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이시무레 미치코를 읽는다
“미완성의 3번 국도에는 급격하게 늘어난 대형 트럭의 행렬이 굉음을 내며, 초라한 이 장례행렬을 찌부러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맹렬한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간소한 상복의 옷차림이나 가슴께에도, 위패에도, 한 상 차려진 공물에도 가차 없이 흙탕물이 튄다.”
이 장면은 일본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1927~2018)가 쓴 소설 <고해정토>(1969)의 한 대목이다. 1953년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처음 보고된 세계 최초의 공해병인 미나마타병 환자 아라키 타츠오의 장례행렬을 묘사한 장면이다. 대형 트럭이 흙탕물을 튀기며 맹렬히 달려가는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미나마타병 발생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줄곧 희생자들의 넋을 위무하는 진혼(鎭魂)의 문학을 보여주었다.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 <신(神)들의 마을> <하늘의 물고기>(1972) 3부작은 뛰어난 기록문학이다. <고해정토>는 <슬픈 미나마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고, <신들의 마을> 또한 녹색평론사에서 번역되었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3부작을 통해 특유의 ‘미치코 방언’을 구사하며 재난을 내장한 근대성 자체를 심문하고 탄핵한다. 그를 근대에 대항하는 주술사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나마타병은 1950년대 중반 일본질소(‘짓소’)주식회사 미나마타 공장에서 메틸수은 화합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시라누이해(海)에 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1953년 환자가 처음 발생했고, 수십년 동안 피해자만 해도 1만명 넘게 발생한다. 미나마타병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956년이었지만, 일본 정부가 공장 폐수 때문에 수은 중독이 발생했다는 의견을 발표한 것은 1968년이었다.
작가는 <고해정토>에서 한 사람의 무당이 되어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어민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봄부터 여름이 되면 바닷속에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지. 우리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같은 진술을 보라. 1969~197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신들의 마을>에서는 기업과 행정의 대응이 자세히 그려진다. 환자 가족 29가구가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일본짓소주식회사 주주총회에서 피해자들이 항의하지만, 자본(일본 ‘짓소’)과 국가(후생성)는 무책임하게 기민(棄民)정책으로 일관한다. 훗날 일본 총리가 되는 32세 하시모토 류타로 후생성 사무차관이 1970년 5월 도쿄를 찾은 피해자들 앞에서 “정부가 인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적이 있는가?”라고 발언하는 식이다.
세상이 어지러운 시절에, 이시무레 미치코 소설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미나마타병 환자들이 원한 ‘우덜의 나라’는 얼마나 먼 것인가를 생각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이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의 제국’을 비판하며 과학자 등 직업적 전문가에게 보내던 존경을 버리고 의심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한 철학자 이반 일리치의 경고가 떠오른다. ‘미나마타병’은 시라누이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는 우리 삶과 지구의 근본 바탕이다. 우리는 의심에서 행동으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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