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나의 사랑스러운 두 고양이 ‘사자와 아수라’
함께 사는 두 고양이 사자와 아수라의 나이가 어느새 열 살을 훌쩍 넘었다. 둘 다 한 살을 채울 무렵 식구가 되었다. 사자도 아수라도 각각의 상처가 있다. 사자는 잘 걷지 못했고, 아수라는 여러 번 파양을 당했다. 몸이 불편한 사자가 홀로 있는 것이 미안해서 아수라를 새로운 식구로 데려왔다.
두 고양이의 초반 일 년은 참으로 격동적이었다. 한참 동안 싸우다가, 한참 동안 같이 밥을 먹고, 한참 동안 서로를 물어뜯다가, 한참 동안 서로를 핥아주었다. 사자는 잘 걷지 못했고, 아수라는 낯선 사람을 경계했지만, 서로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아수라와 놀기 위해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사자를 보았고, 사자가 가끔 잠꼬대를 할 때마다 다가와서 얼굴을 핥아주는 아수라를 보았다. 싸움과 우정 사이의 경계에서 두 고양이는 차차 나이를 먹어갔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두 고양이는 이제 예전만큼 격동적이지는 않다. 대놓고 싸우지는 않지만 대놓고 놀지도 않고, 그닥 가까이 붙어있지도 않지만 그닥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서로에게 있는 듯 없는 듯 한가로이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누구 하나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나 밥을 먹으면, 나머지 하나도 마치 상대방이 시계인 것처럼 따라 일어나 같이 밥을 먹는다. 각자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지만, 늘 한쪽만 비워진다(두 고양이 모두 같은 밥그릇과 물그릇을 쓴다). 고양이 집에 사자가 들어가 있으면, 아수라는 바깥에 있다. 그러다 사자가 자리를 비우면 아수라가 잽싸게 안에 들어간다. 그럼 또다시 사자가 바깥에 있다(물론 고양이 집은 두 개였다).
십 년 전이 싸움과 우정의 경계였다면, 십 년 후는 독립과 동반의 경계인 것 같다. 이 묘한 널널함이 집의 공기를 편하게 한다. 십 년 세월을 무시 못하는지 두 고양이도 가끔 병원에 간다. 밥을 잘 먹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어 보이거나, 자주 토할 때가 있다. 번갈아 병원에 데려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 선생님은 그때마다 놀란다. 잘 걷지 못하는 사자가 전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놀라고, 체구가 작은 아수라가 갈수록 통통해지는 것에 놀란다. 나도 그때마다 놀란다. 건강을 위한 비결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아마도 두 고양이가 서로를 편하게 생각해서, 그 편한 마음이 건강의 비결일 수도 있다고 했다. 동물도 사람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스트레스만 받지 않아도 동물은 사람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살아간다고. 결국 건강의 비결은 관계에서 나온 것 같다. 서로를 편하게 만드는 서로의 친절함이 서로의 건강함을 낳았다. 아마도 두 고양이는 십 년간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의 밥과 물을 얻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다. 가끔 내가 고양이들을 케어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들을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집에 오자마자 고양이들처럼 널널한 자세로 누워있다가, 널널한 속도로 밥을 먹고, 널널한 눈빛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곤 한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복잡한 갈등이 생겼을 때, 널널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똑같이 널널해진다. 마치 고양이가 베풀어주는 명상 같다. 고양이의 집사인 동시에 고양이의 제자가 된 느낌이다. 집사와 제자 사이의 그 묘한 관계성이 내 마음 또한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어느 주말 오후, 낮잠을 자다가 ‘와작와작’ 소리에 눈을 떴다. 두 고양이가 같은 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밀고 밥을 먹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다시 잠들었다. 잠시 후 ‘첨벙첨벙’ 소리에 눈을 떴다. 두 고양이가 같은 물그릇에 혀를 날름거리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다시 잠들었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작와작과 첨벙첨벙은 세상에서 가장 잠이 잘 오는 ASMR이었다. 집 밖에서는 나도 가끔은 넘어지고, 가끔은 주저앉겠지만, 집 안에서만큼은 서로의 널널함을 나누며 한없이 널널해질 수 있다. 넘어짐과 주저앉음을 잠시 잊고, 보란 듯이 누워버릴 수 있다. 나보다 더 건강하고 친절한 고양이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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