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숨은영웅] 남아공 참전용사 "상전벽해 한국, 참전 헛되지 않아"
남아공 826명 참전용사 中 사망·실종자 36명…현재 생존자는 5명
(하우윅<콰줄루나탈주>=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한국의 발전한 모습은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unbelievable)!"
93세의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전 참전용사인 아이반 홀스하우젠 씨는 1990년대 초부터 지난 2017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한국 방문 소감을 묻는 말에 "언빌리버블(믿을 수 없다)"이라고 연신 되뇌었다.
지난달 30일 남아공 동부 콰줄루나탈주의 작은 마을 하우윅에서 벽안(碧眼)의 그를 만났다.
벌꿀로 유명하다는 하우윅은 더반 인근 킹샤카 국제공항에서도 차를 타고 2시간 가까이 달려야 갈 수 있는 인구 4만여 명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엘리자베스 가든스'라는 연립 주택 단지에 있는 홀스하우젠 씨와 부인 페트리샤(84) 씨의 집 앞 정원에는 원숭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부터 동행한 더크 러우(66) 남아공한국전참전용사협회장이 초인종을 울리자 인상 좋은 홀스하우젠 부부가 커튼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홀스하우젠 씨는 1952년 12월 남아공 공군 전투기 조종사(소위)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1953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F-86 세이버로만 75차례 출격했다.
보청기가 있는 왼쪽 귀로만 들을 수 있어 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지만, 일단 질문을 이해한 뒤에는 대답하는 데 막힘이 없었고 기억도 또렷했다.
한국전에서 주 임무가 "지상 공격"(ground attack)이었다고 소개한 그는 "75차례의 출격 중에서 10차례가 공중전 임무(air to air mission)였고, 나머지 65차례가 지상 공격이었다"고 회고했다.
홀스하우젠 씨는 그가 조종한 세이버 603기에 '루스(RUTH)Ⅱ'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도 소개했다.
참전 당시 약혼녀였던 첫째 부인의 이름이 '루스'였고, 그래서 자신의 전투기에 '루스Ⅱ'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홀스하우젠 씨는 "좋은 이름 덕분에 한 차례도 피격당하지 않고 끝까지 한 전투기만 조종할 수 있었다"며 루스 씨와는 2006년 사별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전투기 조종을 계속하기 위해 1963∼1980년에는 지금의 짐바브웨인 당시 로데시아 공군에도 몸을 담았다.
집 곳곳에 장식된 전투기 모형과 사진에서 전투기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종전 후 그가 한국 땅을 다시 밟기까지는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야 했다.
참전용사 재방한 프로그램을 통해 1992년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과 2017년 두 차례 더 한국을 찾은 그는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홀스하우젠 씨는 "전쟁 당시 한국은 막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후진국이었다"며 "1990년대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세계적인 일류 국가가 돼 있었다"며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비롯해 모든 게 '언빌리버블'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진정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척도로 삼을 수 있는 나라"라며 "한국 재방문 이후 나의 참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고 덧붙였다.
'1952년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그래도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에 주어진 기회가 가져온 결실을 생각할 때 참전은 옳은 결정이었다"며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다시 갈 것"이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며 "70년 전 머나먼 이국땅까지 와서 힘을 보태줘 감사하다"고 말하자 홀스하우젠 씨는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먼 길 찾아와줘 내가 고맙다"며 손을 흔들었다.
러우 회장에 따르면 826명의 남아공 참전용사 가운데 36명이 한국전 당시 전사 또는 사고로 숨지거나 실종됐고 나머지는 무사히 귀국했다.
이후 세월이 많이 흘러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5명뿐이다. 홀스하우젠 옹을 비롯한 4명은 남아공에, 다른 한 명은 영국에 각각 살고 있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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