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지향으로 읽는 ‘출판 라이벌’

기자 2023. 7.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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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흥미로운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진행하는 ‘출판 라이벌전’으로 “선한 경쟁으로 출판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출판사를 소개하는 기획”이다. 1편으로 내가 일하는 위즈덤하우스와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다산북스가 꼽혀 두 출판사의 문화와 지향을 두루 살폈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책과 출판의 세계에서 라이벌이란 구도는 흔히 이야기되지 않는 편이다. 저자든 책이든 출판사든 다른 경쟁 상대를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보다는 각자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펼쳐가는 터라, 밖에선 라이벌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안에서 그렇게 이해하는 일은 어색하다. 지금처럼 출판사가 많지 않았고 책과 출판이 시대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요청받던 시절엔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창비로 불리는 창작과비평사와 여전히 문지로 불리는 문학과지성사가 대표 사례겠다.

이 기획의 입안자가 다음 라이벌을 어떤 짝으로 떠올리는지 알 수 없으나, 판이 벌어진 김에 몇몇 라이벌 출판사를 꼽아보자.

우선 대형, 종합 출판사 사이에서는 이런 구도를 찾기가 쉽지 않겠다.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다수 펴내니 연결 고리나 부딪히는 쟁점을 따로 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출판사의 역사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외국어, IT 등 실용서와 전문서를 기반으로 시작해 종합 출판사로 성장한 도서출판 길벗과 한빛출판네트워크 같은 짝이라면 흔치 않은 출판사의 성장담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는 성인 단행본에서 어린이, 청소년 분야로 확장하는 방향에서 민음사와 비룡소, 김영사와 주니어 김영사, 북이십일과 아울북 같은 사례도 하나의 궤에서 살펴본다면, 한국 출판 역사의 어떤 방향을 확인해볼 수도 있겠다.

이보다 궁금한 조합은 특정 분야에서 독창적 목록을 쌓아가는 출판사 사이의 이야기일 텐데, 이 경우 라이벌이라 쓰면서도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동반자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겠다. 물론 앞서 밝혔듯 이들은 자신의 길을 걸어왔을 따름이고, 그 경로가 어쩌다 얽히고설켜 라이벌과 동반자로 비칠 뿐이기도 하겠다.

그럼에도 당장의 재미와 혹여 모를 의미를 기대하며 몇몇 분야의 라이벌을 꼽아본다면, 우선 과학 분야에서는 동아시아 출판사와 바다출판사가 대번에 떠오른다. 과학 분야가 대중 교양으로 이야기되지 않던 시절부터 꾸준히 이 분야에서 교양서와 전문서를 두루 펴냈고, 지금까지도 분야의 새로운 저자 발굴과 과학 문화의 확산을 위해 잡지 출간 등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외부자의 시선이지만 감히 멋진 우정이라고 표현해본다. 역사 분야는 어떨까. 지금 시점에서 꼽는다면 ‘푸른역사’와 ‘책과함께’가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두 출판사의 업력은 차이가 나지만 해당 분야의 연구 지형부터 최근의 경향까지, 한국사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목록이라는 점, 지금 시점에서도 역사 분야 독자에게 매력적인 도서를 꾸준히 발간한다는 점에서 두 곳을 꼽아본다.

이렇게 떠올려보니 왜 곳곳에서 라이벌 구도를 만들고 떠올리는지 알 법도 하다. 서로가 벌이는 선의의 경쟁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고 지금 중요하게 여겨지는 방향과 기준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아가서는 어떤 과제와 지향이 필요할지도 둘러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좀 더 다양하고 많은 라이벌 구도가 발견될 수 있다면 좋겠고, 그 조합 역시 각자의 상상과 판단이니 선정의 의미보다는 관심과 애정으로 이해되길 바랄 따름이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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