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했던 11차례 비밀접촉…남북 간 첫 공동성명 결실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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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6일 공개한 제3차 남북회담문서 사료에 따르면 지난 1971년 11월20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실무자 접촉에서 북측은 남북 간 '정치적 사안'에 대해 논의할 '고위급 비밀접촉'을 남측에 제안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1945년 분단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이 공식 자리에 마주 앉은 것인데, 당시 북측 차석대표로 나선 김덕현 책임지도원이 남측 정홍진 중앙정보부 협의조정국장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적십자회담과 별개의 '비밀접촉'을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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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만날 수 있다" '2인자' 김영주도 이후락 방북에 적극적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위에서 신임하는 사람, 말하자면 가장 높은 데서 신임하는 사람들이 비밀접촉을 가지면 어떻겠습니까. 외국이 또 미국이 모르게 우리민족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좋습니다."(북측 김덕현 노동당 조직담당 책임지도원)
통일부가 6일 공개한 제3차 남북회담문서 사료에 따르면 지난 1971년 11월20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실무자 접촉에서 북측은 남북 간 '정치적 사안'에 대해 논의할 '고위급 비밀접촉'을 남측에 제안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남북은 1971년 8월20일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1945년 분단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이 공식 자리에 마주 앉은 것인데, 당시 북측 차석대표로 나선 김덕현 책임지도원이 남측 정홍진 중앙정보부 협의조정국장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적십자회담과 별개의 '비밀접촉'을 제안한 것이다.
당초 두 인사의 접촉은 우리 측이 11월19일 '만나자'라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이뤄졌다. 이는 적십자회담에 상당히 미온적인 북측의 태도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북측은 첫 대면에서 바로 '비밀접촉'을 제안하며 정치적 대화의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정홍진-김덕현 간 비밀접촉은 이듬해인 72년 3월22일까지 총 11차례 진행됐다. 이를 통해 남북 사이 첫 실무자 상호 왕래가 성사되고, 이는 보다 차원 높은 고위급 정치회담으로 이어져 결국 72년 남북 첫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 발표까지 끌어냈다.
협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던 장면도 있었다. 남북은 '신임장' 문제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중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고위급의) 신임장이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물적 증거가 없으면 중요한 이야기는 할 것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남측은 문서가 없이도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5차 실무자 접촉에서 남측은 '앞으로 우리가 책임지고 상호 대화를 전달하고 책임있는 회답을 들려줄 신임하는 분, 즉 우리들을 각기 신임하는 웃 어른으로 우리 측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귀측은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으로 확정해야 하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했다. 각각 '권력 2인자'로 통하는 인물로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 북측이 동의하면서 실무자간 상호 방문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이후부터 실무자 접촉 대표들은 이후락과 김영주의 전언을 주고받으며 방문 날짜와 인원 등에 대해 빠르게 조율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후락과 김영주의 직접 만남도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김영주는 "지금은 최고위급의 의사를 대변해 국가 대사를 논의할 수 있고 격폐된 감정을 툭 털어놓고 풀 수 있는 고위급 대표들이 직접 만날 때"라고 하는 등 이후락과의 만남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장께서 오신다면 최고위급도 만날 수 있다"고 김일성 당시 내각수상과의 회담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후락과 김영주의 실제 만남은 공동성명 발표 두 달여 전인 72년 5월2~5일 이뤄졌다. 이후락은 평양에서 김일성과도 두차례 만났다. 하지만 김영주의 서울 답방은 무산됐고, 대신 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찾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는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간접적으로나마 처음 나눈 대화이기도 하다.
다만 평양에서 이뤄진 이후락과 김일성 간의 대화 내용은 이번 공개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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