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인공 생명체도 진화한다, 자연 상태보다 변이 빨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7. 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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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45% 줄여 최적화한 인공 박테리아
300일 만에 잃어버린 유전자 회복
1만5000배로 확대한 인공 박테리아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원래 유전자의 45%를 없애고 473개만 남은 상태이다./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현미경연구센터

19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이안 말콤 박사는 유전자로 복제한 공룡을 보고 “진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한 가지가 있다면 생명은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생명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고, 고통스럽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길을 찾는다”는 명대사를 했다. 말콤 박사가 말했던 생명 진화의 놀라운 힘이 인간이 만든 인공 생명체에서도 발휘됐다.

미국 인디애나대 생물학과의 제이 레논(Jay Lennon) 교수 연구진은 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최소한의 유전자만 남긴 인공 합성 박테리아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면서 다시 잃어버렸던 유전자를 회복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공 생명체도 자연에서 하듯 환경에 맞춰 스스로 진화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다.

◇300일 진화 거쳐 원래 유전자 모두 회복

레논 교수 연구진은 소나 염소 같은 반추동물의 내장에 기생하는 ‘마이코플라즈마 마이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라는 박테리아를 가지고 실험을 진행했다.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가 아니라 지난 2016년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가 인공 합성한 박테리아 ‘JCVI-syn3.0′이었다.

벤터 연구소가 만든 인공 박테리아는 원래 유전자 중 45%를 없애고 493개만 갖고 있다. 이 박테리아는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체 중 유전자가 가장 작다. 동식물 대부분은 2만개 이상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연구진은 인공 합성 박테리아와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를 영양분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키웠다. 환경에 적응하는 진화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인공 박테리아(붉은색)는 자연 박테리아(파란색)에 비해 원래 유전자의 절반을 잃은 상태다(ancestor). 하지만 300일 배양하는 동안 더 빨리 진화해 잃은 유전자를 거의 회복했다(evolved)./Nature

박테리아는 300일 동안 배양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박테리아가 2000세대를 거듭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약 4만년 동안 진화하는 것과 같다. 실험 결과 최소한의 유전자만 가진 인공 박테리아는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보다 돌연변이가 훨씬 많이 생겼다.

인공 박테리아는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에서 유전자 절반을 없앤 상태인데, 300일 동안 돌연변이를 거듭하면서 유전자 50%를 회복해 자연 상태로 돌아왔다. 그사이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도 진화했지만, 진화 속도는 인공 박테리아가 39% 빨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돌연변이를 거친 인공 박테리아와 처음 상태의 인공 박테리아를 같이 배양했더니 나중에 돌연변이 박테리아가 주를 이뤘다. 진화를 거친 박테리아가 경쟁력이 더 있다는 의미다.

박테리아는 진화 과정에서 세포 표면을 구성하는 유전자가 가장 많이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일부 유전자는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박테리아에서 빨리 진화하는 유전자를 확인하면 인공 생명체를 설계할 때 필수적인 유전자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기대했다. 유전자 다이어트에서 꼭 남겨야 할 필수 유전자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레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영화 대사처럼 생명은 늘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분열, 성장하는 인공 생명체도 개발

벤터 박사가 시작한 인공 생명체 연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단순히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열, 증식했으며, 이번에는 진화까지 유도한 것이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와 MIT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 생명체 JCVI-syn3A. 5년 전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만든 인공 생명체에 유전자 7개를 추가해 실제 박테리아처럼 균일하게 분열하고 자라도록 했다. 오른쪽 아래 흰 막대 길이는 0.05mm다./NIST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이끄는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JCVI)는 2010년 인공 합성한 유전자를 가진 박테리아 ‘JCVI-syn1.0′을 개발했다. 최초의 인공 생명체였다. 연구진은 유전자를 없앤 세균에 인공 합성한 유전자를 주입했다.

지난 2016년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 연구진은 사이언스지에 유전자 493개를 가진 인공 생명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원래 이 세균은 유전자가 901개인데 유전자 분석을 통해 최적화시켜 473개만으로도 충분히 생존과 증식을 할 수 있었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와 매사추세츠 공대(MIT) 연구진은 지난 2021년 국제 학술지 ‘셀’에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만든 인공 생명체 버전 3.0에 유전자 7개를 추가해 실제 박테리아처럼 균일하게 분열하고 자라도록 했다고 밝혔다. 2016년 나온 인공 생명체 ‘JCVI-syn3.0′는 당시 배양접시에서 자랐지만, 균일하게 분열하지 않아 나중에 만들어진 자손인 딸세포가 같지 않았다.

인공 생명체는 자연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로운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인공 박테리아처럼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합성생물학은 치료제나 바이오 연료 등 유용 물질을 최소 경비로 생산하는 도구로 주목 받고 있다. 또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참고자료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288-x

Cell(2021),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1.03.008

Science(201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d6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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