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전라도 천년사 ‘논쟁’

기자 2023. 7.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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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사> 논쟁이 뜨겁다. <전라도 천년사>는 2018년부터 5년간 광주시,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213명의 필진을 모아 24억원을 들여 전 34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총집결해 진행해온 작업으로 그에 대해 학계에서 문제 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학계 바깥에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사실 ‘논쟁’은 아니다. 논쟁이란 모름지기 공통의 룰에 기반하여 팩트와 논리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논쟁’은 그런 성격의 다툼이 아니다. 팩트의 오류와 논리의 허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얘기만 반복한다. 이런 무의미한 다툼이 공공기관의 토론회나 심지어는 TV토론회에서 멀쩡하게 전개된다. 유튜브로 잠깐 들여다보니 <전라도 천년사>를 집필한 학자들이 상대 측 패널들을 향해 성심성의껏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보면서도 화가 나던데 용케도 점잖은 태도를 잃지 않고 ‘토론’에 임하고들 계셨다. 경의를 표하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어떻게 이런 일이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학문이 정치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문이 정치와 아무 상관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정도 문제다. 한국만큼 학문이(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정치에 흔들리는 경우는 적어도 선진국 중에서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학문·논리·팩트가 아니라 여론·정치가 진리를 판정한다. 전문가 집단이 확정한 사실도 대중감정에 반하는 것이라면, 즉각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전문가에 도전한다. 이들의 무기는 지식·논리·팩트가 아니라 대중여론이다. 장사가 되겠다 싶으면 정치인이 가담하기 시작한다. 전문가가 비전문가와 ‘논쟁’하는 것만큼 어렵고 무의미한 일도 없다. 전문가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많은 전문가·학자들이 정치화되면서 스스로 권위를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학자라고 정치적 성향이 없을 수 없지만, 전문적 판단을 내려야 할 단계에 이르면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커녕 정치진영의 스피커 노릇을 하며, 자신의 전문영역을 정치화시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한 명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에는 많은 세금과 기부금이 든다. 나도 대학교수이니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학생 시절 장학금에서부터 현재 연구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공공적 자금의 도움을 받아왔다. 왜 한 사회는 돈을 들여 전문가를 키워내는가? <전라도 천년사> ‘논쟁’을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시민이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밥값 하라고 전문가를 오랜 시간과 돈을 들여 키운 것이다. 전문적인 판단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만약 어떤 전문가가 오류를 되풀이한다면 그는 더 이상 전문가의 평판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이게 학문의 룰이다.

이참에 역사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쟁’이 일어나게 된 근저에는 그동안 역사학이 확산시켜온 민족주의 사관이 도사리고 있다. 심재훈 단국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쓴 글을 통해 “20세기 후반 역사 연구의 대세였던 한국사 확장과 아름답게 꾸미기가 고스란히 국사 교과서에 반영되어 대중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다며 “21세기 들어 민족주의 경향이 엷어지고 있는 역사학계에서 유사역사학 측의 얘기가 아무리 틀렸다고 설명해도 대중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고 있다. 자업자득이라 하면 심한 말이겠지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학계는 헤이그 이준 열사의 죽음, 청산리대첩, 안중근과 모친 조마리아에 관한 것(이 문제에 대해선 도진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와 ‘전언’, 조작과 실체’, ‘역사비평’ 142호, 2023 참조) 등 그간 과장·왜곡되어온 사실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팩트의 탑’을 다시 쌓아 올리자.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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