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못 가는 지리산 화대종주, 초보의 도전
여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나는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와 만났다.
"야, 뭐 먹을래?"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저녁 메뉴를 고르라며 재촉했다. 그는 더우니까 냉면을 먹자고 했고, 나는 이열치열로 국밥을 제안했다. 친구는 "이열치열? 그런 거는 산에서나 해"라며 나를 냉면집으로 끌고 갔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친구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이열치열 산행. 그의 말대로 산에서 여름과 제대로 한판 붙으면 어떨까? 여름과 나의 단판 승부. 스파링 무대는 산! 뜨거운 여름을 다스리는 힘든 산행은 뭔가 재밌을 것 같았다.
떠나자! 지리산으로
힘든 산행. 가장 먼저 지리산 화대종주가 떠올랐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지리산 종주.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해 산청 대원사까지 지리산 능선을 따라 약 45km를 걷는 화대종주는 누구나 인정하는 '힘든 산행'이었다. 지리산은 최고의 스파링 무대였다. 화대종주를 생각하니 몸이 근질거렸다. 오랫동안 아껴둔 맛있는 간식을 꺼내먹는 설렘까지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곧장 지리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했다.
지리산행을 결심하고 일정을 정했다. 어떤 이는 당일 종주로 주파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유 있게 지리산을 둘러보고 싶었다. 한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니 그는 2박3일이 적당하다고 했다. 대피소를 예약하기 위해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다. 순간 내 입에서는 '어? 이게 뭐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평일이라 빈 자리가 많을 거란 예상과 달리 대피소 예약은 꽉 차 있었다.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대피소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유일한 방법은 빈 자리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며칠 뒤 빈 자리가 생겨 무사히 대피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대피소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탐험대를 꾸리는 일에 집중했다. 함께할 탐험대원을 찾기 위해 몇몇 대학산악부에 연락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함께하겠다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전의 날은 점점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지난겨울 덕태산에 함께 갔던 성균관대 산악부 출신 박기완씨에게 전화해 화대종주를 제안했다.
"형, 안녕하세요! 이번에 2박3일 지리산 화대종주를 가려고 합니다. 몸만 오시면 돼요. 함께하시겠어요?"
"오~ 완전 좋아요! 마침 트레일러닝 하려고 부산에 내려왔는데, 여기서 바로 구례로 가면 되겠네요."
그는 망설임 없이 함께하겠다고 했다. 그간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지리산 탐험대가 결성됐다. 우리는 산행 전날 구례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운이 좋았다.
결전 당일, 버스 창밖으로는 비가 내렸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구례에는 서울보다 조금 더 두꺼운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창 밖으로 지리산을 올려다봤다. 지리산은 뽀얀 안개에 파묻혀 있었다. 그 모습은 굉장한 위압적이었다. 마치 우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방벽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은 여전히 안개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화엄사 계곡을 따라 미지의 숲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렇게 나의 첫 지리산 대탐험이 시작됐다.
1일차
화엄사 -> 벽소령 대피소 (약 24km)
2일차
벽소령 대피소 -> 장터목 대피소 (약 8.5km)
화대종주 물 구하기 Tip화대종주는 거리가 길지만, 물을 구할 수 있는 구간이 많아 물에 대한 부담이 적다. 화대종주를 하며 지나는 모든 대피소에는 모두 음용할 수 있는 샘터가 있다. 또한 대피소에서 생수를 구매할 수도 있다. 그 외에 벽소령대피소와 세석대피소 사이에 선비샘이라는 샘터가 있다. 다만,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는 샘터 물이 어는 경우가 있는데 산행 전 인근 대피소에 문의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피소 Tip1박 이상의 지리산 종주를 위해서는 대피소에서 숙박해야 한다. 대피소 예약은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경쟁이 심해 원하는 날짜에 자리를 잡기 힘들 수 있다. 예약 시작일은 매번 다르다. 수시로 홈페이지를 참고해야 한다.
대피소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취사장이 있다. 또한 햇반이나 생수 같은 기본적인 식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아이젠, 랜턴, 가스류도 구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물건이 없을 수 있으니, 산행 전 대피소에 미리 연락해 짐을 꾸리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이후 모포 대여가 폐지되었다. 따라서 등산객은 개인이 사용할 침낭을 직접 챙겨야 한다.
예약 안내 : 1670-9201
예약 사이트 : https://res.knps.or.kr/contents/S/serviceGuideIntro.do
3일차
장터목 대피소 -> 대원사 (약 13.5km)
Mini interview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파란 조끼의 어린 학생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20명이 넘었다. 그들은 왜 단체로 지리산에 온 걸까? 마침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물었다.
Q
어디서, 그리고 왜 지리산에 왔어요?
A 김민효
- 저희는 전남 보성에 있는 특성화 학교인 용정중학교에서 왔어요. 저희 학교는 매년 지리산 종주를 하는 게 전통인데, 3박4일 일정으로 와요. 저희는 어제 대원사에서 출발해 치밭목대피소에서 자고 오늘 장터목에 도착했어요.
오태연
- 코로나 때문에 2020년부터 3년 동안 종주를 못 했는데, 올해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선생님들 포함해서 150명을 4개조로 나눠서 지리산에 왔어요. 각각 대원사, 피아골, 뱀사골, 백무동 코스를 가는데, 저희는 대원사 코스예요.
Q
정말 대단해요! 오늘이 2일차인데 뭐가 제일 힘들어요?
A 김민효
- 발이 너무 아파요. 종주를 하기 전에 학교 주변 산을 오르며 등산화 적응 훈련도 했는데,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인 것 같아요.
오태연
- 저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요. 4일 동안 먹을 음식을 챙겨야 하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 또 오늘 걸은 구간에서는 중간에 식수를 구할 수 없어서 목이 말랐어요.
Q
지리산 종주는 처음일 텐데, 기분이 어때요?
A
김민효
- 뿌듯해요. 천왕봉 오르기 전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막상 정상에 오르니까 또 좋은 거 있죠? 앞으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어요!
오태연
- 자부심이 생겼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 없이 걸었어요. 그러다 문득 '나 대단한 걸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은 일정도 무사히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산행길잡이
지리산 화대종주는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해 지리산 능선을 따라 걷다가 경남 산청 대원사로 내려오는 장거리 산행 코스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화엄사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지리산 종주는 장거리 산행을 처음 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코스다. 거리가 긴 반면, 물을 구할 곳이 많고 일정 구간마다 대피소가 있기 때문이다. 찾는 이가 많아 등산로가 잘 닦여 있고, 이정표도 잘 되어 있다. 가파른 화엄사-노고단, 그리고 천왕봉-대원사 구간을 제외하고는 잔잔한 오르내림이 있다. 능선에만 올라서면 상대적으로 편하게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거리가 긴 만큼 자신의 체력을 알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종주 성공의 핵심이다. 종주 코스는 국립공원 난이도 기준 가장 어려운 '검정색' 실선이 그어져 있다. 본인의 산행 능력에 따라 당일종주부터 3박4일 코스까지 다양하게 산행을 계획할 수 있다.
교통
코로나 이후 서울에서 구례로 가는 야간열차와 버스는 사라졌다. 하지만 남부터미널에서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 8회, 용산역에서 구례구역으로 가는 열차는 하루 13회 운행한다. 구례공영버스터미널에서 5-1번 버스를 타고 화엄사까지 이동할 수 있다.
산행이 끝나는 대원사에서 서울로 오기 위해서는 원지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대원사에서 원지까지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버스 정류장은 대원사에서 2km 아래에 있다. 버스는 하루 6회 운행한다. 택시비는 약 4만 원이다. 문의 콜택시(055-972-9393, 055-972-6363)
맛집
산행 시작 전 화엄사 아래에 식당들이 많이 있다. 구례밀밭(061-782-0781)에서 건강한 재료로 만든 수제비와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산행 마치고는 버스를 타기 전, 원지버스정류소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산행의 피로를 달래주는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다면 영광돼지국밥(055-973-6227)을 추천한다. 원지한우상차림식당(055-972-0000)에서 든든하게 고기를 먹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등산 지도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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