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테르에서] ‘나엘들’이 애타게 찾는 ‘정의’는 무엇인가

노지원 2023. 7.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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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파리 외곽 도시 낭테르에 도착했다.

알제리계 이민자 출신인 17살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뒤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된 폭력·소요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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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위] 프랑스 항의 시위 발원지
지난달 27일 17살 알제리계 청년 나엘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 이후 낭테르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낭테르 도시 벽면 곳곳에는 나엘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씨가 적혀 있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지난 3일 파리 외곽 도시 낭테르에 도착했다. 알제리계 이민자 출신인 17살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뒤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된 폭력·소요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27일 알제리계 청년 나엘 메르주크가 숨진 이 도시에서 며칠간 이어진 시위의 흔적을 따라가는 동안 곳곳에 휘갈겨진 글귀가 눈에 띄었다. “정의”(Justice).

이들이 애타게 원한 정의가 무엇일까. 답을 찾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낭테르에서 원로로 통하는 한 인사는 “오늘 상황은 4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경찰은 이민자를 ‘해충’으로 대한다”고 말했다.

정확히 40년 전인 1983년 알제리 이민자로 구성된 10만명 규모의 시위대는 마르세유에서 평등과 반인종차별주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해 12월 파리에 도착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80년대 초부터 늘기 시작하던 인종차별 범죄에 대한 엄중 처벌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이민자를 차별하는 공권력과 사회에 만연한 이중잣대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18년 전인 2005년 10월 소요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외곽에서 15살·17살 청소년 2명이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감전사했다. 경찰의 과잉대응과 인종차별에 반발한 시위는 약 3주 동안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됐다. 시위대는 자동차·어린이집·학교·체육관 등에 불을 질렀다. 아프리카계 이민자 출신 청소년이 대거 참여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 이후 일주일 동안 체포된 4천여명 가운데 1200여명이 미성년자였다.

왜 수십년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될까. 취재 현장에서 만난 튀르키예 이민자 출신 기자 위미트 된메즈(41)는 2017년 개정된 프랑스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꼽았다. 경찰의 총기 사용 조건을 확대하는 법안이었다. 이 법 435조 1항은 군과 경찰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명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법에 해석 여지가 많아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법이 시행된 뒤 차량 운전자에 대한 경찰의 총격 사건이 약 5배 늘었다. 경찰의 신분증 검사를 거부하다 총에 맞아 숨진 이는 지난 한 해에만 13명이나 됐다.

된메즈는 “경찰에 협조하지 않는 이는 누구든 쏠 수 있도록 한 법”이라며 “사망한 사람들은 낭테르 같은 외곽 도시 출신으로 아랍·모로코·알제리 등 아프리카계였다. 대부분 무고하게 죽었다”고 말했다. 이들과 나엘 사이에는 경찰의 잘못을 담은 영상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가, 지금 프랑스에선 “항상 비디오를 찍어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거리에서 만난 이들의 얘기는 비슷했다.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고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다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누적된 차별, 부정의,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의 부재, 가난의 대물림…. 누군가는 무기력과 포기, 다른 이들은 불만과 분노로 반응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알제리계 이민자 2세대인 사미(44)는 “부모 세대는 먹고, 자고, 일만 하며 불평 없이 살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차별을 거부하고 불만도 이야기한다”고 했다.

낭테르 거리에서만난 이들은 “이민자 아이들의 꿈은 우버 택시 기사,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게 현실이다”(낭테르 원로 인사), “이민자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파리 올림픽 경기장을 지어 올리면서도 아파트 한 칸 스스로 마련하기 어렵다. 백인 프랑스인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주면서도 차별을 받는다”(된메즈)고 말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똑같은 비극’의 반복을 피할 수 없다.

파리/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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