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통령 말씀에 끼워맞추려?…숫자 장난치는 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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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의 자본적정성은 주요국과 비교시 미흡한 상황. 지난해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은 유럽연합(15.27%), 영국(16.06%), 미국(12.55%), 한국(12.61%)."
결국 국내 은행들의 '돈 잔치'로 자본비율이 해외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는 금융위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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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의 자본적정성은 주요국과 비교시 미흡한 상황. 지난해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은 유럽연합(15.27%), 영국(16.06%), 미국(12.55%), 한국(12.61%).”
금융위원회가 5일 내놓은 보도자료에 담긴 문구다. 국내 은행들이 소위 ‘이자 장사’로 역대급 이익을 올리고도 자본을 확충하기보다는 성과급·배당 지급에 치중한 탓에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졌다는 논리다. 금융위가 제시한 숫자만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내 은행의 자본비율을 끌어내리는 건 주로 국책은행이다. 금융감독원의 집계와 각사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보통주자본비율은 산업은행이 12.28%, 수출입은행이 11.63%, 기업은행이 11.08%로 모두 은행 전체 가중평균(12.61%)을 밑돈다. 이들 은행은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위험한 대출 등을 감수하기 때문에 자본비율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금융위가 예시로 든 주요국과는 차이가 있다. 산은이나 수은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은행’의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주요국에서는 많지 않다. 한 예로 영국의 수출입은행에 해당하는 ‘영국수출금융’(UKEF)은 정부 부처의 형태로 운영된다. 당연히 은행 자본비율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 산은의 사정을 감안하면 금융위 논리의 설득력은 더욱 떨어진다. 산은의 보통주자본비율은 2021년 말 13.73%에서 지난해 말 12.28%로 대폭 떨어졌다. 지난해 고유가에도 전기요금을 충분히 올리지 못해 발생한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가 최대주주 산은의 재무제표에 반영된 탓이다. ‘돈 잔치’와는 거리가 먼 사정이 자본비율 하락의 기저에 있는 셈이다.
반면 금융위가 ‘이자 장사’의 주범으로 지목한 시중은행들의 자본비율은 대부분 14%대다. 현행 규제 수준(8%)을 넉넉하게 웃돌고, 글로벌 대형 은행들과 비교해봐도 뒤지지 않는다. 결국 국내 은행들의 ‘돈 잔치’로 자본비율이 해외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는 금융위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셈이다. 강영수 은행과장은 “그런 부분은 고민해보지 못했다”며 “금융감독원 집계를 가져왔을 뿐 의도를 가지고 숫자를 만진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위가 보도자료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숫자를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상장 규제를 완화한다면서 벤처투자 금액 추이를 제시했다. 요지는 올해 1분기 벤처투자 금액이 1년 전보다 60% 줄어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벤처 붐으로 인한 기저효과에 가깝지만 금융위는 2021년 이전 숫자는 아예 제시
하지 않았다. 당시 이세훈 사무처장은 “자료는 객관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정할 수 없다”고 했다.
숫자의 잘못된 인용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 문제된 보도자료는 공교롭게도 모두 국정과제나 대통령의 주요 지시사항과 연관된 자료다. 단순 실수를 넘어서서 정책을 홍보하려는 과한 열정이 낳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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