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절반 쇼크'
정부나 정치권, 저출산 뒷짐
즉흥 대응 말고 근본 해법 찾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딱, 강 건너 불구경 격이다. 올해 상반기 가장 충격적인 뉴스라면 올 2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합계출산율(0.78명)이었다. 2015년 1.24명을 기록하며 잠깐 반등했던 출산율이 7년 연속 내리막길을 달리며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정도의 초저출산 수치라면 북핵보다 더 엄중한 국가 존망의 위기 신호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뒷짐 진 모습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를 한 번 주재한 것 외에는 의미 있는 대책을 찾기 어렵고, 어떤 아이디어가 논의된다는 얘기조차 없다. 올 초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부위원장에서 해촉된 저출산위는 존재감 자체가 제로다. 국회 역시도 지난 3월 말 인구특위를 가동했지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2013년부터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였던 탓에 그냥저냥 무감각해진 걸까. 아니면 그간의 저출산 대책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기에 백약이 무효라고 여기고 자포자기한 걸까.
오랫동안 계속된 저출산 경보음에 정치권이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저출산의 실제 충격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 해 90만 명에서 100만 명씩 태어났던 1955~1974년생과 비교해 출생아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2002년생이 20대 문턱을 넘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2021년 지방대 대량 미달사태를 시작으로 지방대 폐교, 인근 소도시 소멸 등이 현실화하고 있고 병역 부족 사태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인력난과 연금 고갈 등도 예고된 미래다. 더군다나 2020년 이후 세대는 2002년생의 반토막이다. 20년 만에 또 다른 절반 세대까지 출현한 것이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9일부터 7월 4일까지 3부 12회에 걸쳐 게재한 창간기획 ‘절반 쇼크가 온다’가 조명한 것이 바로 절반 세대에 몰고 오는 인구 감소 충격이었다. 가족 직장 연금 병역 교육 등 파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한 해 출생아 100만 명으로 짜인 사회 시스템이 절반 세대의 등장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바꿀 것이냐를 따지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이민 문호를 넓히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수순이지만 동남아나 이슬람문화권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정서는 뿌리 깊다. 1인 가구가 2021년 기준 716만 가구로 전체의 33.4%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정상 가족’만 가족 형태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 외면에 가깝지만, 가족 가치관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특단의 아이디어와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만 정부나 정치권은 이제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사안들을 건드려 봐야 표가 되지 않고 당장 효과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악명 높은 저출산 원흉 중 하나인 사교육비 부담만 해도 공교육, 입시, 대학 서열화 등 교육 체계 전반을 다뤄야 해결의 실마리가 겨우 잡힐 수 있는 복잡한 문제다. 이런 과제들은 대부분 10년이나 20년 앞을 내다보는 정책을 꾸준히 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나 여야 정치인들에게 내년 총선 결과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킬러 문항을 없애고 학원 강사를 때려잡는다고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들 리 없지만 정부가 뭔가 한다는 인상은 줘서 총선 표심에는 영향을 줄 것 같다. 매사가 그런 식이니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어야 할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절반 쇼크는 결국 각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란 게 비정하고 씁쓸한 현실인 셈이다.
송용창 뉴스1부문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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