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무심… 설령 이별이라도
12일까지 구암갤러리 전시
‘위안’ 주제로 조각 작품 31점
쉼·바라봄 이은 어우러짐 표현
“마음 내려놓고 존중하는 태도”
갤러리 ‘느린시간’서도 4인전
16일까지 개나리미술관
작가 페르소나 수달 ‘덕수’ 소재
이별과 만남 사이 쉼 속 재정비
지난 봄 떠난 길고양이도 재현
“변화 맞이 전 고요한 웅크림”
미술 장르 중에서도 조각과 도자작품들은 감정선을 입체적으로 건드린다. 작가의 시간을 비우고 채우는 방식이 3차원의 공간 속에 더욱 밀도 있게 빚어진다. 같은 주제 아래 오래 이어져온 시리즈를 선보이는 개인전 속 작품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적인 여백 사이에서 세상의 다양한 얼굴들을 아우르는 조각 작품 시리즈를 잇는 작가, 따뜻하고도 애틋한 이별의 방식으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빚은 작가의 개인전이 춘천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양구 출신 두 작가의 개인전을 나눠 소개한다.
■ 안성환 ‘무심 어:울’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안성환 조각가의 전시 ‘무심 어:울’이 오는 12일까지 춘천 구암갤러리에서 열린다. ‘위안’을 공통 작품명으로 한 조각 총 31점을 선보인다.
작품의 크기와 무게 대신 절제와 집약적 미학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이다. 안 작가는 정적이며 절제된 형상을 현대적으로 해석, 소박하고 따듯한 정서를 조각 안에 담아냈다.
안 작가는 최근 세상과 상대를 대하는 마음을 ‘무심’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가 지난 해부터 전시 주제로 삼은 단어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부제 ‘어:울’도 맥락을 같이한다. 앞서 연 ‘무심-쉬어가다’, ‘무심-바라보다’를 아우르며 ‘서로 어우러지다’는 의미를 담았다. 안 작가는 “상대방을 대할 때 있어서 마음을 내려놓으려 하는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상태가 ‘무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치열한 창작세계에서 최근 예술활동을 대하는 그의 태도도 묻어난다. 조각 모두 색감을 덜어냈다. 전시공간 역시 최소한으로 활용한 가운데 화려함보다 여백과 어우러짐이 갖는 조화를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위안’의 이름을 가진 조각들은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포함하는 전 인류적 사랑을 포괄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스스로에게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안 작가는 “과거 활동에서는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했다면 지금은 내 스스로를 위안하는 마음으로 조각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 작가는 춘천 갤러리 ‘느린시간’에서 최근 개막한 4인 작가 전시 ‘여름의 형식’도 참여, 내달 31일까지 동일한 주제의 조각 11점을 선보인다.
안성환 작가는 양구 출신으로 강원고와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30년 전 춘천에 내려와 작품 활동을 잇고 있다. 지난해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사공보다 많은 산’을 비롯, 한국현대미술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DMZ 아트페스타, 춘천조각심포지엄 등에 참여해 왔다.
■장덕진 ‘repair, rest’
수달 ‘덕수’는 트렌디하다. 감수성도 풍부해 보인다.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에 정이 많아 보이지만, 일정 거리를 두는 자못 차가운 느낌도 든다.
덕수는 고향 양구를 터전으로 도자 작업을 해온 장덕진 작가에게 지난 9년간 ‘페르소나’가 되어 준 소재다. 긴 시간 빚어온 덕수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장덕진 도예작가의 개인전 ‘Repair, Rest’가 지난 4일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개막,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신작 7점을 포함한 1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도자 조형과 달항아리, 그릇 등 도자공예 작품들로 구성됐다.
장 작가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의인화하면서 여러 감정과 시대상황을 투영해 왔다. 코로나19 유행시기 마스크를 쓰거나 넷플릭스 리모콘을 든 수달이 미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번 저닛에서도 대형 꽃병에 오르는 덕수, 손가락하트를 하거나 고양이·강아지 흉내를 내고 있는 덕수, 평화롭게 잠든 덕수 등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평범한 달항아리 작품으로 보이는 ‘낙하’에도 덕수는 숨어있다. 항아리 안쪽을 들여다 보면 수달이 한 마리 떨어져 있다. 8㎝짜리 달항아리마다 개성있는 ‘미니덕수 달항아리’ 시리즈도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많은 관객을 만난 덕수의 탈은 지난 해 말 처음 벗겨졌다. 수달의 탈 속 작가의 얼굴이 공개된 것. 작가가 언젠가부터 천천히 준비해 온 덕수와의 이별은 아마도 이때 굳어진듯 하다.
신작 ‘애이불비(愛易不非)’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 노란색 스마일 모양의 가면을 쓴 덕수가 눈에 띄는 작품인데 다가오지 말라는 듯한 제스처를 하고 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관객을 마주한 모습은 이별과 새로운 만남으로의 방향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또하나 눈에 띄는 주인공은 삼색무늬가 돋보이는 길고양이를 소재로 한 ‘고영희’다. 양구백자박물관에서 직원들의 애정을 듬뿍 받다가 불의의 사고로 지난 봄 떠난 ‘고영희’가 모델이 됐다. 실제로 이 고양이가 놀던 때묻은 털방석 위에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도자 ‘고영희’가 그대로 누웠다.
영희는 덕수와도 만났다. 큰 도자그릇 끝에 서로를 바라보며 살포시 앉도록 배치한 ‘덕수와 영희’다. 두 오브제가 서로 바라보며 교감하는 듯한 작품 배치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
미니멀한 전시 공간 사이에서 덕수와 영희와 눈을 마주치다 보면 작가의 쉼표와 마침표 사이를 건너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장 작가는 “떠나보냄의 시간이 왔음을 직시하고 새로운 만남을 떠올렸다. 변화를 맞이하기 전 고요한 웅크림의 시간”이라고 했다. 여유로 보다 단단한 작품을 빚기 위한 휴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큰 작품은 113㎝ 높이의 ‘free hug’다. 두 팔을 벌리고 웃고 있는 덕수 품에 직접 안겨봐도 무방하다. 떠나보내야 할 무언가를 품고 있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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