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계급으로 뒤집힌다…최하층은 이틀이 8시간

한겨레21 2023. 7. 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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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경제학]중국의 불평등 문제를 다룬 과학소설 <접는 도시>
계층이동 금지된 1~3공간은 지금 우리의 모습 투영
<접는 도시>를 영화화하는 김준표 감독이 온라인에 올려놓은 그림. Joshi Kim 제공

하오징팡의 <접는 도시>는 공간과 시간이 단절된 미래 중국 베이징 사람들의 불평등한 삶을 그려낸 단편 과학소설이다. 베이징은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며 48시간을 주기로 순환한다. 제1공간은 대지의 한 면을 차지하고 500만 명이 거주한다. 이들에게는 아침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24시간이 할당된다. 이 시간이 끝나면 대지가 뒤집혀, 1공간의 모든 건물은 접혀 지하로 들어가고 제2공간의 건물들이 펼쳐진다. 2500만 제2공간 사람들이 밤 10시까지 16시간 동안 생활하고, 제3공간이 8시간 동안 그 뒤를 잇는다. 거주인들의 공간 간 이동은 엄격히 금지된다.

1공간에 사는 이옌에게 연서 보내려는 2공간 친톈

마흔여덟 중년의 사내 라오다오는 제3공간의 쓰레기 처리공이다. 제1공간과 제2공간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을 28년째 하고 있다. 어느 날 쓰레기를 분류하던 다오는 유리병 속에 든 메모를 발견한다. 제2공간 거주자 친톈이 제1공간에 사는 이옌에게 보낼 사랑의 편지를 전달할 메신저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보수는 20만위안이다. 월급이 1만위안인 다오에겐 큰돈이다. 게다가 이 일에 성공하면 입양한 어린 딸 탕탕을 고급 유아원에 보낼 수 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탕탕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만 매달 1만8천위안의 비용은 다오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다오는 결국 모험에 나선다. 쓰레기 이동로를 통해 제2공간에 잠입해 친톈으로부터 이옌에게 보낼 편지를 받아 온다.

하지만 제1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다오는 젊었을 때 제1공간과 제3공간을 몰래 오가던 은퇴한 밀수꾼 펑리에게 사정을 얘기한다. 펑리는 비밀 공간 이동 루트를 알려주면서도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가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자네 삶이 얼마나 끔찍하고 희망 없는지 느낄 뿐이야.” 다오는 “거기 안 가도 내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안다”고 답하곤 대지가 뒤집히는 순간 그 틈새로 뛰어든다.

하오징팡은 휴고상 수상 직후 <언캐니 매거진> 기고문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시절부터 소득분배가 자연계의 맥스웰-볼츠만 분포나 흑체 분포를 따르는지 살펴볼 정도로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또 모든 중국 왕조가 평등을 이루려는 인민의 열망에 기초해 세워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수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등 불평등이 다시 확대되고 전복된 역사가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신중한 경제학자로서 하오징팡은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불평등은 미래에도 인류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라며 “토지 병합을 억지로 봉쇄했다면 경제는 비효율적인 가족농이라는 원시적 수준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고 위험성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평등과 불평등의 파도는 중국 현대사에서도 반복됐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빈곤의 평등’을 유지해왔다. 1978년 개혁개방에 착수하면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8억 명에 육박했던 빈곤층은 거의 다 빈곤에서 탈출했다.(표 참조)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이 과정에서 분배는 심각하게 왜곡됐다. 1978년 중국의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27.8%로 서구 국가들에 비해 가장 낮은 편이었으나, 2021년에는 43.4%로 미국에 약간 뒤질 뿐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높아졌다. 지역적으로도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확대됐고, 대도시는 농촌에서 이주한 노동자가 대규모로 하층민을 형성하면서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빈곤과 분배

1공간의 경제 떠받치는 3공간의 쓰레기 처리공

하오징팡은 한 도시에 살면서도 서로 거의 교류하지 않고 삶의 모습이 매우 다른 계층들의 격차를 직접 드러내는 방법으로, 세 공간으로 구분된 <접는 도시>를 구상했다. 제3공간 5천만 인구 중 2천만 명이 쓰레기 처리공이며 나머지는 음식, 옷, 보험 등을 팔아 연명한다. 이곳 주민들은 쓰레기 처리공을 ‘제3공간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기둥’으로 생각한다. 요리사, 의사, 관리인 등 고급 블루칼라 중 탁월한 성과를 낸 인물들이 상위 공간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주 드물고 대개는 그런 희망조차 품지 않는다.

제2공간 사람들은 계층 이동에 좀더 적극적이다. 친톈은 제1공간에 있는 유엔 경제기구에서 한 달간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 시절 이옌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졸업 뒤 유엔에 취업해 제1공간으로 이주하는 게 꿈이다. 친톈의 기숙사 룸메이트 장셴은 제2공간의 은행 인턴으로 수련 중인데, 제3공간 관리자로 가려 한다. 제2공간에 머무는 것보다 제3공간에서 공을 세우면 제1공간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주로 중간관리자나 대학생으로 구성된 제2공간 사람들은 대부분의 하급 육체 노동자인 제3공간 사람과는 달리 강한 계층 상승 욕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제1공간 인구가 제2공간 인구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 제조업 일자리는 대부분 로봇으로 대체됐다. 농장도 대규모로 집적됐고 기계로 농사짓는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기계화로 인해 광범위한 노동 대체가 발생한 상황이다. 제3공간에서 태어난 뒤 제1공간으로 신분 상승한 거다핑은 다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가 발전하는데도 실업률이 계속 상승했지. 돈을 잔뜩 찍어내도 소용없었어. 필립스 곡선이 들어맞질 않았단 말이야.”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거시경제학의 기본 모델이다. 교과서적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화폐량을 늘리면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낮아지는데, 그런 관계가 깨졌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기계에 밀려나자 시간마저 빼앗겼다

서구 사회가 개인의 노동시간을 강제로 줄여서 일자리 수를 늘렸지만 경제 활력은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베이징 당국은 좀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대다수 하층민의 절대 시간을 줄이면(48시간 중 8시간만 생활할 수 있다) 생활시간 대부분을 일하게 해도 절대 노동시간은 짧다(쓰레기 처리공은 48시간 중 6시간 노동한다. 6시간이란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 8시간 중 대부분을 노동하는 것이다). 시장이 공간별로 분리돼 있어 제3공간의 물가는 낮게 유지할 수 있다(저임금으로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갈등을 피하기 위해 공간은 분리되고 이동은 금지된다. 이 모든 해법을 유지하기 위해 쓰레기 처리공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재활용, 녹색경제, 순환경제라는 거창한 목표도 달성될 수 있다. 제1공간에서 개최된 접는 도시 50주년 행사장에서 이옌의 약혼남인 고위 공직자 우원은 베이징 최고 책임자에게 비용을 낮추고 위생적인 ‘쓰레기 처리 자동화’가 가능하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수천만 명의 쓰레기 처리공이 실직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면박받는다.

다오는 우여곡절 끝에 모험을 마치고 제3공간으로 돌아온다. 그의 수중에는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30만위안이 있다(친톈한테 받은 20만위안 외에 부가 수입이 더 있다). 다오가 이 거금으로 탕탕을 고급 유아원에 보내고 행복하게 살았는지, 펑리의 경고대로 오히려 절망을 느끼게 됐는지, 이 거대한 격리 체계가 유지되는지 개혁되는지 하오징팡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열어둔다. 그는 2019년 <로직 매거진> 인터뷰에서 “인간 사회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해결책이 있어 보이면 경제정책 연구를 한다. 반대로 딜레마 상황이거나 모호하거나 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질 것 같으면 소설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아가 “소설의 가치는 다양한 미래를, 그것이 좋든 나쁘든 밝든 어둡든, 상상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세상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고 주장했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

독자가 <접는 도시>를 읽으면서 하오징팡의 주장대로 불평등과 신분 고착, 사회 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지, 아니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고 비겁하게 과학소설 뒤로 숨었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불만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권한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소설로 읽는 경제학: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합니다. 2주마다 연재.

<접는 도시>는 어떤 소설?

하오징팡은 1984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전국 작문대회에서 수상해 베이징대학 중문과 무시험 입학 자격을 얻었지만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과학자가 되기 위해 칭화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경제적 불평등의 심각함을 느낀 하오는 전공을 바꿔 칭화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부터 중국의 대표적 국책 연구기관인 중국발전연구기금에서 경제학자로 근무하고 있다. 소설 집필도 병행해 2016년 <접는 도시>로 권위 있는 과학소설상인 휴고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첫 번째 수상자였다. <접는 도시>는 문학적 기초 위에 과학과 경제학의 지식을 얹은 소설로, 하오징팡의 모든 재능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강초아의 번역으로 2018년 글항아리에서 펴낸 <고독 깊은 곳>에 수록됐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김준표(조시 김)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참고

1. <언캐니 매거진> 기고문.

https://www.uncannymagazine.com/want-write-history-inequality-hao-jingfang-translated-ken-liu/

2. <뉴욕타임스> 인터뷰

https://www.nytimes.com/2016/11/29/world/asia/china-hao-jingfang-science-fiction.html

3. <로직 매거진> 인터뷰

https://logicmag.io/china/hao-jingfang-on-building-the-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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