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인종 우대 폐기·대출탕감 제동… “우향우 미 대법, 대선 쟁점 될 것”[Global Focus]
지난해 낙태권 위헌 결정 이어
62년 지속된 대입정책도 바꿔
미 지탱해온 제도 뿌리째 흔들
보수 6·진보 3명 現 대법원 체제
트럼프 재임때 3명 지명돼 탄생
사망·은퇴 않는 한 재편은 희박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한 미국 대법원이 최근 1년 사이 미국사회를 지탱해온 제도들을 뿌리째 뒤흔드는 판결을 잇달아 쏟아냈다. 6월 29일(현지시간) 62년간 미 대입정책 근간이 됐던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인종 우대)에 위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다음 날 30일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 폐기, 종교 신념을 이유로 한 동성 커플에 대한 서비스 거부 허용 등 판결을 내놓았다. 보수 6명·진보 3명이라는 대법원 이념지형에 따라 정확히 6 대 3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앞서 대법원은 흑인유권자에게 불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한 앨라배마·루이지애나주 등 결정에 제동을 거는 전향적 판결로 이념구도를 탈피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대입·소수자 보호 등 이념 갈등이 첨예한 대형사건에는 예외 없이 미국사회를 보수 쪽으로 이끄는 판결을 내놓았다.
미국사회 질서·정의를 수호하고 안정·균형을 유지하는 최후 보루로 꼽혔던 대법원이 보수 일변도로 기울면서 진영 간 이념 갈등은 다시 거세지고 있다. 판결을 통해 대법관 이념 스펙트럼을 분석한 올해 마틴·퀸 지수(점수가 낮을수록 진보, 높을수록 보수)에서 진보 대법관은 소니아 소토마요르(-4.09), 엘리나 케이건(-2.067), 커탄지 브라운 잭슨(-1.704) 등 3명이었고 보수 대법관은 새뮤얼 얼리토(2.568), 클래런스 토머스(2.358), 닐 고서치(1.077), 에이미 코니 배럿(0.821), 브렛 캐버노(0.446),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0.42) 등 6명이었다. 보수 대법원의 위력을 확인하면서 진보·보수 모두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결집하는 모양새다. 뉴욕타임스(NYT)는 “내년 대선에서 대법원 보수화가 진영 간 첨예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6월 회기종료마다 보수적 판결로 미국 정치·사회 뒤바꾸는 대법원 = 각종 행정부 정책·의회 입법에 판결을 통해 헌법적 가치를 부여·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대법원이 보수적 판결로 미국사회 근간이 됐던 각종 제도를 뒤흔들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같은 해 6월 21일 대법원은 주 정부의 등록금 지원 프로그램에서 사립 종교학교를 배제한 메인주에 대해 6 대 3으로 위헌 결정을 내려 잇따른 보수적 판결의 포문을 열었다. 이틀 뒤인 23일에는 공공장소에서의 권총 휴대를 금지한 1913년 뉴욕주 법률에 대해 역시 6 대 3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231년 전 제정된 수정헌법 2조 민병대 조항을 모든 미국인에게 부여된 권리로 확대한 판결이었다. 지난해만 2만200명이 숨지는 등 각종 총기사건·사고로 미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텍사스주 등 17개 주에서 총기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쏟아졌다.
회기종료일인 24일 나온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결정은 대법원 보수화의 정점을 찍었다. 이 판결은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의 여성 노마 매코비가 제인 로라는 가명으로 지방검사장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텍사스주 낙태금지법을 무효로 하는 소송을 제기해 1973년 대법원이 7 대 2로 위헌 결정을 내린 데서 유래해 이후 반세기 동안 미국 내 여성낙태권을 보장하는 대표 판례였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5 대 4로 해당 판결 폐기 결정을 내렸다. 얼리토 대법관은 다수의견에서 “헌법에 낙태에 관한 언급이 없다. 낙태 관련 결정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1년 동안 미 50개 주 절반에 해당하는 25개 주가 낙태를 금지·제한하는 법을 제정했고 15∼44세 여성 2500만 명이 낙태 접근에 제한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6월 들어 대법원의 보수적 판결이 쏟아졌다. 29일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이란 단체가 백인·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UNC)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각각 6 대 3, 6 대 2로 위헌 결정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촉발되고 1978년 대법원이 합헌 판단해 45년간 유지됐던 판례를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셈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학생은 인종이 아닌 개인으로서 경험에 근거해 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30일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역점 추진한 4300억 달러(약 558조 원) 규모 학자금 대출 탕감에 대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었고, 웹디자이너가 종교적 이유로 동성 커플의 작업요청에 응할 의사가 없는데 주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받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낸 헌법소원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NYT는 “지난해 낙태권 폐지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새 판결들 역시 법원이 보수적 의제를 여전히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관례 무시하며 지명 강행한 트럼프 ‘신의 한 수’가 보수 우위 만들어 = 미 연방대법관은 사망이나 은퇴, 범죄행위로 탄핵받지 않는 한 종신까지 임기를 보장받기 때문에 교체 시기를 예상할 수 없다. 어떤 이념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되느냐는 전적으로 어느 정부에서 공석이 발생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현 대법원에서 진보로 분류되는 소토마요르, 케이건 대법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잭슨 대법관은 바이든 행정부 등 민주당 정부에서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반면 보수 성향인 토머스 대법관은 조지 H W 부시 행정부, 로버츠 대법원장과 얼리토 대법관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 공화당 대통령이 각각 임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년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고서치, 캐버노, 배럿 등 무려 3명의 대법관을 지명해 현재의 보수 우위 대법원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보수 대법관이 다수인 현 대법원은 사실 진보 우위로 재편될 기회가 있었다. 2016년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갑작스럽게 숨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중도 성향인 메릭 갈런드 당시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장(현 법무장관)을 새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하지만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293일간 인준 청문회조차 거부했고 결국 후임 트럼프 대통령이 고서치 대법관을 임명했다. 반대로 진보의 상징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2020년 9월 사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만에 ‘보수 여전사’ 배럿 대법관을 지명하고 민주당의 반발에도 신속 인준을 밀어붙여 대선 직전인 10월 27일 대법관에 임명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때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 대법관들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점을 감안하면 관례를 깨고 임기 막바지 배럿 대법관 임명을 밀어붙인 트럼프 대통령의 집념이 대법원 보수화를 이뤄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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