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전염병 번져도 바로 백신 개발… 도·감청, 꿈도 못 꾼다
“2035년까지 양자(量子·퀀텀) 분야에 최소 3조원을 투자해 선도국 대비 85% 수준의 양자 기술을 달성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이런 내용의 ‘양자 과학기술 전략’을 발표했다. 양자 기술이 반도체 산업에 이어 미래 테크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면서 한국도 글로벌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양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로, 양자 기술은 원자(原子) 수준의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다.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기술이다. 과연 2035년까지 한국의 양자 기술이 ‘퀀텀 점프(단기간의 비약적 성장)’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신종 전염병 창궐해도 곧바로 백신 생산
양자역학은 일반인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난해한 분야다. 아인슈타인조차 생전에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은 ‘중첩’과 ‘얽힘’이다. 미시 세계에 있는 양자가 한 번에 두 상태를 동시에 갖는 것이 중첩, 멀리 떨어진 양자가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얽힘 현상이다. 고전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성을 활용해 종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가장 빠른 상용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양자컴퓨터’다. 현존 최고 성능으로 꼽히는 수퍼컴퓨터보다 1000만배 빠른 연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컴퓨터는 전자의 유무(有無)에 따라 0이나 1로 정보를 표현하고 계산한다. 반면 양자컴퓨터에선 한꺼번에 0과 1 두 상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계산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예를 들어 명함 수십만 장이 뒤섞여 있으면 이전 컴퓨터는 특정 명함을 찾기 위해 모든 명함을 하나씩 확인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모든 명함을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암·치매 치료제 개발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재는 신약을 개발하려면 수십만 후보 물질의 효능을 일일이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걸린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수초~수분 만에 후보 물질을 추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코로나 같은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더라도 즉각 백신·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자는 주요 질환 진단에도 핵심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최근 개발한 ‘심자도 시스템(MCG)’이 대표적이다. 보통 병원에 가면 방사선과 조영제를 사용하는데, 그 대신 양자 자기장 센서를 활용해 심장 근육에서 발생하는 미세 전류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을 측정해 질환을 진단한다. 정밀한 계측이 가능한 양자 센서를 활용해 MRI(자기 공명 영상)의 암 검사 정밀도가 현재 5mm에서 0.05mm로 개선될 전망이다.
또 주목받는 분야는 보안·통신이다. 양자 암호 통신은 양자가 미세한 자극에도 상태가 변하는 특성을 이용한다. 현재 통신 방식에선 정보라는 ‘공[球]’을 서로 주고받을 때 제3자가 이 공을 몰래 가로채 복사본을 만들어도 탈취 여부를 알기 어렵다. 반면 양자 암호 통신은 비눗방울을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 정보를 가로채려고 시도하면 비눗방울이 터지듯 형태가 변해 해킹이나 복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송신자와 수신자만 해독할 수 있는 암호 키(일회용 난수표)로 도청을 막는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미국·중국·일본 등 기술 선진국들은 최근 10여 년간 매년 수천억~수조원을 쏟아부었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 기술 시장은 오는 2040년 1060억달러(약 13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구 인력 확보 등 과제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구글·IBM 등 글로벌 기업들이 내건 양자 기술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30년 전후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양자컴퓨터의 연산 오류율이다. 양자컴퓨터는 빛, 열과 같은 아주 약한 외부 자극에도 양자 중첩 상태가 깨져 연산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양자 중첩 상태를 유지하려면 절대 온도 0도(섭씨 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회로나 진공(眞空)에 원자를 가둬야 하는데 이를 구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한국은 현재 미국, 중국 등 양자 기술 선도국과 비교해 5~10년가량 기술 격차가 있다. 한 국내 출연 연구소 관계자는 “선진국과 격차를 줄이려면 380명 안팎에 불과한 국내 양자 연구 인력을 지금의 10배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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