하지만 북측은 다시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라면서 "우리가 자꾸 (관계를) 이렇게 두텁게 하자고 하는데도 아무래도 두터워지지 않다"라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북측은 또 다시 "합의는 합의고, 한쪽에서는 군대가 자꾸 싸울 준비를 한다"라고 주장하자 남측도 "싸울 준비를 우리는 한 적도 없고 싸울 준비를 했으면 귀측에서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측에서는 싸움 준비한 적도 없다"라고 되받으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한다.
아울러 2차 본회의에서 북측은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문화 등 5개 분과위원회를 한 번에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남측은 경제, 사회·문화 등 2개 분과위원회를 먼저 설치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공전을 거듭한다.
이 같은 '공전'은 3차 본회의까지 이어진다. 북측은 "사실 까놓고 말하면 어느 나라나 경제 교류는 다하고 있다"면서 "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 좋은데, 우리가 그것만 취급하면 국가 대 국가 관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북측은 "지금 까놓고 총차고 칼쥐고 앉아서 경제, 문화교류하자 그런 상태"라며 "독일의 경우를 보아도 경제 문화 교류만 해가지고는 그 두 가지만 해가지고는 결국은 그 자체로서 크게 통일에 이바지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남측은 "5개분과위원회를 다하자 대단히 말씀은 좋지만 옛말에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다가는 하나도 못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면서 "우선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제, 사회, 문화 분과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라며 맞선다.
이처럼 남북은 결국 3차례 본회의 동안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한다. 하지만 4차 회의를 앞둔 1973년 8월28일 북한 측이 '김대중 납치사건' 등 정치적 사안을 구실로 일방적으로 중단을 선언하며 남북조절위원회 전체회의는 더 이상 개최되지 못했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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