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제라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2023. 7. 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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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스티븐 제라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선수다.

몸과 마음 모두 좋아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좋아하고, 팀을 사랑하는 마음도 좋아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리버풀의 전설이다. 리버풀 유스를 거쳐 1998년 1군에 데뷔한 뒤 2015년까지 17시즌을 뛴 로맨티스트. 낭만 그 자체.

2005년 이스탄불 기적을 일으키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차지한 장면은, 정말 감동이었다. 세계 축구사에서 영원히 회자할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제라드가 지금 잉글랜드에서 엄청난 '욕'을 먹고 있다. 왜? 새로운 직장이 '축구 종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잉글랜드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제라드는 현역에서 은퇴한 후 리버풀 U-18 감독을 시작으로 스코틀랜드 레인저스, 잉글랜드 아스톤 빌라 감독 등을 역임했다.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2022년 아스톤 빌라에서 물러난 뒤 무직으로 지내온 그가 드디어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그런데 유럽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에티파크는 제라드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년. 연봉은 3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제라드를 향한 비난이 폭발했다. '스포츠워싱'의 일환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며 세계적인 스타들을 수집하고 있는 사우디이라비아다. 제라드가 돈에 팔려갔다는 것이다. 자존심도, 철학도, 열정도 모두 돈 앞에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 카림 벤제마(알 이티하드) 등이 사우디아라비아로 갈 때보다 반응이 사뭇 다르다. 호날두와 벤제마는 30대 후반으로 전성기에서 내려온 선수. 물론 비난이 있었지만, 마지막 직장에서 돈을 추구하는 것에 큰 반감이 없었다.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제라드는 올해 43세. 감독으로서 창창한 나이다.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젊은 나이에 육체와 정신을 모두 돈에 팔았다고 바라본 것이다. 감독 제라드의 미래는 어둡게 묘사됐다.

사이먼 조던 전 크리스탈 팰리스 구단주는 이렇게 비난했다.

"제라드가 유럽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제라드는 자신의 감독 커리어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간다. 성공적인 감독이 되고 싶다면, 중동으로 갈 필요가 없다. 제라드의 경우, 축구를 위한 결정이 아니다. 오직 돈을 위한 결정이다. 그는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또 그의 명성과 위상 역시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제라드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EPL로 돌아올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든 결과물을 보고, EPL이 제라드에게 감독 제안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청난 비난이다. 그런데 이런 욕을 먹을 만큼, 제라드는 정말 잘못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조던 전 구단주의 비난에 전 아스톤 빌라 공격수 출신 가브리엘 아그본라허는 이렇게 반격했다.

"당신을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액을 제시받았다면, 이적을 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거액을 받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는다면 당신 역시 바로 떠날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만 좀 하라. 친구야."

아그본라허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몬 전 구단주에 거액의 제안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아무리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할지라도, 가치와 스타성, 파급력을 보고 베팅한다. 아무에게나 돈을 뿌리지 않는다.

즉 사우디아라비아의 거액 제안을 받는 이들은, 그만한 가치를 품은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이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가치다. 지난 인생을 진정 열심히 살았고,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모두가 인정할만한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리버풀의 전설도 그런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두 번째.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 돈으로 움직인다. 프로 세계의 정체성이다. 돈을 보고 가는 것이 프로 세계에서 지향하는 방법이다. 돈을 따라 간 제라드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프로 세계에서 배운 대로 움직인 것이다.

수준 낮은 사우디아라비아라 간다고? 그건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수준이 낮다고 해도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설사, 목표와 야망이 없고 돈을 위해서만 간다는 진심을 숨긴다고 해도,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결과와 파장, 미래 역시 자신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면 된다.

정말로 조던 전 구단주의 말대로 제라드가 다시 유럽에서 감독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제라드 스스로 책임지면 되는 일이다.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거액에는 이 시행착오에 대한 공포값 역시 포함됐을 것이다. 이유 없이 큰 돈을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제라드도 위험한 것을 알고 손을 잡은 것이다.

리오넬 메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연봉 4억 유로(5670억원)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간다. 한국 대표팀 출신 손흥민 역시 거액의 제안을 뿌리치고 토트넘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을 향해 많은 찬사가 터졌다. 역시나 메시다. 역시나 손흥민이다.

거액을 뿌리치고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킨 일. 찬사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거액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비난받을 의무는 없다. 프로 세계에서 돈을 추구한다고 욕 먹을 이유 역시 없다.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삶의 우선순위가 있다. 개인 선택의 차이다. 자신의 방식과 철학에 따라 결정한 일. 서로의 결정을 존중하면 될 일이다. 흑백논리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낭만을 앞세워 강요할 필요도 없다.


우리를 돌아보자. 직장 생활도 프로세계다. 연봉 더 높은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 직장 생활의 정도다. 이렇게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안하는데 낭만을 찾아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메시와 손흥민 같은 이들도 우리 직장 생활 속에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호날두와 벤제마, 제라드의 길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나? 앞서 언급했든 기자와 같은 인물에게는 돈이 흘러넘치는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해도 거액을 제시할 이유가 절대로 없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정말 만약 거액의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당장 캐리어를...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스티븐 제라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알 이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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