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왜 북조선 좋아하시나요…한 달 살아보면 실상 아실텐데"
"이 식물은 된장 풀어 먹고 저 풀은 소금 뿌려 먹으면 된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품 좀 내줬으면"…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편집자 주=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인터뷰 기사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원래는 두차례로 나눠 송고할 예정이었으나 인터뷰 분량이 많아 3차례로 나눠 송고키로 했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지난달 26일 "아들아, 된장 물 한 사발만 있으면 나 이렇게 죽지 않을 듯한데"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기사는 29일 "北의 엄마가 간암이래요, 제발 남한의 좋은 약 좀 구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남한 사람들이 북한 체제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네다.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것 같습네다"
조명숙(53) 여명학교 교장은 지난 26년간 탈북민, 탈북 청소년을 돌보고 교육하면서 그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다고 했다.
조 교장은 지난 3일 연합뉴스와의 추가 인터뷰에서 북한 아이들은 자신이 살았던 곳의 주소를 찍어주고 싶다면서 그곳에서 한 달간만 살아보면 실상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조 교장은 상류층이 살고 있는 평양 특별시와 북한당국이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아파트 등만 보고는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 교장은 1970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빈민가에서 태어나 하루 세끼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랐다. 배고픈 나머지 먹는 것을 너무 밝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별명이 돼지였다. 지금은 틈만 나면 여명학교 아이들에게 빈대떡, 달고나 등 먹을 것을 만들어 먹인다. 아이들은 그에게 '돼지'가 아닌 '미스코리아 교장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대학생 시절인 1993년부터 외국인노동자를 도왔고, 1997년에는 탈북민 지원을 시작했다. 그는 동료들과 두만강 변, 백두산 자락 등에서 탈북민을 구해주고, 음식을 먹였으며, 그들이 원하면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2003년에는 한국에서 탈북청소년 야학인 '자유터학교'를 열었다. 2004년에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중고등부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제안해 이 학교가 문을 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 학교 교감을 거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남편 이호택(64)은 난민을 위한 시민단체 '피난처'의 대표다.
-- 여명학교가 개교한 지 20년 됐는데, 그동안 학생들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나.
▲ 경로가 다양하다. 주요 경로는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과 동남아 몇개국을 거쳐 태국에 도착한 뒤 한국으로 오는 것이다. 북한에서 직접 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가 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기도 한다. 휴전선을 넘어온 아이도 있었다.
-- 아기 때 탈북하는 경우도 있을 듯한데.
▲ 아기였을 때 엄마 품에 안겨 중국으로 넘어온 뒤 인신매매단에 붙잡히는 일이 있다. 엄마는 농촌이나 유흥업소에 팔려 가고, 아기는 자녀가 없는 중국인 가정에 넘겨지기도 한다. 이런 아기가 청소년으로 성장해서 한국에 오기도 한다.
-- 학생 중에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꽤 있나.
▲ 탈북 여성이 인신매매로 중국의 농촌 총각과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도주할까 봐 남편이 못 나가게 한다. 아이를 낳으면 '설마 아이가 있는데 도망갈까' 하는 생각에서 바깥출입을 허용한다. 그 틈을 타 한국으로 오는 탈북 여성이 있다. 아이까지 낳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여서 한국에 오면 공부하고 싶어 한다. 그런 앳된 여성들이 여명학교를 다닌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 여성이 중국에서 낳은 아기가 어느 정도 성장해 한국에 들어온 뒤 여명학교에 입학하기도 한다.
-- 한국에 온 아이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 북한에서 살다 한국에 온 아이들은 20세기에서 살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날아온 것 같다고 한다. 그만큼 환경이 급격히 바뀌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조차 당황한다. 커피를 달라고 하면 종업원이 어떤 종류의 커피를 원하냐고 묻는다. 탈북 아이들은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등을 모르기에 좀 더 큰 소리로 "그냥 커피 주세요"라고 한다. 여러 가지 신용카드 멤버십을 접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북한에서 신용카드를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북한 학교에서는 주로 무엇을 배우나.
▲ 남한에 온 아이들은 북한 교육에 분노한다.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할 나이에 김일성 가족 우상화 교육만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서다. 북한에서 받는 교육은 북한을 제외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써먹을 데가 없다고 한다. 자신이 경쟁력 없는 바보가 됐다고 개탄한다.
-- 아이들은 한국에서 영어 공부에 열성적인가.
▲ '자유터 학교'는 집중적으로 영어교육을 했다. 이곳은 북한 출신을 위한 야학이어서 직장에 다니는 청년, 대학생 등이 와서 영어 공부를 했다.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영어 교사였다. 미국 사람은 나쁜 놈들이라고 배웠기에 학생들은 이들 교사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했다. 어떤 학생은 미국인 교사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5분간 노려봤다. 외국인 교사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같이 노려봤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불러 화해시켜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탈북 학생들은 "좋은 양키도 있네요"라고 하며 서서히 편견을 지웠다. 자유터 학교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문을 닫았는데, 아직도 열지 못하고 있다.
-- 북한에서 누가 영어를 가르치나.
▲ 예전에는 영어가 선택과목이어서 안 배우는 학생들도 많았다. 요즘은 모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 교사들이 외국 유학 경험이 없고, 영미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탈북 아이들은 바나나를 갈색으로 알고 있다고 하던데.
▲ 어떤 학생은 북한에서 파인애플이라는 영어 단어를 알았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이 과일을 봤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바나나가 갈색인 줄 알았는데, 노란색인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했다. 북한 상점에는 바나나를 걸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오래돼서 갈색이라고 한다.
-- 탈북 아이들이 한국에서 특히 힘들어하는 것은.
▲ 뭔가 결정하기 어려워한다. 북한에서 스스로 결정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하는 '생활총화'를 많이 해봐서 비판은 잘한다. 대안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답변을 제대로 못 한다. "그건 위에서 결정하는 것인데, 왜 저에게 물으세요"라고 한다.
-- 탈북 아이들의 장점은.
▲ 손재주가 좋다. 북한에서는 뭐든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인 듯하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고난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도 뛰어나다. 간호사로 취업하는 아이들이 꽤 있는데, 보호자가 없는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는 환자를 정성껏 간호한다고 한다. 나는 이런 아이들이 한국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고 본다.
-- 아이들이 한국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은가.
▲ 힘들 때보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많이 운다. 여명학교 졸업생이 결혼식을 할 때 내가 신부 어머니 자리에 앉는 경우가 있다. 북한에 있는 엄마가 그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가장 행복한 날에 엄마는 북한에서 고생하며 지내고 있으니 신부는 서러워한다. 그녀는 나를 보며 엄마 생각이 나서 울고, 나는 그런 상황이 안타까워 운다.
-- 주로 북한에 있는 가족 때문에 많이 우나.
▲ 북한에 있는 엄마가 간암, 폐암, 유방암에 걸려서 남한의 좋은 약을 구해 보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의사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으니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어머니가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북송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들바들 떨면서 우는 아이도 있다. 중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라는 욕설만 듣고 쪼그려 앉아 우는 학생도 있다.
-- 북한 문제에 대해 정치권에 도움을 호소한 적이 있나.
▲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석방 운동 지지 선언을 부탁하러 정치인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이때 그들은 "미얀마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권이 무서워서 외칠 수 없으니, 밖에서 도와줘야 한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달 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을 발표했다. 나는 같은 인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더니 그들은 예상과 달리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북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야지, 왜 밖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정 간섭이라고 했다.
-- 남한에는 사상의 자유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북한의 정치ㆍ경제ㆍ사회 시스템에 대해 정서적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탈북 청소년들은 그런 사람들이 남한에 꽤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아이들은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가서 살아보면 좋겠다. 북한이 보내주는 곳 말고, 내가 살았던 곳의 주소를 찍어줄 테니 그곳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그래도 좋다고 느끼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1주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 북한 당국이 안내하는 곳은 위장된 것인가.
▲ 어떤 아이는 청진시 아파트에서 살았다. 외국인한테 보여주는 전시형 주택이었다고 한다. 외국인이 방문하면 아파트에 전깃불이 들어오지만, 그들이 떠나면 전력이 금방 끊긴다고 했다.
-- 탈북 아이들이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박근혜 대통령 탄핵,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을 보면서 상당히 놀란 것 같다. 숙청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문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탈북 아이들은 국민이 대통령과 정치인에 대해 욕하는 것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북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북한 주민들의 당국에 대한 충성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당국은 식량 배급을 포기했다. 주민한테 알아서 식량을 구해서 살라고 했다. 당시 300만명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사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도가 떨어진 것 같다.
-- 평양시민은 충성도가 강하지 않나.
▲ 평양 특별시에 산다는 것은 북한에서 큰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다. 북한의 상류층들이 주로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평양시에서 쫓겨난다. 한국에 온 북한 아이 중에서 한 명이 "내가 평양시 출신이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분위기를 압도했다.
-- 북한 주민들은 북한 체제에 대해 왜 저항하지 않나.
▲ 보통 사람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반역하면 친가, 외가, 처가 등 삼족이 죽는데, 어떻게 저항하나. 자기 자신만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아무 죄도 없는 친척들이 자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야밤에, 트럭에 태워져 사라진다.
-- 북한 주민이 열렬히 북한 수령에 대해 환호하는 것은 가식적인가.
▲ 그렇지 않다. 어떤 아이는 2시간 동안 걸어서 김일성 생가에 도착해서 마당에 있는 나무의 잎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손수건으로 닦아줬다고 했다.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세뇌 교육의 영향이 이렇게 크다. 그렇지만 지난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고 공산당이 주민의 식량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뀐 듯하다.
--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유지되고 있나.
▲ 북한이 '고난의 행군' 이후 주민들은 개인 밭을 일구어 농사도 짓고, 장마당에서 필요한 것을 구해 생활하니 초기 시장경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20년 전 여명학교 초기에는 학생들이 이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준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은행이 도둑으로부터 우리 돈을 보호해주니, 돈을 맡기는 사람이 보관료를 내야지 왜 이자라는 돈을 받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돈을 장사꾼한테 빌려줘서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왜 내 돈을 장사꾼한테 빌려주느냐"고 반문했다.
-- 자본주의 경험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 듯하다.
▲ 아이들이 도저히 이해를 못 해서 나는 그냥 외우는 게 낫겠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 여명학교 아이들은 이자의 개념을 너무 잘 안다. 북한에서 초기 시장경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에서는 힘 있는 당국자의 부인과 중국 화교들이 결합해서 물주(전주.자본가) 역할을 한다. 이자율이 10∼40%나 된다. 이러다 보니 자본주의처럼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당국은 화폐개혁을 했는데, 이후 주민들은 북한 화폐를 신뢰하지 않고 위안화나 달러로 거래한다고 한다.
-- 북한에서는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많다고 하던데.
▲ 사람에게는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청렴과 정직을 지키느라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흔해졌다. 어떤 아이는 두만강을 건너왔는데, 업혀서 왔다고 했다. 누가 업어줬냐고 물었더니 북한군 경비병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두만강 국경에서 일정 기간 군 근무를 하면 집을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 북한 학교에도 촌지가 있다고 하던데.
▲ 북한에서는 뇌물을 주는 것을 '고인다'고 표현한다. 여명학교에 있으면 가끔 북한 출신 학부모가 봉투를 주는데, 처음에는 편지가 들어있는 줄 알았다. 열어보면 5만원의 돈이 있어 되돌려주면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먹고삽네까?"라고 묻는다.
--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 대해 많이 아는가.
▲ 중국에 넘어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다. 남한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다 보니 남한 소식이 전파될 수밖에 없다. 한번은 한 어머니가 어떤 일로 보위부원에 의해 끌려가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때 보위부원이 "그래도 당신은 희망이 있지 않으냐"라고 했다고 한다. 남한에 있는 자식이 돈을 보내오니, 살만하지 않으냐는 뜻이었다.
-- 남한 제품이 장마당에서 많이 팔리나.
▲ 한국산 내의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한국 상표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다 탈북했다고 했다. 장마당에서는 장사꾼이 드러내놓고 팔지는 않지만 가까이 가면 귓속말로 "남조선 내의가 있다"고 말해준다고 한다. 한국산 내의는 북한산보다 색깔이 하얗고, 두께가 있어서 인기라고 한다. 가격은 북한산의 두 배 정도라고 한다.
-- 여명학교 학생들을 볼 때 가슴 아픈 일이 있다면.
▲ 학생들을 데리고 수목원에 간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들꽃을 보며 꽃말에 관해 이야기를 해줬다. 아이들은 "이 풀은 소금을 뿌려 먹으면 되고, 저 풀은 된장과 함께 먹으면 맛이 있고, 이 풀은 독이 있어서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번은 한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에 갔다. 잘 먹지 않고, 키가 아주 작은 아이였다. 한의사는 이런 아이는 처음 봤다고 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어 참혹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 어렵게 탈북해서 남한에 와서는 숨지는 아이도 있다고 하던데.
▲ 야학 '자유터학교'를 운영할 때 26세의 탈북 청년이 레프팅하러 가자고 했다. 자기 생의 마지막으로 그걸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위암 말기였다. 나는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계곡에 갔다. 그런데 배가 뒤집혔고, 그 청년과 나는 뒤집힌 배의 에어포켓에서 목을 내놓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그 청년은 "제가 죽을 뻔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 달 후에 숨졌다.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는데, 암에 걸려 죽은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북한에서는 음식이 없어서 못 먹었는데, 남한에서는 음식이 많은데도 위암에 걸려 못 먹는 현실을 그는 죽기 전에 한탄했다.
-- 여명학교 아이들은 통일을 원하나.
▲ 간절히 원한다. 북한 고향에서 못 먹고 고생하고 있는 부모와 형제, 친구들과 함께 남한의 풍요로움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이는 통일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탈북 청소년들한테 조금만 품을 좀 내줬으면 한다. 이 아이들을 우리의 부담 또는 소외계층으로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 학교를 혐오시설로 보지 마셨으면 한다. '먼저 온 미래'로서 충분히 성장할 아이들이며, 역사에게 이들이 필요할 때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탈북 청소년들과 여명학교를 따뜻하게 품어 주셨으면 좋겠다
(취재지원 이건희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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