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민주와 과학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2023. 7.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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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풍요 이끈 핵심원리, 인류에 기후위기 부메랑
오염수 찬반처럼 충돌도…통찰 통해 한계 극복해야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세운 나라는 어디일까요? 수업 시간에 가끔 학생들에게 내는 단골 퀴즈다. 일본? 인도? 학생들은 대체로 이 두 나라를 꼽는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아시아에서 근대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이고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이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답은 중국이다. 1911년 발발한 신해혁명을 통해 1912년 청 제국이 무너지고 건립된 중화민국이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이다. 실제로 1913년 초에 국회 선거가 실행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시작된 중화민국의 민주공화국 체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임시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가 자신을 견제하는 국회와 정당을 탄압해서 정식 대총통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공화국 체제를 다시 왕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하는 혁명세력이 다시 봉기하고 위안스카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정은 취소되었지만 이미 중국은 군벌의 난립으로 혼란에 빠진 뒤였다.

이처럼 퇴행적인 양상을 보인 것에 대해 크게 좌절했던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찾은 해법은 ‘신문화 운동’이었다. 핵심 구호는 ‘민주’와 ‘과학’이었다. ‘민주’를 주창하는 것은 전제 왕정과 군벌의 독재 정치를 반대하며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수립하자는 것이었고, ‘과학’을 주창한 것은 잘못된 전통에 대한 숭배를 버리고 근대적 이성에 근거한 물질문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1919년 5·4운동은 신문화 운동의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민주’와 ‘과학’은 중국을 넘어 동양의 근대 체제 수립의 기본 원칙이 된다.

본래 ‘민주’와 ‘과학’은 서양 문화의 상징이었다.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은 인류가 근대적 민주 체제로 진입하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인식되어 왔고 서양의 산업혁명은 근대 과학기술 발전의 계기로서 서양의 경제적 풍요를 가져왔다. 따라서 당시 서세동점의 흐름 속에서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민주’와 ‘과학’이야말로 나라를 구할 제도와 학문으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사실 ‘민주’와 ‘과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각국의 발전을 추동해 온 핵심 원리이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오늘날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들치고 ‘민주’와 ‘과학’을 강조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중국 역시 ‘중국식 민주’를 주창하고 있으며 ‘과학’을 어느 국가보다도 강조하며 진흥에 힘쓰고 있다. ‘민주’와 ‘과학’은 우리가 사는 현대에 이르러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절대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겨온 두 가지 원리 즉 ‘민주’와 ‘과학’으로부터 비롯된다. 민주의 원리는 이미 독일에서 나치당의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들어 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홀로코스트와 같은 반인류적인 재앙을 야기했던 역사가 있다. 오늘날에도 민주의 원리는 트럼프나 푸틴을 지도자로 뽑기도 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기후협정을 탈퇴하고 세계 각국과 ‘무역전쟁’을 전개했다.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이 계속되는 오늘날까지 세계는 핵전쟁도 배제할 수 없는 암울한 위기 상태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앞에서 오늘날 인간은 절박한 삶의 위기상황을 대면하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은 각종 환경 파괴를 야기했고 종국에는 인류의 멸종까지 예고하는 기후위기를 낳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인류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근대화가 이젠 가공할 만한 ‘위험사회’를 낳음으로써 오늘날에는 ‘과학’이 진리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민주’와 ‘과학’은 서로 충돌되어 혼란이 가중되기도 한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예고되는 시점에서 안전성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 등 과학적 기준을 제시하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인체에 해를 입힐 정도가 아니며 안전하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일부 과학 단체들은 여전히 해양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한다. 동아시아 각국의 국민 여론은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가 압도적이다. 민주는 포퓰리즘을 낳을 수 있기에 반과학적인 결과를 선호할 수도 있다.


울리히 벡은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근대 즉 ‘제2의 근대’로 나아가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이른바 ‘성찰적 근대화’이다. 성찰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대면해야 하는 것인 만큼, ‘성찰적 근대화’란 우리가 추구해 온 기존 근대화 그리고 그 핵심 원리인 ‘민주’와 ‘과학’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깊이 반성하면서 새로운 계몽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풍요롭지만 위험천만한 이 시대를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대로 전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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