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중년 자영업자의 외로움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3. 7. 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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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변호사

며칠 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찌감치 고향에 내려가 정착한 선배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는 대기업에 몇 년 다니다 그만두고 자신이 중·고등학교를 나온 지방 소도시에서 자영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세금을 걱정할 정도로 경제적 성공을 거뒀고 나름 평온하게 살고 있는 형이다.

나는 고등학교 문학동아리에서 선배를 처음 만났는데 모범생이었지만 반골 기질을 겸비한 그가 왠지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중에 보니 대학에 가서도 록밴드를 하고 졸업 후엔 잠시 음악가의 길을 모색했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선배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랬던 그가 호구지책을 위해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다소간 실망감(?)이 들었는데 얼마 안 가 퇴사를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역시나 나름의 일관성을 지키고 있구나' 하고 안도한 것이다.

그런 선배가 최근 지역의 사업가들 모임에 자발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는 조금 놀랐다. 모임에서 지역이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귀동냥하기 위함이란다. 과거엔 조직이나 모임을 끔찍하게도 싫어한 선배였는데 자영업자 경험은 그를 어떻게 바꾼 것이었을까.

급기야 그는 이제 어느 조직이라도 들어가서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자영업자로 살아가며 도달한 중년의 삶이 너무 외롭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월급은 많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과 부대끼며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또래 회사원들은 퇴직 후 자영업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마당에 거꾸로 성공한 자영업자였던 그가 회사원이 되겠다니! 그가 말하는 외로움은 너무 배부른 핑계가 아닌가.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자영업자든 월급쟁이든 자기 밥벌이를 제대로 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선배의 외로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동 없는 경제적 풍요가 즉각적인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다소 고귀한 진실을 어슴푸레 이해하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정신과의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저서 '행복한 삶'(The Good Life)에서 행복한 사람의 다수는 자신이 하는 일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한겨레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6월28일자, 슈피겔 2023년 제12호 재인용). 월딩어는 요새 유행처럼 행복을 위해 일을 많이 줄이고 가족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과 맺는 관계의 건강성이 중요하고 직장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요컨대 행복을 위해선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독일의 연구자 역시 항상 직업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일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일과 삶의 균형'이 말하는 이상한 강요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선배가 다시 '9 to 6'의 회사원 일상을 바라게 된 것을 이렇게 이해한다. 뼛속 깊이 외로운 자영업자의 환경에 지친 것이라고. 그가 일상에서 주로 관계 맺는 자들은 20대 초중반의 아르바이트생이었고 그것이 '꼰대'를 그렇게나 싫어한 선배가 스스로 또래모임을 찾은 하나의 이유였다. 조직을 그리워하던 선배는 후배들이 회사에서 나오고 싶다고 하소연하면 예전엔 회사 나와도 굶어죽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다니라고 말한다고도 했다.

외로움, 혼자가 돼 적적하고 쓸쓸한 느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쩌면 선배는 자영업자이기에 앞서 중년이 갖는 적나라한 감정을 문득 느낀 것이고 그 처방을 회사원 생활에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가 보여주는 정확한 외로움이야말로 바로 중년들의, 자영업자들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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