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를 기다렸다’ 물 만난 無아스파탐 막걸리… “고급화 분수령”
‘아스파탐 공포’가 식품업계를 덮친 틈을 타 무(無)첨가 막걸리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무첨가 막걸리는 쌀과 물, 누룩 같은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어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린 술이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는다.
무첨가 막걸리는 그간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짧은 상미기한(賞味期限) 때문에 일부 막걸리 애호가 위주로 팔렸다.
그러나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물질(2B군)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자, 일반 소비자들도 무첨가 막걸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CU는 5일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더본코리아와 아스파탐 없는 ‘백걸리’를 출시했다. CU에 따르면 아스파탐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이달 1~3일 사이 막걸리 매출은 약 3% 줄었다.
서울탁주의 장수막걸리 역시 지난 3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외부 전문 기관 등의 하위 기준이 명확해지면 (아스파탐의) 전면 교체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수막걸리는 국내 막걸리 시장 40%를 장악한 업계 1위 브랜드다.
장수막걸리를 포함해 시중에 유통 중인 생(生) 막걸리 제조업체들 열에 여덟은 막걸리에 아스파탐 같은 첨가물을 넣는다. 인위적으로 생막걸리 유통기한을 늦추고, 제품 변질을 막기 위한 조치다. 아스파탐 뿐 아니라 아세설판칼륨 같은 감미료 역시 관행처럼 들어간다.
효모가 살아있는 생 막걸리는 병 속에서 계속 발효를 한다. 그러다 보니 유통 중에도 맛이 계속 변한다. 아스파탐을 넣으면 변하지 않는 단맛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자연히 맛이 바뀌어 제품을 회수해야 하는 불상사가 줄어든다.
한국전통민속주협회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여러 맛 중에서도 단맛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며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막걸리 고급화를 위해 아스파탐을 넣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을 십수년 동안 했지만, 아스파탐을 넣는 것만큼 일정하게 단맛을 유지하는 쉽고 저렴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계속 첨가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 유발’ 우려가 커지기 이전부터 아스파탐에 대한 주류업계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인공감미료를 넣으면 제조업체가 추구한 단맛을 일정 기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막걸리 고유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막걸리는 단맛으로 마시는 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배혜정도가, 술샘, 오산양조 같은 막걸리 제조업체들은 진작부터 이런 논란에 대비해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 없는 막걸리를 선보였다.
이들은 막걸리에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으면 재료가 가진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에 달하는 단맛을 가진 감미료다. 조금만 넣어도 단맛이 다른 재료가 가진 특성을 덮어 버린다.
아스파탐을 거부한 막걸리 제조업체들은 단맛의 빈 자리를 홍국 곰팡이를 접종시킨 후 띄운 홍국쌀이나 유기농 찹쌀, 도지사 인증을 받은 특(特)등급 쌀 같은 독특한 재료로 채웠다.
무첨가 막걸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술맛을 즐기기도 좋다.
느린마을막걸리를 만드는 배상면주가 관계자는 “감미료를 넣지 않은 막걸리는 사고 나서 1~4일 사이에는 달콤한 향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주로 느껴지다, 5일이 지나 8일쯤 되면 산도와 탄산이 올라오면서 균형감이 생긴다”며 “9일부터 12일차에 탄산감이 가장 강해지고, 13일 이후부터는 쌉싸름한 맛까지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무첨가 막걸리는 인공감미료를 넣은 막걸리에 비해 최소 2~3배에서 최대 10배 가까이 비싸다. 해창주조가 만든 무첨가 막걸리 해창막걸리 12는 750밀리리터(ml) 한병에 1만2000원에 달한다. 1병 당 1500원을 조금 웃도는 서울장수생막걸리보다 가격이 8배 더 높다.
아스파탐을 대신하는 원재료 값, 짧은 유통기한으로 인한 물류·인건비 등 기회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가양주연구소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비싸더라도 아스파탐으로 낸 단맛 대신 막걸리 특유의 깊고 부드러운 풍미가 나는 제품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추세”라며 “막걸리가 값싼 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려면 이번 기회에 맛과 향에서 다채로움을 추구해 고급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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