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미술작품 '잘' 아는 척하고 싶은 당신에게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왕도(王道)는 없어도 지름길은 있다. 바로 작품을 실제로 보며 자주 접하는 것. 이를 위해선 전시장으로 가야 한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은 감상을 위해 조명, 작품 배치 등에 신경을 쓴 공간 아니던가. 이는 작품을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어렵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음악을 듣듯 미술 작품도 자주 보면 의식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친밀감이 형성되고 자신에 눈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게 될 것이다. 이는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미술관의 전시 정보를 사전에 알아두는 것도 좋다. 정보가 부족한 시대는 아니기에 특수한 주제에 대한 전시인지, 개인전의 경우 어떤 화풍으로 무엇을 다루는지 알면 나와 잘 맞는 전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몇 사람이 함께 가는 것도 추천한다. 그림을 보고 느낀 점과 알아낸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자. 시각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기에 내가 놓친 것을 다른 사람이 볼 확률이 높다. 팸플릿(pamphlet)의 서문은 전시의 흐름과 주제를 담고 있으니 이것도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읽어보길 권한다.
그런데 막상 전시를 찾아보면 무엇을 봐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희 컬렉션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수작(秀作)을 직접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은 소장품이 사회에 기증된 이후, 나는 그해 7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시작으로 광주, 청주, 창원, 과천, 부산, 울산, 대전, 경기 등 각 지역의 도립과 시립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모조리 따라다녔다. 20세기 초중반 한국미술 대표작을 모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은 당시 24만 8천 명이 관람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전시 관람은 나의 취미이자 일상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이건희 컬렉션은 미술에 대한 단순 호기심을 뛰어넘을 수 있게 이끌어 준 일등공신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은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이 고인이 살아생전에 평생 모은 미술 소장품 2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지역 미술관에 기증하며 조성되었다. 이 기증으로 인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1만 점을 넘기게 되었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미술 컬렉션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도약시켰다"라며 기증 의의를 밝힌 바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미술품 구입 예산은 50억 원 안팎. 매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렇듯 예산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인해 구입이 쉽지 않았던 박수근, 장욱진, 유영국, 김환기 등 한국의 근현대를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게 되었다. 유영국 작품이 187점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이중섭 104점,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순이라고 한다. 해외 거장의 작품들도 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소장되었다.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의 회화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기 110여 점이 기증되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열며 관람객 16만 명을 운집시켰다. 전시를 보기 위한 예약 경쟁이 치열했던 특별전이었다. 인터넷 예매 창이 열리면 매진되는 건 순식간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지난 전시인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를 놓쳤다면 두 달 뒤를 노려보자. 오는 9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도예 작품 112점을 모두 공개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피카소 도예'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에서 전시된 피카소의 도예 작품들이 고스란히 청주에 온다고 한다. 아울러 9월에는 2023청주공예비엔날레도 열리지 않는가. 2년마다 열리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올해 주빈국은 피카소의 고향인 스페인. 가을의 시작과 함께 우리나라의 첫 법정 문화도시인 청주는 문화 예술의 메카로 다시 한번 거듭날 것이다.
당장 9월까지 기다리기 힘들다면 지역 순회 중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찾으면 된다. 현재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를, 대전시립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이건희 컬렉션과 신화가 된 화가들>을 전시 중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충청권 최초다. 두 전시 모두 한국근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그들의 예술 여정을 느낄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근현대미술작품 46점과 경기도미술관과 공사립미술기관 11곳의 소장품을 모았다. 전시작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권진규,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박래현, 이중섭, 이인성,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대표 작가 41명의 작품 90점. <사계>에 출품된 작품들은 김종태(1906∼1935)의 <사내아이>(1929)에서부터 방혜자(1937∼2022)의 <우주의 춤>(2010)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 세기를 아우르는 한국 근현대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의 미술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근현대 미술품 중 1930년대 제작된 이인성의 <원두막이 있는 풍경에서>부터 2005년에 제작된 강요배의 <억새꽃>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38점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신화가 된 화가들>이라는 섹션을 구성해 한국 근현대미술의 1세대인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의 작품 32점을 공개한다. 특히 김환기의 대표적 수작(秀作)인 <무제 19-VI-71#206>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전시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트홀릭 다음 편에서 친절히 소개할 예정이다.
이렇듯 이건희 컬렉션을 출발점으로 전시를 꾸준히 관람한다면 미술과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경기도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의 전시 관람 예약은 해당 미술관 사이트에서 가능하다. 예약 경쟁이 치열하니 서두르기 바란다. 더불어 오는 9월에 있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피카소 도예' 등 2024년까지 순회 예정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비롯해 2023청주공예비엔날레 등의 전시도 접해보자.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미술은 나의 꽤 괜찮은 취미로 세상 보는 안목(眼目)도 키워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이자 미술평론가가 한 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에 대해 말한 이야기로 갈무리해본다.
"안목(眼目)은 꼭 미(美)를 보는 눈에만 국한하는 말이 아니고, 세상을 보는 눈 모두에 해당한다. 그래도 안목의 본령은 역시 예술을 보는 눈이다."
(사진 제공 : 경기도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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