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새 시대로의 초대, 애스턴마틴 DB12
2023. 7. 6. 08:00
-아름답고 디자인, 럭셔리 소재 돋보여
-최고 680마력 뿜어내는 강력한 V8
특별한 차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 니스로 세계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엔 깎아지른 해안 절벽을 배경으로 유채색의 애스턴마틴 DB12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각적인 선과 면으로 꾸민 아름다운 디자인은 조각품을 보는 것 같았고, 동시에 변화를 맞이한 브랜드의 자부심도 엿볼 수 있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출발해 니스와 칸을 거쳐 나폴레옹 로드로 향했다. 말 그대로 나폴레옹이 유럽 원정을 향해 병사를 이끌고 통과한 험준한 산악지대로, DB12의 성능을 확인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차는 강력하면서도 민첩하고 정교한 움직임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애스턴마틴 창립 110주년이자 DB 시리즈가 나온 지 75주년 되는 해에 나온 DB12의 능력은 단연코 새 역사를 쓰기에 충분했다.
▲디자인&상품성
첫 인상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낮고 넓은 차체 위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듬은 실루엣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만큼 우아하면서도 남다른 포스를 풍긴다. 기존 DB11과 비교하면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세부 요소를 살펴보면 전부 달라졌다.
앞은 크게 설계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새로운 디자인의 스플리터를 적용했다. 그릴은 옛 DB시리즈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격자 무늬를 집어넣어 정체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LED 헤드램프도 인상적이다. 특히, 'ㄷ'자 모양에서 벗어난 시그니처의 주간 주행등(DRL)은 정교한 표면 처리로 장식했다. 얼음 조각을 박아 넣은 듯한 모습으로 영롱하게 빛난다. 앞과 뒤 트랙이 각각 6㎜와 22㎜ 증가해 근육질의 자세도 완성했다. 두툼한 보닛과 길죽한 에어덕트, 새로운 애스턴마틴 로고 역시 조화롭다.
옆은 넓은 자세를 이어가면서 21인치 단조 알로이 휠로 포인트를 줬다. 예전보다 1인치 커졌지만 무게는 오히려 8㎏ 줄어들어 멋과 기능을 동시에 챙겼다. 차의 공기역학적 프로파일도 개선했다. 앞바퀴와 이어진 펜더 장식을 비롯해 아래쪽에도 별도 공기 통로를 마련했다. 사이드 스커트를 타고 올바르게 바람이 통하도록 길을 냈다.
완만하게 내려앉은 루프를 비롯해 C필러에도 별도의 덕트가 있다. 공기를 빨아들인 뒤 안쪽을 통과해 트렁크 끝에서 배출하는 구조다. 육안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디자인 완성도를 최우선에 뒀으며 우락부락한 덕트로 가득 뚫어놓은 차들과 선을 긋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를 받아들이는 면적은 56% 증가해 라디에이터에 차가운 공기의 유입을 효과적으로 늘렸다.
뒤는 간결하다. 심리스 구조로 이뤄진 얇은 테일램프를 비롯해 절제된 트렁크 라인이 깔끔함을 전달한다. 커진 애스턴마틴 로고와 레터링은 균형을 맞추며 두툼한 배기구와 디퓨저는 차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트렁크 리드에는 눈꼬리를 살짝 올려 별도의 캐릭터라인을 만들었다. 전동식 스포일러도 마련해 만족을 더한다.
실내는 환골탈태 수준이다. 회사는 단순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에 장인정신, 최고급 소재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운전자 중심의 컨트롤 시스템은 실내의 중심선을 따라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해 운전자와의 연결성을 극대화한다. 또 대담하면서 수평적인 선들은 우아한 실내 장식과 독특한 테두리 마감을 통해 부드러움을 더한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는 기대 이상이다. 애스턴마틴이 개발한 브랜드 최초의 인하우스 시스템이다. 여기에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무선으로 지원하고 1,970×720 해상도의 10.25인치 퓨어 블랙 색상 스크린을 탑재했다. 빠른 반응을 가진 정전식 터치 스크린의 멀티스크린 시스템이 들어간다.
디지털 요소 증가에도 물리적 버튼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최적의 균형을 위해 기어, 주행 모드, 난방 및 환기와 같은 주요 스위치들은 그대로 유지했다. 센터터널 대칭으로 섀시, ESP, 배기, 차로 유지 보조 및 주차 거리 제어를 위한 새로운 버튼도 준비해 편의성을 높였다.
감성 품질도 눈 여겨 볼 부분이다. 수작업으로 작업한 '브릿지 오브 위어' 피혁은 실내 모든 부분을 덮었다. 시트는 장거리 주행에도 편안함을 제공하면서 주행의 즐거움을 위한 지지력과 연결감을 제공한다. 최고급 가죽이나 알칸타라를 활용했으며 새로운 퀼팅 패턴을 채택해 감성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오디오는 새로 파트너쉽을 맺은 바워스앤윌킨스의 환상적인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제공한다. 15개의 스피커로 1,000W가 넘는 실력을 지녔으며 곳곳에 배치한 스피커 장식도 아름답다.
이 외에 수납은 센터콘솔과 도어 안쪽이 전부다. 2+2 구조로 뒷좌석이 있지만 사실상 여분의 수납 공간으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 트렁크는 열리는 입구가 다소 작지만 안쪽은 제법 쓸만하다. 골프백 2개가 들어가는 수준이다.
▲성능
동력계는 V8 4.0ℓ 트윈 터보 엔진을 얹어 6,000rpm에서 최고출력 680마력을 낸다. 2,750~6,000rpm 구간에선 이전 DB11보다 34% 높은 800Nm의 토크를 발휘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시간은 3.6초이며 최고속도는 325㎞/h다.
시동을 켜면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등장을 알린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출발 전 흥분을 부추긴다. 주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은 소리와 반응을 가지고 움찔거리며 언제든지 달려나갈 준비를 마친다. 이 상황에서 스로틀을 조금만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차는 튀어나가고 강력한 성능을 가감 없이 발휘한다. 이내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몸이 시트 안쪽으로 깊게 파묻힌다. 시야가 좁아지고 주변 사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도 경험할 수 있다. 속도계는 지칠 줄 모르고 최고속도를 향해 바늘을 꺾는다. 이성의 끈을 붙잡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인 가속감을 전달한다. 놀랍고 신선한 경험이며 짜릿함과 스릴을 동시에 안겨준다.
강력한 엔진은 좀처럼 지치는 기색이 없다. 타이어 온도만 빠르게 올라갈 뿐 나머지 게이지는 평온하게 중간 값을 유지한다. 이는 월등해진 신형의 냉각 기능에 있다. DB12는 높은 출력을 위해 수정된 캠 프로파일, 최적화된 압축비, 더 큰 직경의 터보 차저, 그리고 강화된 냉각 시스템을 탑재했다.
증가한 열 수요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냉각 시스템도 재설계했다. 여기에 메인 라디에이터에는 보조 쿨러 2개나 추가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흡기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저온 라디에이터를 냉각수 회로에 추가로 장착했다. 운전자에게 한계 없는 높은 수준의 성능을 지원하는 일등공신이다.
주행 모드는 크게 GT, 스포츠, 스포츠+, 인디비주얼, 습식 5가지로 나뉜다. 각 모드별 성격은 명확하며 완전히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 중에서도 엔진회전수 변화가 상당하고 반응과 민감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인디비주얼은 섀시와 파워트레인, ESP, 트랙션 제어 시스템 등을 자신의 선호에 맞춰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데 물건이다. 최적의 세팅값을 찾으면 차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다룰 수 있다. 점진적으로 다이나믹성을 조정해 그립과 트랙션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GT 모드에서는 우아하면서도 민첩한 크루징을 즐길 수 있다. 스포츠 또는 스포츠+ 모드에선 보다 향상된 반응성과 제어력을 선사해 운전자의 몰입감을 높인다. 참고로 주행 모드는 센터 콘솔의 회전식 컨트롤러로 선택할 수 있다. 섀시, ESP, 배기장치에 대한 개별 조정 가능한 버튼도 회전식 컨트롤러 아래쪽 콘솔에 위치한다. 이를 통해 운전자는 주행 모드를 자신이 선호하는 설정으로 조절 가능하다.
DB12의 능력은 코너에서 드러난다. 빠른 속도로 진입과 탈출이 가능하며 조금의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는다. 콤파스로 정확히 반원을 그린 것처럼 깔끔하게 코너를 정복할 뿐이다. 경이로운 과정에 놀라고 운전에 자신감이 붙는다. 여기에는 진보된 F1 기술이 큰 힘이 됐다.
먼저 애스턴마틴 DB 시리즈 최초로 E-Diff가 들어갔다. 이는 ESC 시스템과 결합해 기존 리미티드 슬립 디퍼런셜(LSD)과 달리 밀리초 단위의 짧은 시간 내에 완전 개방 상태에서 100% 잠금 상태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해 운전자에게 일관된 정밀한 핸들링을 제공한다. 그 결과 저속과 중속에서 코너링 시 프론트 엔드에서의 뛰어난 접지력과 구동력으로 어떠한 도로에서도 뛰어난 민첩성과 반응성을 보여준다.
놀라운 운동신경은 노면을 읽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다. 최신식의 인텔리전트 어댑티브 댐퍼와 단단해진 안티롤 바와 같은 핵심 부품의 설계를 통해 드라이빙 다이나믹스를 대폭 키운 것. 특히, 대역폭이 500%나 증가한 새 어댑티브 댐퍼는 힘을 분배하는 기술이 수준급이다. 끊임없이 피드백을 제공하며 운전 스킬을 높이는 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그만큼 높은 반응성과 제어력을 제공하며 서스펜션 부싱의 정교한 설계로 섬세하게 차를 다룰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공격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유연하면서도 한계점에서는 직관적으로 반응해 자신감을 부여한다. 운전자는 장시간 주행에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최고 속도로 달릴 때에는 정밀함과 반응성, 민첩성을 만끽할 수 있다. 일정한 비율의 랙, 가변식 속도 감응형 어시스턴스, 2.4번 회전 락투락도 마음에 든다.
강한 성능과 비율 좋은 움직임에 더해 예리한 제동능력은 DB12 주행 완성도에 절정을 이룬다. 앞 410㎜, 뒤 360㎜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CCB)는 최대 800도까지 페이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 기존 브레이크 시스템 대비 현가하질량을 27㎏ 줄여 승차감과 스티어링 응답성을 높였다.
실제로 높은 속도에서 정지 상태로 만드는 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다. 날카로운 갈고리로 아스팔트를 내려 찍는 기분이며 몸이 앞으로 쏠리고 흘러가던 주변 풍경이 모두 멈춰진다. 최적의 접지를 보여준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5S 타이어(전륜 275/35 R21 103Y 및 후륜 315/30 R21 108Y)도 다양한 상황에서 재미와 안정성을 높인다.
▲총평
애스턴마틴은 DB12를 선보이면서 그랜드 투어러(GT)를 넘어선 슈퍼 투어러(ST)라고 명명했다. 이는 단순히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홍보 수단이 아니다. 진정으로 구현하기 위해 헤리티지와 F1 기술을 전부 끌어들였고 시대가 요구하는 기능까지 추가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결과값은 훌륭했고 깊은 매력으로 오랜 시간 남았다.
한편으로는 화려한 시절로의 부활을 예고하는 엔지니어의 노력이 묻어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감동으로 다가왔다. 슈퍼 투어러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고 독보적인 영역을 정립한 새로운 강자의 등장으로 라이벌은 꽤 긴장을 해야 할 듯 하다. DB12를 시작으로 변화될 애스턴마틴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니스(프랑스)=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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