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최준용, 두 남자의 서로 다른 ‘신세계’
‘함께 있을때 가장 무서웠던 두 남자, 이제는 서로 다른 길에서 경쟁한다!’ 지지난 시즌 통합우승을 만들어냈던 당시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지난시즌 SK가 주축 전력의 공백에도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며 관록을 뽐냈다면 그 직전 시즌은 이런저런 요소에 관계없이 그냥 강했다는 평가다.
통합 우승 당시의 SK는 각 포지션별로 쟁쟁한 선수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플래시 썬' 김선형(34‧187cm)과 ‘준 드래곤’ 최준용(29‧200.2cm)은 각자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통해 팀을 이끌었는데 개인의 엄청난 퍼포먼스에 더해 서로간 시너지 효과도 대단했던지라 단일시즌 기준 역대급 콤비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어보인다.
지난시즌 SK는 직전 시즌 주전 멤버 안영준, 최준용없이도 정규리그 우승팀 안양 KGC와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아쉽게 분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군복무중인 안영준은 그렇다쳐도 만약 최준용만 정상가동 됐더라도 충분히 우위를 점했을 것이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김선형-최준용 라인이 건재한 SK의 위력은 막강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KBL 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던 토종 원투펀치 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시즌 최준용은 부상으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못했고 그로인해 대부분의 경기를 뛸 수 없었다. 때문에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선형과 자밀 워니가 펄펄 날고있는 와중에서도 KGC의 인해전술에 고전하고 말았고 이에 SK팬들 사이에서는 ‘최준용만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깊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준용은 부상에서 돌아왔음에도 더 이상 김선형과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SK에 남기를 원하지 않았고 깜짝 전주 KCC행을 통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SK 또한 이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사자왕’ 오세근(36‧199.8cm)을 영입해 빈자리를 메운 상태다. 함께 SK 왕조를 꿈꾸던 두남자 김선형과 최준용의 ‘신세계’는 그렇게 서로 엇갈리고 말았다.
“우리 둘, 브라더는 그냥 서로만 딱 믿으면 되야!"
김선형과 최준용의 사이가 멀어진 것 같다는 얘기는 지지난 시즌 통합우승 직후부터 팬들 사이에서 적지않게 언급됐다. 둘다 대놓고 티내지는 않았지만 SNS 등에서 심상치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던 이유가 크다. 물론 당시에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많았다. 김선형은 좋지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최준용 또한 대놓고 뭔가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각 농구관련 커뮤니티 등에서는 사이가 멀어진게 맞다 아니다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실 김선형과 최준용은 이전부터 사이가 좋은 동료로 불렸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닌 최준용이 김선형을 형처럼 따르며 롤모델같이 여겼을 정도였다.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서도 김선형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 등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선형 또한 자신을 잘 따르는 최준용이 싫지않은 모습이었다. 영화 ‘신세계’ 이자성과 정청의 관계가 그렇듯 SK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기사단의 브라더였다.
”우리 전력 좋아요. 보강 필요없어요“
사실 최준용만 좋은 관계로 팀에 남아있었더라면 SK는 전력보강이 딱히 필요없었을지도 모른다. 김선형, 안영준, 최준용 트리오에 최고 외인 워니로 이어지는 주전 라인업은 리그 최강급이다. 거기에 더해 허일영, 최부경이라는 주전급 백업도 있으며 신인들도 잘 키우고 있다. 하나같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던지라 조직력도 좋다.
최준용과 김선형은 통합 우승 당시 NBA 덴버 너기츠의 니콜라 요키치-자말 머레이 콤비를 연상시켰다. 최준용은 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선수중 한명이다. 빅맨급 신장에도 불구하고 기동성, 운동능력이 탄탄하며 내외곽에서 전천후로 공헌할 수 있는 공수겸장 포워드(겸 가드)다.
최준용은 ‘컨트롤 타워’ 역할이 가능한 포인트 포워드다. 넓은 시야와 높은 BQ 거기에 패싱 능력까지 고르게 갖췄다. 단순히 장신 포워드치고 잘하는 수준이 아닌 어지간한 가드 못지않은 기술자다. 덴버에서 요키치가 리딩을 보면 머레이는 공격형 1번으로서 화력을 끌어올린다. 그렇다고 머레이가 1번으로서 능력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필요할 때는 머레이가 리딩이나 패싱 플레이도 담당한다.
통합 우승 당시의 SK 또한 그런 경기운영이 가능했다. 최준용이 리딩을 하게되면 김선형은 빠른 발과 뜨거운 손끝 감각을 앞세워 끊임없이 상대 수비진을 찢고 뚫어냈다. 반대로 김선형이 1번에 더 신경을 쓸 경우 최준용은 빅윙으로서의 플레이를 가져가거나 때로는 중간에서 링커 역할을 했다. 공격과 리딩에 능한 특급 선수가 둘이나 버티고 있는 관계로 SK는 어떤 팀보다도 볼이 잘돌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공격전술을 뽐낼 수 있었다.
”드루와~ 드루와“
SK팬들이 가장 바라던 것은 김선형과 최준용이 힘을 합쳐 왕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은 맞지않았고 최준용은 팀을 떠났다. 떠나는 과정에서 팀과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었으며 김선형과도 예전처럼 친하지 않다는 것이 일부 드러났다. 크게 잡음이 일지는 않았으나 공존은 쉽지 않았다는 것이 팩트다.
NBA같은 경우 특정 선수끼리의 불화, 선수와 팀의 감정 싸움 등이 흥미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KBL은 다르다. 선후배 문화가 있고 농구판은 좁으며 스포츠를 떠나 한국식 정서라는 것도 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되는 분위기지만 일정 선을 넘는 수준이 되면 팬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선형과 최준용의 대립각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적당히 말을 아끼면서 우회적으로 감정이나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이다. 기자회견장에서 건너서 주고받았던 멘트 정도가 가장 수위가 높았을 정도다. 최준용은 KCC 입단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제 SK는 우승 후보가 아니다. SK는 노인즈다. KCC가 우승 후보다"는 다소 도발적인 발언을 뱉어냈다.
이에 김선형 역시 오세근과 함께했던 공동기자회견 자리를 통해 “나이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니까 (드라마 더 글로리) 명대사가 생각난다. 언제까지 어려? 내년에도 어려?”라고 재치있게 받아쳤다. 직접적으로 대놓고 으르렁거리기보다는 경기장에서 상대를 이기는 것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매우 이상적이다.
최근 KBL의 대표적 앙숙관계로는 이관희-이정현이 있었다. 하지만 주로 이관희가 일방적으로 선을 넘어서 도발하고 이정현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으며, 둘 사이 선수 커리어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 등에서 라이벌 등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선형과 최준용은 둘다 국가대표 핵심멤버이자 최고의 테크니션이며 같은 팀에서 친했던 사이, 현재 각자의 소속팀이 모두 우승후보라는 점에서 스토리가 많이 생성되고 있다. 승부욕만큼은 엄청난 선수들이니만큼 속으로는 벌써부터 ‘드루와~ 드루와’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판내기 딱 좋은 구도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K와 KCC는 둘다 모두 우승후보다. 안영준이 제대하고 오세근까지 가세한데다 검증된 특급 외국인선수가 함께하고 있는 SK가 안정감에서는 확실히 우위다. 전희철 감독은 여기에 더해 아시아쿼터를 통해 고메즈 드 리아노(24‧183cm)까지 영입했다. 빼어난 운동신경에 더해 출중한 수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자원으로 알려져있는 만큼 SK의 두터운 선수층과 안정적인 밸런스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KCC는 허웅(30‧185cm)과 이승현(31‧197cm)에 최준용이 더해졌으며 송교창(27‧201.3cm) 또한 시즌중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예정이다. 정창영(35‧193cm)이 벤치에서 출격한다는 점도 든든한 요소다. 핵심 선수만 놓고 비교했을 때는 이름값 등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다만 외국인선수 전력이 아직 미정이며 아시아쿼터 효과도 미비할 것으로 분석된다. 거기에 더해 수시즌째 거듭되고있는 주전급 포인트가드의 부재는 가장 큰 불안요소로 지적받고 있다.
하지만 SK 라인업에 비해 주전들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고, 이를 악문 최준용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라는 점 그리고 이런저런 약점이 어느정도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는 부분 등에서 긍정적인 쪽으로 변수가 작용한다면 기사군단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할 여지도 충분하다. 양팀이 풀전력으로 맞붙는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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