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수라 갯벌은 마르지 않았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황윤 감독은 의아했다. 도로 양쪽이 모두 바다였다. 바다 한가운데로 난 도로가 다 있나 싶은 생각에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곳이 방조제 위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잊으려고 애를 썼고 실제로도 잊었던 이곳을 내 발로 다시 찾아오다니.” 세상에서 가장 긴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그는 망연자실했다. ‘너무 싫다.’ 처음 든 생각이었다.
황윤 감독이 새만금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2003년 3월이었다. 문규현 신부와 승려 수경,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가 65일 동안 전북 부안군에서 서울까지 305㎞를 걸으며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올렸다. 3보1배 행렬이 서울에 다다르자 황 감독은 그 끝을 따라갔다. 2006년 3월에는 카메라를 들고 부안 계화도 갯벌로 향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강행하는 정부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였다. 판결만 기다렸다는 듯이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진행됐다.
촬영을 하고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기화 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계화도 갯벌에서 조개를 캐 생계를 꾸리던 어민이자 늘 맨 앞에 나서서 새만금 공사를 반대하던 류기화씨가 바다에서 세상을 떠나자 황 감독은 의지를 잃었다. “여기서 뭔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때 촬영했던 6㎜ 테이프들을 그냥 처박아뒀어요.”
다시 새만금을 마주한 건 2014년 전북 군산시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였다. 방조제 위를 달리고 나서야,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벽면에 ‘새만금의 도시 군산’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적혀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잊고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함께 웃고 울었던 모두에게 실패한 기억, 패배한 기억이었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다. ‘군산에 간 김에 이 사람을 한번 만나보라’는 지인의 소개로 오동필씨와 통화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동필씨는 “갯벌에서 물새를 관찰한다”라고 했다. “어디서요?” “군산에서요.” “군산에는 갯벌이 하나도 없는 거 아니에요? 간척사업 다 끝났잖아요.” 휴대전화 너머 오씨는 아니라고 했다. “이번 주말에 정기 모니터링이 있으니까 한번 나와보세요.” 속는 셈 치고 나가본 곳에 정말 습지가 있었다. 집에서 차로 불과 15분 거리였다. 아직 남아 있는 갯벌을 향해 새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렌즈에 눈을 대고 새들을 바라봤다. 그곳이 수라 갯벌이었다. 오동필씨가 인근 마을 이름을 따서 지었다.
황 감독은 그날 저어새 무리를 봤다. 전 세계에 6000마리도 채 남지 않아 멸종위기종 1급으로 분류되는 새였다. “거기서도 보기 힘든 새거든요. 게다가 마침 그때가 물이 들어올 때였어요. 저어새 150여 마리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깜짝 놀랐죠.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난 게 아니었구나, 영화로 치면 반전의 순간이라고 할까요.” 급한 대로 습관처럼 들고 다니던 카메라로 저어새 무리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 〈수라〉 촬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로드킬 문제를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2008), 채식과 육식 사이 고민을 조명한 〈잡식 가족의 딜레마〉(2015) 등을 찍으며 동물권에 관심을 보여왔던 그로서는 자연스럽고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새만금 사업
1991년 11월 공사가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06년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사람들은 ‘진 싸움’이라고 체념했지만 지역 시민들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다. 2020년 12월부터는 고인 채 썩은 바닷물 수질관리를 위해 하루에 두 번씩 수문을 열게 됐다. 〈수라〉는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 속에 갯벌 풍경이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기록한 영화다.
촬영을 하면서 황 감독은 자신의 오만함을 깊이 반성했다. “만약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면 동필씨를 만날 수 없었을 거고 이런 현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 저 멀리서 ‘다 끝났네’ 하고는 방관자로만 바라봤겠죠.” 가까이, 자주 현장을 들여다보면서 갯벌을 그저 보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처음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이 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정도였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갯벌은 너무나 강인한 거예요.”
검은머리갈매기는 덤프트럭이 오가는 공사 현장에서 알을 품어 부화시켰다. 새끼들은 어미도 찾지 못할 정도로 모래밭 색과 똑같은 보호색을 하고 있었다. 바닷물이 다 닿지 않는 염습지에는 붉은 칠면초와 해홍나물이 자랐고 고라니가 그 사이를 뛰어다녔다. 도요새들은 군무를 췄다. “도요새 안에도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 줄 아세요? 뒷부리도요, 큰뒷부리도요, 넓적부리도요,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좀도요, 민물도요, 붉은가슴도요, 세가락도요….” 새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던 황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영화 이름도 원래는 〈붉은어깨도요를 기억하니〉로 지을까 고민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옥구염전으로 날아와 옹기종기 앉아 쉬던 10만 마리 도요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것이 붉은어깨도요였다. 물론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붉은어깨도요는 2017년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됐다. 갯벌이 마르자 철새들의 먹이도 씨가 말랐다. 붉은어깨도요는 중간 기착지인 한국에서 굶어죽었다. 누군가 땅에 떨어져 죽은 붉은어깨도요의 깃털을 쓰다듬는 손길도 영화에 담겼다.
촬영은 7년 동안 이어졌다. 2003년부터 활동해온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생태조사단)이 제공한 방대한 자료와 기록을 읽고 파악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분들은 전문가도 아니고 어디서 월급을 받는 활동가도 아니에요. 각자 삶이 있고 생계도 바쁜 평범한 시민들이 20년 동안 갯벌을 지켜왔던 거예요. 멀리서 말로만 ‘새만금 갯벌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게 아니라, 감정에만 호소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 조사를 통해 기록을 남기고 있었던 거죠.” 정부가 방조제 공사를 강행하며 작성한 보고서에는 새만금 갯벌을 찾는 새가 41종, 7000여 마리에 불과하다고 적혀 있었지만, 생태조사단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3년부터 10년간 매해 평균 150여 종, 25만2543마리가 관찰됐다.
평범한 시민들이 지켜온 갯벌
생태조사단을 찍던 황 감독은 어느새 그 일원이 되어 있었다. 감독이면서 출연자이기도 했다. “동필씨가 그러잖아요. 너무 아름다운 걸 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고.” 황 감독도 ‘죄인’이 됐다. “봤기 때문에,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새들의 소리를 듣고, 갯벌 냄새를 맡고, 발을 디딜 때 그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생태조사단은 더 많은 바닷물을 유입시켜 마지막 남은 수라 갯벌만이라도 복원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갯벌 촬영은 쉽지 않았다. 새와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 무리가 나타나도 물때가 맞지 않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찍을 수 없었다. 눈 내린 갯벌을 담기 위해 몇 번이나 허탕을 치기도 했다. 어렵사리 건진 겨울 갯벌 풍경은 결국 펄에 처박힌 드론을 끌고 나와 얻은 장면이었다.
관객들은 진심에 응답했다. 2022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고, 지난 6월7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았다. 입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공동체 상영회를 열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작은 화면으로 수라 갯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황 감독과 제작진은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조건으로 전국 30여 곳을 돌며 시사회를 열었다. “지역마다 수라가 있더라고요. 울산에는 태화강, 제주에는 강정, 함양에는 지리산처럼요. 각자의 지역에 남아 있는 수라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물론 수라도 지켜야 하지만요. 당장 새만금 신공항 건설 백지화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셔도 좋고요.” 여전히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은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니터링을 연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6월21일 영화 〈수라〉는 전국 159개 상영관에서 개봉했다. 독립 예술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성과다.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가 흥행을 받쳐주었다. 각 지역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미리 본 시민들이 텀블벅 펀딩과 후원을 통해 자발적으로 상영관을 확보했다. 목표한 100개 상영관을 훌쩍 넘긴 덕분에 개봉 첫날 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 아직 갯벌은 마르지 않았다고, 황윤 감독은 생각한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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