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애 임신한 아내 남기고 전사… 72년 만에 가족 곁으로

김태훈 2023. 7. 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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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혹시라도 돌아오실까 대문에 빗장도 안 걸고 학수고대하셨습니다."

6·25전쟁 때 전사한 아버지의 유해가 72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소식에 아들 노원근씨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다.

유해 발굴을 통해 수습한 6·25전쟁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213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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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전사한 노관수 이등중사 신원확인
아들 "어머니, 평생 그리워하셔… 뭉클하다"

“어머니께서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혹시라도 돌아오실까 대문에 빗장도 안 걸고 학수고대하셨습니다.”

6·25전쟁 때 전사한 아버지의 유해가 72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소식에 아들 노원근씨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다. 전쟁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었던 그는 아버지와 마주한 적이 없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슬픔과 비통 속에 여생을 보냈다.
2018년 강원 양구군에서 고 노관수 육군 이등중사의 유해가 처음 발굴됐을 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2018년 5월 강원 양구군 송현리 백선산 1142고지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육군 8사단 소속 고(故) 노관수 이등중사(현 계급 병장)가 주인공이다. 5년 전 수습된 노 이등중사의 유해는 함께 발굴된 유품이 없어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다만 아들 노씨가 유전자(DNA) 시료 채취에 참여한 덕분에 유전자 정밀 대조 분석 작업이 이뤄질 수 있었고 드디어 가족관계가 확인됐다.

유해 발굴을 통해 수습한 6·25전쟁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213번째다.

국방부에 따르면 노 이등중사는 1929년 1월 전남 함평군 학교면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다가 1950년 결혼했다. 곧바로 6·25전쟁이 터졌고 노 이등중사는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뒤로하고 1951년 5월 육군에 입대한 노 이등중사는 8사단에 배치됐다. 그해 9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지 강원 양구군 일대에서 벌어진 백석산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우다가 10월 6일 산화했다. 당시 나이 불과 22세였다.
고 노관수 육군 이등중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백석산 전투는 1951년 8월부터 육군 7사단과 8사단이 양구군 북방 백석산에서 치열한 싸움 끝에 북한군을 격퇴한 전투다. 7사단이 먼저 전투에 투입됐는데 목표로 했던 일부 지점을 점령하지 못하면서 8사단이 이를 넘겨받아 과업을 완수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군도 극심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아버지의 유해를 꼭 찾겠다’는 일념으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다는 노씨는 “이렇게 유해를 찾게 돼 가슴 뭉클하고 꿈만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올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끝까지 찾아야 할 121879 태극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3년 넘는 전쟁 기간 전사한 우리 장병 16만여명 가운데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12만1879명을 기억하고 반드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자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6일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며 이 캠페인을 상징하는 ‘121879 태극기’ 배지를 가슴에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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