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사료] 北 "7·4 성명에 JP가 가장 반대"…南 반응에 불만
박정희 저격미수 뒤 싸움판으로…북 "고아를 외국에 팔아"·남 "교회는 왜 없애"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북한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측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김종필 당시 총리가 공동성명을 무력화하려 한다고 불만을 터트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가 6일 공개한 남북회담사료를 보면 북측은 공동성명 발표 9일 뒤인 1972년 7월 13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열린 실무접촉에서 "우리가 보도나 라디오를 통하여 보면 그쪽에서 김종필 총리가 가장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종필 총리가 공동성명을 무력화하는 쪽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측은 김종필 총리가 국회에서 '이 몇 장의 성명에 우리의 운명을 점칠 수 없으며 또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며 남측의 진의를 따져 물었다.
실제 김종필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7·4 남북공동성명 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이 우리와 대화를 하겠다고 하니까 국가보안법을 없애야겠습니다"라고 제안하기에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 마시오. 당신이 북에 또 갈 일은 없을 거요"라고 일축하며 막았다고 썼다.
북측은 7·4 남북공동성명 후 남북조절위원회 회의 등에서 툭하면 '외세 배제' 논리로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나와 회담을 교착상태에 빠뜨렸다.
북한은 특히 1973년 8월 28일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납치를 이유로 내세워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남북조절위 북측 공동위원장인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은 성명에서 "우리는 깡패들과 마주 앉아 국가 대사를 논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후락 부장의 호칭은 '이 부장 선생'에서 하루아침에 '두목', '민주주의의 교형리(絞刑吏, 사형집행관)', '사람잡이를 일삼던 자', '상습적인 배신자'로 탈바꿈했다.
이후락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망을 받으며 남북회담을 주도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물러난다.
당시 북한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대화를 중단시킨 진짜 이유는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선언' 때문으로 보인다.
6·23 선언은 남북한이 각각 유엔 가입을 추진하며, 북한의 유엔 기구 가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북한은 회담 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6·23 선언에 대해 '가장 노골적인 민족분열적 책동'이라며 비난했다.
이후락도 북한의 일방적 회담중단 배경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6·23 선언에 대한 반대"라고 당시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러다 1974년 광복절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으로 불신이 고조하며 회담 분위기는 막말이 오가는 등 최악으로 치달았다.
남측은 대통령을 저격하려던 문세광이 북측 지령을 받아 범행을 저질렀다는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측을 강하게 성토했다.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부위원장인 장기영 전 부총리는 1973년 9월 제8차 부위원장 회의에서 "지난 8월 15일에 우리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충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온 국민과 더불어 본인의 가슴을 메우고 있다"며 "우리 민족사를 페이지마다 동포의 피로 얼룩지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북측을 비난했다.
그러자 북측 부위원장인 류장식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그따위 날조를 어디다 함부로 해"라고 언성을 높이며 사과를 요구했다.
북측은 이 자리에서 남측의 영아 해외 입양과 파독 광부·간호사까지 끌어들이며 극언을 쏟아냈다.
류장식 부위원장은 "외국에 뭐 고아라는 명목하에 얼마나 어린애를 팔아먹고 있우. 남조선에 무의촌, 무의면이 그렇게 많은데도 간호사들은 해외에…"라고 막말하자, 장 부위원장은 "교회, 절은 왜 없애버렸어?"라고 응수했다.
8차 회의 후 남측 대변인 발표문에 따르면 8·15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은 1966년 이래 남측이 적발한 북한의 여덟번째 대통령 암살 시도였다.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회의는 그로부터 두 번 더 열리고 1975년 3월 10차를 끝으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한편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뒤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건 남북 집권세력 모두 이를 정치적 기반 강화 목적으로 활용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수상은 남북 교섭을 각각 유신헌법과 사회주의헌법 채택의 주요 명분으로 제시했다"며 "정치적 의도를 달성하자 7·4 남북공동성명과 후속 논의에 힘이 많이 빠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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