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오직 아픈 사람을 위한 변론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2023. 7.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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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다고 치자. 가장 흔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어떤 게 있을까? 좀 쉬지 그래요. 이런 정도일 것이다.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되면, 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권할 것이다. 아프면 쉬는 것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 있는 경험률이다. 하지만 직장을 포함한 단체에서도 여전히 이런 상식이 통할 수 있을까? 선뜻 "예"라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로부터 '아프면 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방역당국에서 정한 지침에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정부로부터 듣게 된 것도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이유야 어떻든 간에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명제가 갑작스럽게 공식적인 논의의 장으로 나온 셈이다. 쉬는 것과 치료를 우선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쉬지 않으면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대한민국 정부가 강조하는 세상이 됐다.

그럼 우리 진료실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56세 남자의 위암환자에게 수술 이야기를 하니 부담스러워한다. 당장 직장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암환자가 되면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암에 걸렸다는 것이 휴식과 치료가 우선순위가 되기보다는 죄의식이나 불편함으로 다가온다는 사실도 엄연히 존재한다. 치료를 어렵게 하는 것이 진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직장과 사회에서의 불이익이나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도 한몫을 하고 있다.

또 치료의 의미나 목표에 대해 견해 차이가 있다. 의학적으로 암환자의 치료 중 완치의 개념은 암을 제거하고 난 후 일정기간 재발이나 전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다른 차원의 성공의 의미가 있다. 직장상사가 하는 덕담에서 '훌훌 털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지요'라는 말에서 제자리라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 실제로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끝나면 주치의에게 소견서를 요청하면서, 치료가 끝났고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꼭 넣어 달라고 한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치료나 결과를 설명할 때 의학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업무 복귀나 생산성의 유지 여부를 중시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자신의 질병 경험을 토대로 질병(아픔)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 조한진희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작가는 건강함의 미덕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에서 질병으로 인한 아픈 몸은 존중받기 어렵고 부정되기 쉽다고 이야기한다. 환자라는 이름이 자기관리의 실패자로 인식되거나 생산력 회복이 치료 목적의 주가 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는 완치가 어려운 경우나 치료 후 장애가 남은 사람의 설 자리가 많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아픈 사람의 잘 아플 권리를 '질병권'이란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한다.

물론 제도적인 차원에서 잘 치료받을 권리에 호응하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한 유급휴가나 상병수당 확대를 고민하고, 고용 등에서의 차별을 방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노력이다.

의학적인 차원에서 질병과 치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동정 혹은 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수준이다. 암, 고혈압, 당뇨 등과 같이 완치보다는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만성화된 병이 많아진 시대에는 무수히 많은 '아픈 사람'이 존재한다. 우리도 언제든지 아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픈 사람 혹은 아픈 몸이 실패나 차별의 의미로 다가올 때 질병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사회적 병폐가 될 수 있다. 아픈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잘 치료받을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의 공존이 가능할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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