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투자일임 한시름 놓았지만…법인지급결제 여전히 '깜깜'
법인 지급결제 확대 논의는 원칙 재확인 수준에 그쳐
금융위원회가 은행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검토했던 투자일임업 허용을 보류하면서 금융투자업계가 한시름 놓은 모습이다.
다만 전면 백지화가 아닌 추후 논의과제로 미뤄둔 것이어서 여전히 논의 테이블 위에 있는데다, 금융투자업계 숙원과제인 법인 지급결제허용 관련 논의는 구체적인 진척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는 2월부터 추진해온 은행권 경영·영업관행 제도개선 TF 논의 결과를 지난 5일 발표했다. 은행권의 경쟁 촉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확대, 체질개선 등 6개 과제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이중 금융투자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부분은 △은행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한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진출' 허용과 △은행의 경쟁촉진을 위한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확대다.
은행 투자일임업 허용…추후논의 과제로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비이자이익 확대 주문에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을 요청해왔다. 현재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한해 투자일임 업무가 허용돼 원스톱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에 한계가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투자일임업은 고객으로부터 자산을 일괄 위임받아 투자자의 자산을 대신 운용하고 자산운용의 대가로 관리·운용 보수를 받는 금융투자업계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지금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금융투자업권에 한정된 업무다. 대규모 고객과 지점을 가진 은행이 진출하면 중소 증권사의 경영상 어려움이 커지고 증권업계 수익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게 금투업계의 지적이다. 은행 고객과 증권사 고객 간 투자성향 차이로 소비자보호 문제나 제2의 '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번 TF 결과 투자일임업 논의는 일단 올해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금투업계 반발이 큰데다, 앞서 은행에 허용한 투자자문업과 신탁업 성과 추이를 먼저 보겠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문업 활성화, 신탁가능재산 확대 등 신탁업 혁신을 통한 맞춤형 추천서비스, 종합재산 관리 서비스 등 현재 허용된 투자자문과 신탁업의 성과를 우선 보기로 했다"면서 "은행의 투자일임 허용문제는 해당 업무의 성과를 보고 나서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투업계는 관련 논의가 일단 멈췄지만 여전히 추후 과제로 남아있는 만큼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 고위 관계자는 "투자일임업은 금투업계 고유 업무인 만큼 업계 전체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서 "당장 논의는 미뤄졌지만 끝난 것은 아니어서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숙원사업 '법인 지급결제' 논의 진척 없어
금투업계 오랜 숙원과제인 법인 지급결제 허용도 이번 TF에서 논의됐다. 당국은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통한 은행권의 경쟁촉진 방안으로 증권사 등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확대를 검토했다.
하지만 '동일기능-동일리스크-동일규제' 원칙하에 지급결제 안전성을 확보할 방안을 추가 검토하겠다는 내용에 그쳤다. 지급결제 안정성 확보를 위한 건전성, 유동성 관리, 담보제도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논의가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다.
법인 지급결제는 기업의 각종 경제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거래당사자 간의 채권·채무 관계를 금융사를 통해 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품 판매대금을 지급하거나 근로자 월급통장에 돈을 송금하는 일이 모두 법인 지급결제에 해당한다.
법인 지급결제 업무는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에 이미 허용됐지만 2007년 해당 법 제정 이후 은행권의 반발로 금융결제원 규약에 따라 현재는 개인 지급결제만 가능한 상태다. 금결원의 전자상거래 지급결제 중계업무규약에 '금융투자회사는 법인이 PG(결제대행)업무를 이용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어서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의 기업금융(IB) 업무 확대로 기업과 접점이 늘어가고 자금지원 등 업무가 많아짐에 따라 기업에 종합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법인 지급결제 서비스는 필수적"이라며 "당국이 요구하는 증권업의 해외진출 측면에서도 해외 진출 기업들의 자금 지원 등을 위해서는 법인 지급결제가 반드시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금투업계는 법적 요건을 이미 충족했고 자기자본도 크게 늘어 가장 우려했던 유동성 문제도 크게 낮췄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이 요구하는 결제 안정성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법인 지급결제 허용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은행은 개인에 비해 법인은 거래 규모가 큰 만큼 결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들을 좀 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결제정책팀 관계자는 "결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보유했는지 요건을 따져보자는 것"이라며 "업권별 규제법에 따라 유동성, 건전성 등에 대한 감독기준이 명시돼 있지만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는 것인 만큼 새 리스크가 생길 수 있어 현재 규제만으로 적정한지 등을 더 따져 충족 방안이 마련되면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차액결제 시 유동성을 충분히 갖췄는지, 이체 한도 담보 제공과 관련해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기준을 어떻게 둘 것인지 등이 검토 대상이다.
다만 금투업계 내에서는 이미 유동성, 건전성 기준 등을 충분히 갖췄다는 입장이다. 법인 지급결제는 차액결제 시점과 투자자예탁금 정산 시점 등의 시간차로 결제자금에 대한 유동성 문제가 제기되는데, 증권사들이 자기자본을 늘려 체력을 키운만큼 유동성 문제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상위 10개 증권사의 자기자본 합계는 약 60조원에 이른다. 앞서 법인 지급결제 허용 요구가 불발됐던 지난 2017년 말 이들의 자기자본이 36조원 수준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자기자본 5조원 이상 증권사도 8곳에 이른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한은 금융망(거액결제망)을 통한 차액결제업무를 은행이 대행하도록 하고 차액결제 대행 한도 이상의 담보를 제공하는 등 위험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한 상태"라면서 "여건이 되는 대형 증권사들은 구체적인 기준이 세워지면 충분히 충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논의 시기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법인 지급결제 허용 논의가 다시 논의 선상에 올려진 만큼 긍정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금융위는 하반기 한국은행, 금투업계와 함께 관련 논의를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김미리내 (panni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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