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지평 너머] 훌륭한 장군이었던 맥베스
“유능한 학생이었던 토틀랜드는 초등학교 교사가 된 뒤 능력을 인정받아 장학사로 승진했다. 그녀는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들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던 방법 그대로 교사들과 소통하려 했다. 교사들을 대할 때 한두 음절로 된 쉬운 단어만을 사용해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안건을 설명할 때는 교사들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반복 설명했다. 언제나 환한 웃음을 띠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하지만 교사들은 토틀랜드의 생색내는 듯한 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토틀랜드에게 적의를 갖고 그녀가 내놓는 안을 추진하기보다 반대할 구실만 찾는 교사도 있었다. 토틀랜드는 교사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무능력을 드러냈다. 그녀는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고 장학사로 남을 것이다.”
캐나다 태생 미국 교육학자 로렌스 피터(1919~1990)가 1969년 출간해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에 나오는 한 사례다. ‘피터의 원리’는 사람들이 무능함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게 된다는 경영이론이다. 군인이나 정치인이 추종자의 위치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면 갑자기 무능해지고, 유능한 학자가 연구소장으로 승진하면 하루아침에 무능한 관리자로 전락하는 식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할까. 조직에서 어떤 직책의 승진자를 선정할 때 그 직책이 필요로 하는 능력보다 후보자가 그때까지 보여줬던 업무 성과에 기초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승진 후 맡은 일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능력이 필요해지면서 그 사람의 무능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50여년 전 나온 경영이론이 새삼스레 떠오른 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개월 앞두고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언급에서 촉발된 혼란을 보면서다. 교육 현장이나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교육과 대학입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발언을 한 것인지 의구심이 높아졌다.
그러자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은) 조국 일가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전문가”(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입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이) 수사를 하면서 깊이 고민하고 연구해서, 저도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의 발언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교육 부문에서도 전문가이니 국민들은 의심하지 말라는 얘기다.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개별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예전 왕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컸지만 왕이 된 후 그 능력을 제대로 발현한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럴진대 평생 검사를 하다 갑자기 나라의 최고통치자가 된 윤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교육, 노동, 복지 분야 능력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 승진하려는 욕구 때문에 마침내 자기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능의 단계에 도달하게 돼 개인에게나 사회에나 불행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 ‘피터의 원리’다. 특히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유념해야 할 얘기다.
“훌륭한 장군인 맥베스는 무능한 왕이 되었다. 유능한 정치가였던 히틀러는 총사령관이 되면서 무능의 단계에 도달했다.”
로렌스 피터가 정상의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다 더 높은 자리를 욕심 내서 무능에 도달한 사례로 든 인물들이다. 맥베스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장군으로 전쟁에서 대승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왕의 자리를 찬탈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히틀러는 대중의 마음을 읽는 뛰어난 감각과 연설능력으로 정치적 성공을 거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략을 지휘하면서 파멸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이 됐다. 잘나가는 특수부 검사였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맹활약해 검찰의 최고 자리(총장)까지 올랐다. 그 덕분에 대통령으로 ‘승진’한 셈인데, 승진 이후의 업무는 검사 시절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다. 대화와 타협, 설득과 중재를 통한 ‘정치’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이고, 이를 잘해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지금 윤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서는 상명하복식으로 지시와 명령을 내리거나 국정 상대를 범죄집단시하며 감사나 수사로 단죄하는 과거 검사 때의 능력만 돋보인다. 새 직책에 맞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며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배움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장관이 대통령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정상이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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