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환 포스텍 총장 “대학 성적과 상관없는 수능, 자격 시험으로 바꿔야”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 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지난 3일 본지 인터뷰에서 “수능의 ‘킬러 문항’은 상위 4% 학생 변별을 위해 나머지 학생들을 희생시킨 것”이라며 “(올해부터 킬러 문항 배제는) 오히려 너무 늦은 조치”라고 했다. 강남 학생에 비해 지리산 산골 학생이 대비하기 어려운 문제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수능은 자격 시험으로 가고 대학의 선발 자율권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포스텍은 2010년 전국 최초로 신입생 전원을 수능 성적 없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수능 없는 입시를 설계한 사람이 입학처장이었던 김 총장이다.
킬러 문항은 상위 4% 학생 위한 것
-정부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빼기로 했는데.
“많이 늦었다. 킬러 문항은 교과 과정 이해나 종합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문제 풀이에) 잘 훈련된 학생을 골라내는 문제다. 대학은 그런 학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리산에 사는 학생은 어떻게 ‘킬러 문항’ 훈련을 받나. 훈련받을 기회에 따라 점수가 결정되는 건 공평하지도 않다.”
-킬러 문항 풀어봤나.
“몇 문제 봤다. 최근 한 수험생이 인터뷰에서 ‘몇 년 동안 킬러 문항을 정확하게 풀려고 훈련해 온 게 물거품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봤다. 이 말이 정확하게 짚은 거다. 몇 년간 문제 푸는 훈련만 반복한 학생을 대학이 왜 필요로 하나.”
-킬러 문항이 빠지면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히 등수 매기는 건 변별력이 아니다. 대입 시험은 대학 가서 공부 잘하는 능력을 변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능 점수와 대학 성적이 상관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포스텍에서 분석해보니 수능 성적과 대학 졸업 성적은 아무 관계가 없더라. 킬러 문항은 상위 4%의 변별을 위한 것인데 나머지 학생들이 희생되는 거다.”
-지금 수능의 문제는?
“수능이 1994년 도입될 때 ‘암기 위주 입시 방지’ ‘과외 수요 감소’ 등이 취지였다. 지금 그 목적이 달성됐나. 현재 학교 교육 과정을 2015년 개정하면서 ‘토론, 체험, 프로젝트 중심의 학생 참여형 교육’이라고 했다. 그 목표하고 오지선다형 수능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지난해 신입생들과 저녁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답이 비슷했다. ‘실수하지 마라’ ‘수능 실수하면 인생 망친다’는 내용이다. 실수 안 하려고 맨날 반복 학습하고 새로운 건 안 배운다. 창의적일 수가 없다. 대학은 무슨 수로 이렇게 훈련된 학생들을 데려다 창의성 있는 인재로 키우나.”
대입서 가장 중요한건 소통 능력
-포스텍은 입시에서 수능을 안 보는데.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소통 능력이다. 지식 전달, 융합 연구 등에서 중요하다. 대입에서도 소통 능력을 테스트해야 한다. 그런데 수능 국어, 영어 점수와 소통 능력은 별 상관이 없다.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데 킬러 문항 잘 맞혀 1등급 받는 건 난센스 아닌가. 소통 능력을 보려면 학생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정답인지는 나중 문제다. 소통이 되는지, 꽉 막혀서 자기 주장만 하는지 본다. 서울 강남에서 킬러 문항 100개를 맞힌 학생과 지리산 산골에서 90개 맞힌 학생이 있다고 치자. 수능 점수만 보면 강남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갈 거다. 하지만 나는 지리산 학생을 뽑고 싶다. 그런 학생은 대학에 오면 200개를 스스로 공부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 세계적 학자가 될 수도 있다.”
-지리산 학생이 세계적 학자가 된다?
“20년 전 도쿄대 교수님이 해준 본인 이야기가 있다. 이분은 2차 대전 직후 고등학교 시험을 쳤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교장이 부르더니 ‘앞부분은 다 맞혔는데, 뒤에는 다 틀렸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농번기에 일 돕느라 뒷부분은 학교서 못 배웠다’고 했다. 그랬더니 교장이 자신과 다른 학생 1명을 추가로 합격시키더란다. 당시 고교 입학생 700명 중 20명 정도가 도쿄대에 갔는데, 도쿄대 교수가 된 사람은 자신을 포함한 추가 합격자 2명이었다고 하더라. 이것이 교육의 역할 아닌가.”
-사교육비 문제가 심각하다. ‘초등 의대반’도 생겼는데.
“최근 강남 대치동에 갔는데 ‘의학원’ 간판이 있더라. 뭔가 해서 보니 초등학생 데려다 의대 입학 교육시키는 데라고 하더라. 궁금해서 ‘손자 때문에 왔다’고 하고 들어가 상담을 받아봤다. 초등 6학년 때까지 고3 수학을 다 뗀다고 하더라. 수학에 흥미를 느낄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는 거다. 정말 문제구나 싶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쟤 틀렸어요’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남보다 1점이라도 더 앞서야 하니 남 틀린 걸 신경 쓰는 것이다. 골프 가서 상대방이 몇 개 오버 했는지 아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 시스템은 왜 못 바꾸는 걸까.
“‘킬러 문항 같은 걸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상위 계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건 충분히 타당하다. 반복 훈련으로 점수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잘 대비하는 시험이 과연 옳은가.”
-현재 대입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나.
“수능은 일종의 ‘자격 시험’ 역할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각 대학이 건학 이념과 특성에 맞게 뽑도록 자율권을 줘야 한다. 수능을 자격 시험으로 하면 킬러 문항도 필요 없다. 만점이 1000명 나오면 어떻나. 지금도 미국 SAT(대입자격시험)는 만점이 1000명쯤 나온다.”
지적 호기심과 윤리 의식도 갖춰야
-학생 선발을 대학에 맡기면 입시 비리가 생길 수 있지 않나.
“물론 부조리도 나올 수 있다. 비리를 밝혀내고 일벌백계해서 억울한 학생이 없게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대학이 원칙을 갖고 학생을 뽑겠다고 하면 허용해야 한다. 그랬을 때 부작용은 지금처럼 학생을 잘못 뽑는 것보다 적을 거다. 지금 대학들 마음은 편하다. 대학이 학생을 수능 점수 등으로 줄 세우고 ‘나는 괜찮아’라고 만족하는 동안 나라가 멍들고 있다.”
-우리나라 대입에서 꼭 필요한 부분은.
“다양성이다. 졸업 후 학생들이 만나는 사회는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게 있다. 학생 구성 비율을 사회 구성 비율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남자, 여자, 지역별 분포 등을 감안해 신입생을 뽑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회로 나가기 전 다양성 훈련을 받을 수 있다.”
학생 구성 비율은 훨씬 다양하게
-포스텍에서 중시하는 학생 능력은 뭔가.
“지적 호기심과 윤리 의식이다. 문제 풀이만 집중한 수동적 학생이 많으면 수업은 재미 없고 발전도 없다. 굉장히 똑똑한데 윤리 의식이 없는 학생을 뽑아서 세계적 연구를 시키면 세계가 망할 수 있다. 제출한 서류에 과장이 있으면 감점, 명백한 거짓말은 실격이다.”
-포스텍 면접 질문은 어떤 것인가.
“작년에 처음으로 면접 전에 태블릿 PC로 20분간 강의를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질문했다. 요즘 학생들은 경청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런 시험을 봤다. 10년 전 교사 추천서에 ‘버릇없다’고 쓰여 있는 친구가 있었다. 상당한 논의 끝에 합격시켰다. 학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많이 하더라. 학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런 친구는 고교에서 기회를 못 얻은 것이다. 학생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인구도 줄어드는데 학생 하나하나를 건져내야 한다.”
☞김무환 총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학부·석사를 마치고,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입학처장, 기획처장 등을 거쳐 2019년 총장에 임명됐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 지방대학발전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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