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보수의 사상전, 그 두번째 화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반국가세력’을 말하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또, 대북 적대관을 가진 김영호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지명하고 극우 유튜버 김채환씨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를 ‘극우’로 규정짓게 한 사건이다.
그전만 해도 윤석열 정부 성격이 보수인지, 전체주의인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했다. 통치 기조는 반문재인을 앞세운 우파 자유주의, 통치 방식은 검찰식 권위주의라는 공감대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취임 2년 즈음부터 극우 인사들이 정권 요직에 중용됐고, 권력 주변에서나 맴돌던 극우적 발언이 권력 중심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않은 세력을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고, 사회적 합의를 거친 중요한 가치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 현상을 1932년 독일 상황에 빗대며 “히틀러 집권 뒤 극우주의자들이 정권 핵심 세력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년”이라고 했다. 속도와 내용 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행은 권력 속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준비된’ 극우화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어딘가에 뿌리가 있는, 구조적 토대가 존재한다는 것. 사상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보수의 경세가 박세일이 쏘아올린 ‘공동체 자유주의’에 닿는다. 박세일은 그해 4월 한나라당 17대 총선 당선인 연찬회에서 “보수는 정책이 아닌 사상을 준비해야 하고, 사상전에서 이겨야 집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와 인권이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와 ‘공동체적 가치를 존중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사상전 토대로 제시했다. 보수는 냉전(반공)에서 자유주의(시장)로,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시선을 옮겼다.
새롭게 등장한 자유주의연대와 종편이 뉴라이트운동을 주도하며 보수 이념의 전사 역할을 했다. 보수의 토양을 갈아엎은 첫 사상전이었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그해 9월 “산업화 민주화 이후 국가비전은 선진화”라는 ‘선진화론’으로 진화했다.
비록 한나라당은 경제 선진화에 집중했지만, 선진화론은 ‘5·6공 청산’ ‘뉴한나라당 플랜’ 등 수구 정당 청산의 밑거름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5107 프로젝트’(2007년 대선에서 51% 득표율로 집권)까지 줄기를 뻗쳤고,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취임 일성으로 “선진화를 국정기조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진보진영은 이런 보수의 몸부림을 신자유주의 운동쯤으로 과소평가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보수의 첫 사상전이 재무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징후만으로도 두 번째 사상전이다. 당시 뉴라이트 핵심 멤버들이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멘토로 부활했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강화된 자유민주주의, 공정으로 변신했다. 정책이 아닌 사상을 준비해야 한다던 박세일의 주장도 재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새로운 정책 대신 지난해 연말 노동·교육·연금을 3대 국정과제(실상은 부정부패 척결)로 제시했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뉴라이트 중심이 엘리트 그룹에서 온라인 극우 인플루언서들로 이동했고, 여권 내부가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잡음 없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사정 통치가 가미된 측면에선 역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획이든 아니든 일사불란하기란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의 첫 사상전을 추억거리 정도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수의 두 번째 사상전은 처음과 달리 외부를 겨냥하고 있다. 모든 정황이 노무현·문재인 정부 자산을 깡그리 없애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은 20년 전처럼 보수의 몸부림을 경시한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부, 정치 경험없는 세력으로 납작하게 평가하거나, 많은 인사들이 “스스로 무너질 거라 총선은 우리가 이겨”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사상전은 힘이 세다. 혁명과 반동이 교차했던 지난한 역사에서 사상전은 주도 세력엔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기, 약자들에겐 가스라이팅 기제였다. 분단을 겪은 우리는 사회가 후퇴할 때 사상전의 위력이 더 강력했음을 숱하게 경험했다. 야권이 ‘윤석열식 정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역사의 진보는 진리’라는 도그마에 집착할수록 더 강력한 백래시를 맞게 될 것이다.
불교경전 <잡아함경>에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겪는 상처가 첫 번째 화살이라면,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로 인한 고통이다. 두 번째 화살의 8할은 내가, 나를 향해 쏘는 경우라고 한다. 어리석으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만, 지혜로우면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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